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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채운 Aug 09. 2024

야간산행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야간산행

                         -꽃채운-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손전등에 의지해 

더듬더듬 산길을 오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작은 새의 날갯짓에 화들짝 놀라고

벌레의 사부작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저 멀리 도망간다.


산에서 멀어지는 마음 붙잡아 

한걸음, 한걸음


어느덧 머리 위에 별이 쏟아진다.


별빛에 이끌려 온 산 정상에서

구름 아래 산등선을 내려다보니

포기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두려워 도망가지 말아야지


별님 따라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정상에 다다랐다는 걸 

아는 날이 올 테니, 

두려워 말아야지



작년 여름휴가철이었다. 아침에 떠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아빠는 잠을 안 자고 밤에 바로 출발하는 거라고 하셨다. 출발하는 날 19시에 퇴근이었어서 말도 안 된다고 불평했었다. 자정 전에 출발한 차는 3시 무렵 지리산에 도착했다. 그 먼 거리를 달렸음에도 세상은 온통 깜깜했다. 이 시간에 산이라니. 잘못 따라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을 것 같았던 산 밑에는 차가 가득 주차되어있었다. 주차장 앞 편의점에는 산행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놀랍게도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소리, 여름이었음에도 서늘했던 새벽의 공기, 매콤한 컵라면 냄새. 다양한 모습으로 새벽이 가득 찼다.


해도 떠오르기 전 산 길은 어둠을 더듬어 가는 것 같았다. 작은 손전등에 의지해 산길을 올랐다. 깜깜한 산에 무섭고 힘든 마음에 투덜거리기도 잠시, 아빠가 말했다. "소연아, 저기 저 하늘 좀 봐." 그 말에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보석들이 알알이 박힌 밤하늘이었다.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선명했다. 어린 시절 천문대 견학을 갔던 게 떠올랐다. 빔 프로젝트로 봤던 밤하늘이 예뻐 마음을 빼앗겼었는데,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별들이 박힌 밤을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여전히 어둡고 길은 돌들이 툭툭 튀어나와 있어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러나 더 이상 불만은 생기지 않았다.

정상 부근에 다다랐을 때 어스름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발 밑에는 산길이 구불구불 흐르고, 산 등 사이사이로 구름이 고였다. 보랏빛 새벽은 산도 구름도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서늘한 바람이 분다. 색색의 꽃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보석 같던 별들이 땅으로 내려왔다. 땅 이곳저곳에 불이 켜지며 빛나기 시작했다. 커다란 태양이 뜬다. 아, 이 모습을 보려고 밤을 지새워 달려왔구나 싶었다. 


불현듯 우리네 인생도 야간 산행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어 더듬어 더듬어 올라가고, 별빛을 보며 감동받고, 길을 찾아 정상에 오르는 것이. 


보랏빛 새벽이 물들인 산과 구름
산 등 사이로 구름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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