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양 시절을 다녀왔다

꿈을 꾸고 지난 삶을 돌아보다.

by 강현숙

새벽, 출근해 일하다가 한가한 틈을 타서 소파에 누웠다. 브런치를 열어 아직 읽지 못한 글들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오늘따라 중간에 전화 오는 곳도 없어서 30분을 잔 것 같다. 그 30분 사이에 난 옛날의 버스 안내양 시절을 다녀왔다.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였는데 지금처럼 고속버스나 직통버스가 아닌 각 마을마다 다 서면서 가는 버스였다. 취업의 과정도 없었다. 내가 서울을 가기 위해 탄 버스에 안내양이 없는 것을 알고는 자처해서 버스 문을 지킨 것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타시고, 아기 업은 엄마와 여닐곱살의 천방지축 사내아이도 탔다. 양갈래 머리의 여학생들이 2인용 의자에 대여섯 명이 뭉쳐 앉아있으며 수다도 떨었다. 젊은 아저씨들이 문을 잡고 서서 가는 내가 힘들어 보인다며 자기들이 도와주겠다고 앉아 있으라고도 했다. 어느 지점에서는 여자기사님이 견습을 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이미 내 이름을 들었었다며 "아~강현숙 씨였군요." 라며 관심도 보여주었다. 꿈속에서도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조금 알려져서 견습 여기사님께서 날 알아봐 주신거였다. 기사님은 안내양 역할을 잘해주어서 운전하기가 너무 편하다는 이야기를 견습기사님께 하면서 아주 유쾌한 표정을 지어주셨다.


동네 몇 군데를 들려서 내릴 사람 내리고, 다시 서울로 가는 사람, 다음 동네에 가는 사람들을 태웠는데 요금을 주는 대로만 받고 있었다. 그런데 흐뭇한 건 거리마다 다른 요금을 누구도 속이거나 그냥 가지 않고 승객들 스스로 아주 정직하게 계산해서 주는 것이었다. 금액이 얼마인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동전과 매표소에서 발행한 버스표를 받으며 "아~모두들 정직하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꿈속의 안내양을 자처하여 일하는 나도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개구쟁이 사내 녀석들이 자기도 커서 버스 운전을 할 거라고, 그 단순한 버스 문 열고 닫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면 "그래 이렇게 해야 안전한 거야" 라며 가르쳐 주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타실 때는 보따리를 받아서 빈자리까지 모셔다 드리기도 했는데 손을 잡고 고마워하셨다. 떡도 한봉투를 받았는데 누가 준 건지는 모르겠다. 행복한 마음만 남아있다. 갈래 머리 소녀들의 수다가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하면 뽀료퉁하다가 곧 다시 수다를 떨며 까르르 웃어대는 모습에 고운 눈을 흘기며 같이 웃기도 했다.


작은 마을들을 거쳐서 이제부터는 서울까지 쉬지 않고 가는 지점에 이르니 한 젊은 남자가 자기가 자리를 양보할 테니 앉아서 가라며 말을 걸어오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물건이 안 왔네요?" "아~네, 바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는데 왜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지... 아마도 그 젊은 아저씨랑 꽁냥꽁냥 하는 기분을 만들 나이가 지나서 더 이상 꿈이 이어지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아직도 그런 꿈을 꾸냐며 '꿈깨'라는 의미로 잠을 깨운 건지 모르겠다. ㅋ


어쨌든 안내양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꾸어보지 않은 안내양이 된 꿈을 꾸고 나니 감개가 무량하다. 다 잊고 살다가 글을 쓴다면서 추억 속에서 끄집어낸 안내양 시절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그렇게도 힘든 일을 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고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있던 꿈속의 안내양이 된 나의 모습이 그 시절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떠올려 본다.


중학교 졸업장도 없는 나를 인맥으로 취직을 시켜주는 분이 계셨고, 다른 곳 보다 많은 월급을 받았지만, 더 많은 월급을 벌기 위해 공백이 생기는 부분에 나를 넣어달라는 말을 기억하고 우선적으로 나를 챙겨 주었던 그 시절의 사감님들, 근무 중에 도와주고 싶다며 친절한 눈빛으로 말 걸어주던 잘생긴 아저씨들과 대학생 오빠들, 버스에서 졸아도 '좀 쉬면서 하라'는 격려로 무안함을 느끼지 않게 해 주셨던 기사님들, 그런 분들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이 나빴을 리가 없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살이가 그런 것 같다.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처해진 환경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는 것, 세상을 살아가면서 징징대고 살 것인지, 웃으며 살 것인지, 판가름하는 기준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을 한다. 말 그대로 일장 효몽(一場曉夢:봄날의 꿈에서 새벽녘의 꿈으로, 일장춘몽을 흉내 냄)이었지만, 지나간 삶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잘 살아온 것에 대해 흐뭇하고 또다시 남은 날들도 긍정적인 생각 잃지 않고, 누군가는 느낄 수 있는 고통스럽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날마다 즐거운 삶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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