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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n 15. 2021

집으로 스며든 길고양이 가족!

또다시 내 마음을 열다

작년 대전에서 살 때 만났던 길고양이 가족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다시는 고양이나 기타 동물들을 챙기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고 몇 개월도 되지 않았다. 시골살이에 적응을 하려 분주한 시간들을 보내던 어느 날,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가 아는 체를 했다.

"야~옹"

"너 뭐냐? 왜 아는 체 해? 너 챙길 시간 없으니 딴 데 가서 놀아" 하며 눈에 보이는 대로 가라고 했다.


바쁜 주말을 보내고 대전에 왔다가 다시 토요일 내려가면 현관 앞이나 창고 주변에 어슬렁 거리다가 다가오며 아는 체를 했다. 빈집이라 생각하고 간 집에서 마중해 주는 길고양이가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은 들이고 싶지 않았다. 몸집이 뚱뚱한 것이 따로 밥을 챙겨주지 않아도 잘 먹고 다니는 것 같아 그냥 눈인사만 하며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무슨 목적이 있었던 건지 우리가 밭으로 창고로 움직일 때마다 뒤뚱뒤뚱 따라다녔다. 야옹 소리도 얼마나 친근감이 있던지 그냥 야생에서 살던 고양이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래도 모질게 정 주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모른 체했다.


어느 날부터는 남편과 함께 있을 때는 남편만 따라다녔다. 얼마 만에 나보다는 남편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쉽겠다는 판단을 한 것 같았다. 남편에게 "참 희한한  길고양이를 다 보겠네, 전생에 당신은 고양이하고 무슨 인연이 있었나 봐"하며 농담을 했다. 길고양이의 판단은 적중했다. 마음 약한 남편이 자기를 따르는 길고양이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 같았다. 모른 체 하라며 단단히 부탁했는데도 나 없는 사이에 낚아온 물고들을 틈틈이 주었었나 보다.


현관 앞을 지키다가 밭으로 선착장으로 따라다니며 남편에게서 먹을 것을 얻어내고 있었다. 물고기야 어차피 다 먹지 못하니 그냥 쌓아두는 것보다 고양이라도 먹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겨울을 낫다. 길고양이의 뱃살은 점점 쪄올라서 정상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두어 달 전쯤, 일주일 만에 만난 고양이가 갑자기 날씬해져 있었다. 그래도 몰랐다. 일주일 동안 제대로 못 먹어서 살이 빠진 줄 알았다. 다시 잡아온 물고기를 주며 남편이 한마디 했다."야! 그냥 먹어도 안 뺏어 왜 자꾸 물고 어디로 가는 거야?" 날씬해진 후로 먹을 것을 주면 물고 어딘가로 간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도 길 고양이니까, 습성 따라 사람에게서 얻었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편히 먹으려는 가보다 하며 지나쳤는데 2주 전, 난 안 보고 싶은 것을 보고야 말았다.


분명히 비어있던 창고 옆 쌓아둔 어구 틈에서 새끼 고양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과 마주치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 가까이 가보니 막 젖살이 오른 이쁜 새끼들이 다섯 마리나 있었다. 그제야 뚱뚱했던 길고양이기 갑자기 살이 빠진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어딘가에 낳아서 좀 돌아다닐만하니까 무언가 먹이기에 가까운 집 옆으로 모두 데리고 이사를 온 것 같다.


남편이나 나나 믿을만해서 찾아온 것 같은 고양이 가족을 모른 체 하기엔 마음이 모질지 못했다.

결국 사료를 사 오고 밥그릇을 준비했다. 옆집 아주머니가 지나면서 한 말씀하신다.

"에구... 고양이 한번 챙기기 시작하면 끝까지 안 나가, 그리고 동네 고양이들 다 모인다."

그래도 어쩌랴, 관심 없는 길고양이들 불러다 키울 수는 없겠지만, 찾아와 함께 살자고 새끼들까지 데리고 온 고양이 가족을 나 몰라라 할 만큼 모질지 못한걸... 오히려 좀 미안한 마음까지 드는데, 우리가 집을 비우고 대전에 와 있는 동안 배고프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다. 이건 분명 오지랖이다.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려고 토요일 내려가서 배고팠을지 모를 고양이 가족을 위해 한가득 사료를 담아준다. 그러나 마음뿐, 다 먹지 못하고 남긴 사료가 주변의 다른 길고양이들을 불러들였다.  못 보던 까만 고양이, 누런 고양이, 하얀 고양이도 와서 먹고 간다. 옆집 아주머니 말씀대로 길고양이 무료 급식소가 되어 버릴 것 같다. 자기 식구들 밥이라고 어미 고양이가 지켜주면 좋으련만, 자기네 배부르면 누가 와서 먹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쓴다. 신경은 내가 쓰고 인심은 자기가 쓰는 꼴이다. 이번에도 일요일 저녁에 올라오면서 넉넉하게 사료를 담아 주기는 했는데, 분명히 다 못 먹고 주거불명의 다른 고양이들이 와서 배를 채우고 갔을 것이다.


그렇게 원하지 않았지만 또 길고양이와 인연이 되었다.

이번에는 새끼들이 다 자라서 스스로 제갈길 찾아갈 때까지 잘 자라기 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온전한 끼니들을 다 챙겨주지는 못하겠지만 해줄 수 있는 만큼은 챙겨주어야겠다. 우리 집에 의지하고 있는 길고양이 가족들이 그런 상황마저도 이해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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