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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10. 2021

'광'에서 인심난다

배아픔 주의 (자랑질입니다^^)

완도 신지면에 사시는 한분이 물질(해녀 활동)을 오랫동안 하셨다고 한다. 연세가 70이 넘으셨는데도 한번 물질을 가시면 갖가지 자연산 해산물을 엄청 많이 잡아 오신다. 전복이나 해삼이 고가여서 하루 4시간 정도 작업을 하여 판매를 하시면 2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신다고 하는데 그 귀한 해산물들을 가끔씩 그냥 먹으라고 주시는거다. 이사가기 전부터도 한번 뵐때마다 한보퉁이 싸주시곤 하셔서 너무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이사하고도 정착하지 못하고 주말만 내려가는 걸 아시고는 주말마다 전화를 하신다. 지난주에는 남편에게 일 좀 도와 달라며 부르셨다. 어른들이 일 좀 도와 달라는데 못 간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남편이 갔는데, 남편이 오는 사이에 아들이 다 해치웠다며(그러니까 도와 달라는건 우리를 오게하려는 핑계였다.) 일거리는 하나도 안 주시고 대신 자연산 전복과 소라, 고동, 해삼을 주셨다며 가져왔었다. 마침 복날이어서 복달임을 제대로 하기는 했지만 팔면 얼마가 될지를 아는 우리로서는 꽤나 죄송하기도 했다. 손질하여 먹으면서 그 맛이 얼마나 감동스럽던지 전화를 걸어 너무 감사하다고 생전 처음으로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어본다며 마음을 전한것이 다였는데, 잘 먹는다는 내 전화에 더 주고 싶으셨는지 이번주에 전화를 또 하셨다.


어떻게든 오도록 한다는 의지가 작용을 하셨는지 이번에는 내 얼굴 좀 한번 보자시며 오라고 하셨다. 이 정도면 한 번쯤은 가보는 것이 예의인 줄은 알았지만, 그날따라 난 도착하자마자 오이소박이를 담그려고 오이를 절여놓고 양념을 준비하고 있었다. 절이는 시간이 오래 지나버리면 아삭하고 싱싱한 맛이 사라져 버리는 오이를 그대로 두고 갈 수가 없었다. 난감해하는 내 표정을 본 남편은 알았다며 혼자 다녀온다고 가서는 한참 후 커다란 아이스밖스를 들고 왔다. 들고 오는 모습이 버거워 보이는 것을 보고는 적지 않은 양이 들어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따라갔는데, 귀한 성게와 자연산 능성어, 문어, 전복, 해삼이 가득 들어있었다.


"왜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하니 "당신 잘 먹는다고 이것저것 챙겨주시는데 받다 보니 많아졌네" 하며 회는 자기가 뜰 테니까 다른 건 날더러 손질하라고 했다. 해삼이나 전복은 익숙한 것이어서 얼마든지 손질 할 수 있었지만, 저 고소하고 달달한 기억이 있는 성게알을 품고 있는 성게의 실물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반가웠지만 손질법을 몰라서 난감했다. 뾰족뾰족한 성게의 가시들도 무서워서 손으로 만지기조차 꺼려지는데 저 안의 알들을 어찌 꺼내어 먹을지 고민아닌 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인터넷만 열면 원하는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검색해 보니 역시 성게를 손으로 직접 만지지는 않았다. 집게로 잡고 입이 있는 부분을 칼이나 가위로 도려내고 스푼으로 알만 끄집어내라고 하였다. 그대로 손질법을 보고 따라 해도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먹을 거 앞에서 포기를 모르는 나는 끝내 성게알을 꺼내어 먹을 수 있는 상태까지 만들 수 있었다. 그사이 능성어를 손질해 뚜벅뚜벅 썰어놓은 횟접시를 상에 올리고 소주 맥주잔까지 상을 차린 남편은 "옆집 어른들이랑, J형님 오시라고 할까?" 했다. 문어도 바로 삶아서 상으로 옮겼다. 해삼도 썰으니 커다란 접시로 한 접시가 되었다. 그 정도를 시장에서 돈 주고 사려면 부담스러울 양이었다. 아무리 옆집 몇 분을 부른다고 해도 다 먹기는 양이 많았다. 할 수 없이 냉동해도 되는 전복과 소라는 손질한 후 냉동실로 넣었다. 옆집 어른들과 마을일을 보시는 남편의 형님뻘 되는 J형님까지 모시고 나니 마음까지 더욱 풍요로워졌다. 주거니 받거니, 소주 서너 병이 다 사라질 때까지 안주는 부족하지 않았다. 옆집 어른께서 사위가 올 거라고 해서 손질된 해삼을 미리 덜어 놓았어도 그랬다.


어쩌면 누군가는 평생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할 자연산 그대로의 해산물들을 너무 많아서 걱정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바닷가 산다고 누구나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직접 잡는 재주도 없으면서 갓 잡은 싱싱한 것들을 이렇게 포식해보긴 내 평생 처음이다. 어쩌다 좋은 분들을 만나 크게 해 드린 것도 없는데 아낌없이 챙겨주시는 그 마음이 너무나 감사하다.


'광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나라 남도, 해안을 끼고 형성된 지역에는 옛날부터 먹을 것이 풍부했다고 한다. 육지에는 넓은 평야가 있어 곡식이 넘쳐났고, 건강한 갯벌과 맑은 바닷속에는 언제든지 싱싱한 바다의 산물들 자라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채취해 올 수가 있었다고 한다. 자연이 주는 넘치는 산물들에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던 남도의 사람들은 자연을 닮아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필요한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다 내어주는 사람들, 바다를 닮은 마음을 품고사는 사람들, 베푸는 사람만이 자연의 풍성함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사람들, 그분들의 '광'에는 지금 같은 세상에도 인심이라는 것이 가득 차 있음을 마음의 눈으로 보면서 산다.  ㅡ광은 지금의 창고를 말함, 옛날 부잣집에는 쌀이나 곡식을 보관하는 광이 있었음ㅡ


자연산전복에는 저렇게 해초류들이 붙어있다. 아마도 전복의 위장술이아닐까 생각한다. / 손바닥만한 해삼들
'뿔소라'라고 불리는 것들인데 쫄깃하고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왼쪽은 능성어회, 남편의 손질이 엉망이긴 하지만ㅋㅋ/오른쪽은 성게알, 내 솜씨역시 해산물 손질로 먹고살지는 못할듯ㅎ ㅎ


완도 돌문어
내가 손질한 문어와 남편이 회뜨는 모습 / 생선뼈에 붙어 버려지는 살들이 더 많은 생선손질ㅠ / 다행히도 기다리는 고양이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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