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숙박비도 미국 못지않게 여행에 위협적이다. 더욱이 숙소 주차가 유료 옵션이거나 아예 불가한 경우도 있으니 예산 내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들이 더 줄어든다.
어쩔 수 없이, 메인 관광지에서 1~2시간 떨어진 위치, 공용 주방, 공용 욕실, 호스트가 함께 거주하는 형태를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건 정말 아니지 싶은 리뷰만 없다면!
미시간(Michigan)에서 국경을 넘어 캐나다 우드스톡(Woodstock)에 도착했다.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자동차로 1시간 40여분 걸리는 소도시다.
폭포에 다녀오는 주유비와 운전 피로도를 감안할 때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 알쏭달쏭하지만 믿기지 않는 금액(1박 55천 원)의 숙소가 뜨길래 바로 예약하고 오게 된 곳!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지나 작은 아파트의 벨을 누르니 30대 중반의 남자 호스트가 따뜻하게 맞아준다.
요리에 흥미가 있다는 그는 각종 조미료와 다양한 소스, 한국 고추장이 있는 주방을 마음껏 이용해도 좋다고 한다. 세탁기와 건조기, 세제까지 추가요금 없이 사용하라고 한다. 주방과 욕실 용품들이 모두 깔끔하게 잘 비치되어 있다. 집안 곳곳에서 여행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공유 숙박업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되어간다는 호스트는 금융권에서 일하는 싱글남으로 일주일에 한 번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단다.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어서 추가로 파트타임 일과 숙박업까지 하는 쓰리잡러다. 목표하는 바가 있는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체 이곳 살림살이가 팍팍한 것인지...?
요리와 세탁이 가능하고 젠틀한 호스트가 있으니, 심하게 출렁이는 침대와 그 침대 하나 겨우 들인 코딱지 만한 방쯤은 너끈히 감수할 있다.
하지만, 재택근무하는 호스트가 바로 옆방에 있어 프라이버시 거리가 확보되지 않는 건...
주방과 욕실은 이용 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주의하다 보니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데, 호스트가 옆 방에 있다고 의식되니 매사 조심하는데서 오는 갑갑함, 억눌림의 피로가 쌓여간다. 목소리를 낮추던 부부는 점점 뜻하지 않은 묵언수행을 하게 된다.
그래도 넓은 무료주차장과 가성비가 불편함을 덮고도 남았다.
파이브스타 게스트라고 거듭 고마움을 표현하는, 예의 바르고 건실한 캐나다 젊은이의 삶을 힐끗 엿보았다.
토론토 여행을 위해 1시간 거리의 뉴마켓(Newmarket)에 머물기로 했다.
진입로를 찾지 못해 주변을 빙빙 돌며 잠시 헤매다 들어간 숙소는 2층짜리 단독주택이다. 집 앞에는 작은 밭과 농기구와 각종 공구들이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비닐하우스가 있다.
호스트의 친구 겸 관리인이라는 거구의 젊은 청년이, 피가 선연하게 배어있는 붕대감은 손으로 남편에게 굳이 악수를 청한다. 작업하다 손을 다친 모양이다.
안내받은 2층 방으로 들어서니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가구들,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널찍한 방이 우리를 맞이해 준다.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간다. 이 전 비좁은 숙소에서 쌓여 있던 갑갑함이 한순간에 뻥 뚫리는 것 같다.
이동하느라 장시간 자동차 안에 구겨져 있던 몸을 침대에 누이니, 낡고 오래된 작은 책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책과 선반의 색감이 탁하고 흐릿한 게 아무래도 수상쩍다. 설마 하며 다가가 손가락을 대본다.
맙소사! 족히 몇 년은 털어내지 않은 듯한 먼지가 두툼하게 쌓여있다.
방 안의 모든 가구와 물건들을 의심스럽게 훑어보았다. 의심은 곧 사실로 확인되었다.
바닥 카펫과 침대는? 하...
1층 청년은 한밤중에 온 집안에 기름 냄새를 풍기며 치킨 너겟과 프렌치프라이를 튀기더니 이틀 동안 식탁과 개수대에 조리의 잔재들을 늘어 벌려놓고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청결한 공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집구석이다.
머무는 3일 내내, 폭탄 맞은 주방에 얼씬 거리지 않고 토론토 한인마트 푸드코트에서 감자탕을 사 먹거나 고추김밥과 순살치킨을 포장해 와 방에서 먹었다.
