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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상전

주인이 장사를 모를 때 직원은 상전이 된다

by 강현숙

내가 처음 취급했던 품목은 생선류였다.

그 당시 나는 생선은 오징어, 동태, 고등어, 갈치만 먹는 건 줄 알았다. 물론 시장에 다니며 눈동냥이야 했었지만 직접 요리할 수 있는 종류는 그게 다였다. 그런 내가 장사를 하려니 알고 있는 생선들도 손질법을 몰랐다. 옛날과 달리 요즘 소비자들은 오징어 한 마리도 깨끗이 손질해 주어야 사간다. 그런 환경에서 난 생선장사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았었다.


생선을 다루어 본 경험자가 필요했다. 주변사람의 주선으로 생선가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30대 젊은 주부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 직원의 채용조건은 아침 8시 출근하여 저녁 6시 퇴근이며 매주 일요일 휴무에 급여 250 만원이었다. 직전에 고등학교 사감으로 있으며 받았던 내 월급 보다 50 만원이 더 많았다. 비린생선을 다루는 3D업종이기에 그 정도가 최소한의 임금이라고 했다.


장사가 되기만 하면 월급은 얼마라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채용했다. 나 같으면 그 정도 월급을 받으며 생선가게에 취직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니 그저 와 준다는 결정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새벽 5시, 그날의 대박을 기대하며 출근을 한 나는 전날에 주문했던 생선들을 찾아오고 진열을 위해 넓은 매대에 얼음을 깔고 생선들을 진열했다. 하다 보니 하루 중 가장 중요하고 힘든 노동이었다. 진열이 다 끝나고 나면 직원이 출근을 한다.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 간단한 장을 보러 나온 손님들이 이미 다 돌아간 뒤였다. 그때부터는 식당사장님들이 장 보러 오기 시작하는데 일반주부들보다 사가는 규모가 컸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단골로 다니던 가게로 옆가게는 쳐다보지도 않고 간다. 당연히 새로 생긴 우리 가게는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속이야 타들어가도 겉으론 표현할 수가 없어 하릴없이 이미 진열해 둔 생선들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지나는 손님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싱싱한 생선 구경하세요." 라며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하며 서성일 때 직원은 옷 갈아입고 커피 타서 마시며 여유롭게 앉아있다. 개시도 못하고 점심시간이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개시를 하건 말건 직원은 배달음식 메뉴판을 뒤적이며 이른 점심을 시킨다. 그 밥이 나는 입에 달리가 없다.


저녁 5시, 아직 절반도 더 남아있는 생선들을 직원은 퇴근준비한다며 가차 없이 정리를 한다. 박스에 담고 얼음을 채워 덮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6시가 되면 피곤하다며 부랴부랴 퇴근을 한다. 생선손질조차 할 줄 모르는 사장은 직원이 모두 덮고 퇴근하면 지나가는 손님들을 보고도 아예 멈춰버린 레코드가 되어버린다. 직원이 퇴근을 했어도 아직 손님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아 나는 남들 장사하는 거 바라보며 두어 시간을 서성인다.


어느 때는 전날 오셨던 분이 어디 갔다 오느라 늦었다며 저녁에 반찬 하게 생선을 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나는 손질을 할 줄도 몰랐지만 정리된 박스 어디에 손님이 원하는 생선이 들어있는지도 몰라 아쉽게도 그냥 보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직원에게 전화를 했지만 높으신 직원분께서는 근무 중에도 거의 들고 있다시피 하던 핸드폰을 받지 않았다. 다음날 물어보면 뭘 하다가 못 받았다고 하며 그만 이었다. 그때 심정이 눈물이 날 뻔 했다고 표현하면 어울릴까? 암튼... 직원보다 반나절을 더 일하고도, 직원이 없으면 생선 한 마리도 팔지 못하면서 어김없이 적자인 상황을 걱정했던 시기였다.


절대로 직원이 다해줄 거라는 믿음은 금물이라는 것, 특히 처음 개업할 때는 경력이 조금 있다고 상전대우를 받으려는 직원이 꼭 있다는 것, 그것만 기억하고 준비해도 돈도 못 벌면서 상처까지 받는 저런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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