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

대중교통의 유익함을 찬(讚)하다.

by 강현숙

실로 수십 년은 된 것 같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딘가로 이동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작년부터 다니기 시작한 완도행도 습관처럼 자가용을 손수 운전하며 다녔다. 완도에 적응하겠다며 그곳에서 혼자 지내는 남편은 일요일마다 혼자 올라오는 내게 미안했던지 일요일 오후에는 태워다 줄테니까. 토요일 아침엔 혼자 오라고 하면서 대중교통 앱을 휴대폰에 깔아주고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고속버스 티머니, 시외버스 티머니, 카카오 택시 등 3개의 앱을 깔으니 완도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래서 두어 달 전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간다.


버스로 가던 첫날, 앱을 통해 버스표를 예약하고 시간에 맞춰 일을 마무리 한 다음, 카카오를 통해 택시를 호출하니 5분 안에 도착했다. 터미널까지는 7분 정도 걸렸다. 오랜만에 시간이 정해진 버스를 탄다는 마음에 너무 서둘렀는지 터미널에 도착하니 출발시간 30분 전이었다. 창구에서 예매된 버스표를 받으라는 남편의 말대로 창구에 가니 모바일 티켓이 발행되어 있을 테니 그것을 검표원에게 보여주고 타면 된다고 하였다. 정말 편리해진 세상이다.



나는 어느 날부터 버스 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전 고속버스에서 배가 아파 식은땀을 흘리며 고생했던 그날 이후 버스만 타려 하면 빈뇨감에 시달린다. 오래 지난 이야기니까 이제는 괜찮으려니 하면서 미리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리고 버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살짝 신호가 왔다. 좀 전에 다녀온 지 5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느낌일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빈뇨감을 잊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참지 못해 화장실로 뛰어갔다. 잠시 후, 버스 출발 10분 전이 되어 개표를 하고 차에 타려는데 또 신호가 온다. '이번엔 정말 아닐 거야 차에 타면 괜찮겠지' 하며 버스에 올랐는데 아무래도 불안하여 양해를 구하고 다시 화장실로 뛰어갔다. 30분 사이에 세 번을 찾아간 화장실에서 무엇을 두고 올 것이 없었다. 그래도 변기에 앉았다 일어서니 마음은 편해졌다. 서둘러 버스에 오르니 바로 출발했다. 또다시 화장실 생각이 날까 봐 얼른 눈을 가리고 잠을 청했다.


유성에서 광주까지는 1시간 50분이 걸린다. 8시 차를 탔으니 9시 50분이면 도착이다. 내가 탈수 있는 광주에서 완도로 가는 버스는 10시, 11시 20분, 12시 20분... 대략 1시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배차되어 있었다. 10시 차를 타지 못하면 1시간 이상을 터미널에서 보내야 했다. 어쩔까? 10시 차를 탈까? 다음 차를 탈까? 대부분은 고민 없이 바로 연결되는 10시 차를 탈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민스러웠다.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화장실이다. 멀쩡히 가만있다가도 버스를 탄다는 생각만 하면 화장실이 급해진다. 한번 신호가 오면 화장실을 다녀올 때까지 불편하고, 버스가 휴게소나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화장실을 들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리는 순간까지 불편하고 신경이 쓰여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거의 병적이어서 그동안 자가용만을 고집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일단은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광주- 완도행 예매를 하지 않았었다. 만약에 광주로 가는 차가 어떤 이유로든 연착이라도 해서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주지 않는다면 다음 1시간 50분이 지옥이 될 것이기에 상황을 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도 버스는 연착 없이 광주에 도착했다. 일단은 화장실 먼저 뛰어갔다. 그리고 매표를 하려니 10시 차는 이미 매진이 되어있었다. 11시 20분 표를 사고 승강장으로 갔다. 혹시라도 매표를 했으나 시간에 맞추지 못해 오지 못할 사람이 있다면 그 자리를 태워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출발 1분 전, 1자리가 남았다고 했다. 남은 시간이 1분이니까 충분히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출발 준비를 마친 기사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급하게 한 사람이 뛰어왔다. 기사님과 검표원은 웃으며 "다음 차 타셔야겠네요"라고 했다. 아쉬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1시간을 무얼 하며 보내나 하는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며 터미널 안을 걸었다. 코로나 시국에 어디든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터미널 안에 있는 커다란 서점이 한가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책 두 권을 사고 예매한 버스를 탔다. 물론 5분 전에 화장실 다녀오는 행사를 치른 후였다.



첫날의 화장실 문제로 나 혼자만의 에피소드를 간직한 체 또다시 토요일이 되었다. 새벽에 일찍 광주행만을 예매하고 완도행은 또 보류하였다가 광주에 도착한 후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에 매표를 하려 하니 아직 완도행 10시 출발 표가 있었다. 광주에서 지체하지 않고 완도에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11시 50분, 마중 나온 남편의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아직도 12시 전이었다. 힘들게 운전하며 놀며 놀며 다녔던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면 엄청 빨리 도착한 것이다. 게다가 오는 동안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며, 가방 속에 들어있는 책도 꺼내 읽으며, 졸음이 오면 마음 편하게 잠도 잘 수 있었으니, 버스 안에서의 시간들은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완도에 도착 후에는 낮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아 바로 점심을 챙겨 먹고 집 주변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는데, 주변정리와 텃밭 농사, 그리고 인체에 유익한 풀들을 알아가고, 그 풀들을 가꾸고, 성숙한 풀들을 이용해 효소를 담그는 등 30여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모든 성과가 대중교통을 이용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요일 함께 올라온 남편이 다음날 내려간다고 해도 전혀 아쉬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말마다 완도에 간다는 말을 들은 지인들은 "거기가 어디라고 주말마다 가? 엄청 멀던데, 살면서 한번 가보고 멀어서 갈 엄두를 못 낸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고, "난 완도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라"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나 역시 매번 운전해서 가야 했다면 지금쯤은 지쳐서 매주 간다는 계획이 무산되어 집을 방치하였거나, 아니면 대전의 사업을 헐값에라도 넘기고 아주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버스로 다니는 길은 많은 것들을 다 해낼 수 있을 만큼 여유를 주었다.



버스를 이용하여 집에 다닌 지 두어 달이 지난 지금은 버스가 주는 유익함들 때문인지 화장실에 대한 불안함도 조금씩 잊히고 있는 듯하다. 집에서 터미널까지 소요되는 시간에 맞추어 카카오 택시를 부르고, 버스 출발 5분 전에 딱 한번 화장실을 다녀오면 무사히 광주까지 도착할 수 있다. 유성-광주행 고속버스가 지금까지 한 번도 연착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으로 미리 광주-완도행 버스표도 예매하여 광주에 도착해서는 여유 있게 화장실을 다녀올 수도 있다. 이동하는 시간엔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집에 도착해서는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집 주변을 살피고 가꾸는 여유도 가질 수 있으니, 나를 태워 이동시켜주는 택시와 버스에 대한 감사함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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