마지막 밤, 욕실에서는 샤워커튼이 우당탕 떨어져 내리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슈퍼호스트에 평점이 높다는 건 이 기괴한 집의 미스테리다!
볼 때마다 혼자 중얼중얼 무언가에 화가 나 있는 듯한 덩치 큰 어린 청년은 떠나는 날도 붕대감은 손으로 작별의 악수를 청했다. 잠시 지어 보인 그의 미소에서 발견한 천진함과 먼지만한 귀여움!^^
락포트(Rockport)에서 천 섬(1,000 islands)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오타와와 몬트리올 여행을 위해 두 도시의 중간 지점인 뱅크리크 힐(Vankleek hill)에 4일 동안 머물렀다. 뱅크리크 힐은 두 도시로부터 각각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캐나다의 전형적인 작은 농촌마을이다.
마을로 접어들기 전부터 사방팔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화롭고 아름다운 목가적인 풍경에 반하고 말았다.
숙소까지 흠잡을 데 없이 만족스럽던 곳! 호스트는 숙소건물 1층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중년여인이다. 다른 곳에 거주하며 출퇴근한다.
4일 동안 오타와와 몬트리올을 다녀오고, 몽뜨랑블랑(Mont-tremblant) 국립공원에 가서 단풍구경을 했다.
동네 양조장을 방문하여 수제맥주를 사고, 세차도 하고, 오타와강가 공원을 산책했다. 공원 벤치에서 간식을 먹으며 동네 어르신들의 쇠구슬 던지기 게임을 구경했다.
다시 오고 싶은 동네다!
퀘벡 여행을 마친 후 빨강머리 앤의 섬, PEI(Prince Edward Island)로 향했다. 퀘벡에서 9시간 가까이 걸리는 1천 km의 대장정이라 중간에 프레데릭턴(Fredericton)에서 하룻밤 쉬어가기로 했다.
중간에 주유하느라 한번 쉬고는 그대로 달려 6시간 만에 프레데릭턴 숙소에 도착했다. 퀘벡과 1시간 시차가 난다.
특별할 것 없는 어느 조용한 주택가에 들어서 번지를 확인하고 초인종을 누르니 응답이 없다. 안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니 희미한 드럼 소리가 들려왔다.
호스트는 음악교사로 근무하다 은퇴한 드러머다. 잠시 기다린 끝에 만난 그가 안내한 곳은 이 집 반지하에 있는 악기 연습실이다.
용도에 맞게 리모델링한 듯한 공간에는 드럼과 건반악기, 기타들이 세워져 있다. 벽에는 비틀즈를 비롯한 유명 뮤지션들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한쪽에는 세계 각국의 술들이 진열된 바(Bar)가 마련되어 있는데 한국 소주도 있다. 다른 쪽 면에 우리가 묵을 방과 화장실이 있다.
게스트가 없을 때는 동호인들끼리 모여 악기 연습하고 술 한잔 하며 놀고, 예약이 들어오면 손님에게 방을 내주는 모양이다. 연습실에 딸린 방을 놀리지 않고 에어비엔비로 굴리는 이 은퇴 교사도 참 알뜰하다. 별별 곳을 다 와본다.
케이프 브레톤 섬(Cape Breton island)에서 캐봇트레일(Cabot Trail)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 예약한 숙소는 트레일 시작점으로부터 2시간 거리에 있다. 캠핑장 아니면 고급 리조트들이 주를 이루는 이 지역의 숙박비는 다른 어느 곳보다 비싸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숲 속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달려도 마을이 나타나지 않는다. 마을은커녕 집 한 채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다. 야생동물이 튀어나올까 봐 긴장되었다.
과연 이런 곳에 집이 있을까 싶은 그런 지점에서, GPS 안내대로 좌회전해 들어가니 농가 한 채가 나타났다.
차에서 내리자 호스트 부부보다 먼저 덩치 큰 두 마리의 개가 달려와 격하게 환영해 준다. 어깨 높이까지 앞발을 들고 뛰어오른다. 그 기세에 혼이 나가 짐도 못 내리고 급히 집안으로 뛰어드니 실내에 있던 작은 개 한 마리가 돌진해 온다. 화장실 앞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있다. 그제야 숙박 앱에 '동물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한 글이 생각났다.
집 앞 언덕배기에는 염소, 양, 닭, 칠면조 등을 키우는 농장과 너른 풀밭이 있다. 천천히 집과 농장 주변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과하게 에너제틱하고 프렌들리한 개들이 달려드는 통에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낯선 방문객에 대한 이 집 동물들의 격정적인 환대가 동물을 다룰 줄 모르는 나를 난처하게 한다.
남편은 항공기 엔지니어 출신 독일인이고 아내는 러시아인이라는 60대 주인 부부는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 사귀다 결혼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몇 년 전 캐나다로 와 이곳에 정착했다며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 수년 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는 딸, 수입이 시원찮은 농장 운영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숙박업을 시작하고 우리가 첫 손님이라고 한다.
귀를 아무리 쫑긋해도 알아듣기 힘든 독일식, 러시아식 영어발음들이 휙휙 지나가지만 그들의 고단함과 쓸쓸함 만큼은 선명하게 느껴진다. 고향을 떠나 이국 땅 숲 속 외딴집에서 동물들과 함께 단 둘이 의지하며 사는 초로의 부부, 그들의 굴곡과 내면의 풍경을 세세히 알 수는 없지만 공연히 마음이 시리다. 낯선 방문객에 대한 경계심은 1도 없이 온몸을 다해 열정적으로 반기는 개들도 사람이 그리워서 그러는 것 같아 마음 짠하다.
밤이면 작은 창문으로 두둥실 떠있는 달과 어둠 속에서 고요히 쉬고 있는 나무와 숲, 농장이 보이는 아름답고 쓸쓸한 집!
헬리팩스(Halifax) 들렀다 몽톤(Moncton)에서 1박 하며 3주간의 캐나다 여행을 마무리했다.
몽톤의 호스트는 젊은 싱글 여성이다. 재택 근무하다 두세 달에 한번 LA로 출근하는 건설 엔지니어라고 한다. 뒷마당이 넓고 2층에 게스트룸이 여러 개 있는 제법 큰 주택인데, 그녀는 1층 현관 입구에 있는 방에서 일하며 숙박객을 관리하고 잠은 지하에 있는 방에서 잔다고 한다.
수시로 유머를 발사하는 밝고 유쾌한 그녀가 방을 안내하며 퀸사이즈 침대를 새로 들여놓았다고 자랑한다. 새 침대의 첫 손님으로 우리를 배정했다고 거듭 생색도 낸다.
그날 밤,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으니...
자려고 누웠는데 매트리스가 기우뚱하며 털썩 내려앉은 것이다. 깜짝 놀라서 내려와 살펴보니 매트리스를 받쳐주는 프레임 다리가 덜렁거리다 무게를 못 이기고 주저앉았다. 정말 별 일이 다 있다.
늦은 시간이지만 상황을 알려야 할 것 같아 메시지를 보내니 그녀가 곧바로 올라왔다. 주저앉은 침대를 보고는 오 마이 갓을 연발한다. 당황도 잠시, 공구를 들고 와 다리를 세우기 위해 볼트를 조이기 시작한다. 온라인으로 구매해 셀프 조립했는데 부품이 불량인 눈치다.
거의 딸 뻘인 그녀가 안쓰러워 남편이 하겠다 해도 그녀는 자기가 엔지니어라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남편은 본인도 엔지니어라고 힘이 더 세다고 공구를 달라 한다. 때 아닌 엔지니어 부심을 겨뤘지만 그녀의 고집이 이겼다. 아마도 집주인으로서의 자존심 혹은 책임감이었으리.
임시방편으로 조여 놓았으니 아침까지 절대 움직이지 말고 자라며 농담을 하고 나간 후 소란이 일단락되었다. 새 침대를 강조하며 뿌듯하게 자랑했다가 무안해진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잠시 후 에어비엔비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숙박비 40% 환불해 주겠다는!
황당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즐거워하며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괜찮다 했는데 말이다. 컴플레인도 안 한 건에 책임을 느끼고 재빨리 환불 결정을 내린 쿨한 그녀, 멋지다.
다음 날 집을 떠날 때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침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자친구와 상가에 갔다고 한다. 큰 웃음과 명랑한 추억을 선물해 준 귀엽고 멋진 그녀에게 리뷰와 평점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알록달록 아름다운 단풍과 고요한 호수의 나라, 캐나다의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부지런히 일하며 알뜰하게 돈을 모으고 취미생활 하고 예의를 지키며 사는 정겨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각각의 집에는 집주인의 청결관념, 취향, 가치관, 히스토리가 깃들어있다. 집과 사람이 빚어낸 스토리가 여행에 생동감 있는 컬러를 입혀 주었다.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여행의 추억이 풍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