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졌는가? 그럴 리가!

by 설인

여행이 길어질수록 관광지와 경치에 대한 감탄의 빈도가 줄어든다.


사람의 눈과 마음이 간사해서 비슷한 유의 풍광이나 유적지를 볼 때 자신도 모르게 전에 본 것 중 최고를 떠올리게 되니, 이전의 감동을 넘어설 만한 것들을 만날 확률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웬만큼 특별하거나 이국적이거나 스케일이 장대하지 않고서는 크게 감탄하지 않게 된다.


‘아마도 거긴 이러이러할 것 같아. 이런 날씨에 이 비용을 치르고 힘들게 갈 건 없지!’라는 결정을 할 때도 있다.


장기여행의 부작용이다.


현지 문화와 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의 갑갑함, 기본 값으로 달고 다니는 긴장과 불안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 다음이 궁금하거나 신나지 않다면, 시간과 돈을 들인 여행의 순간들이 심드렁하게 무채색으로 흘러간다면, 돌아다닐 수 있는 체력과 여건에 감사하는 마음마저 소홀히 하고 있다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주 다른 문화권의 나라로 넘어가거나, 집으로 돌아가거나!




남미의 최남단 우수아이아(Ushuaia)에서부터 대륙을 올라 와 스페인어권의 마지막 여행지 멕시코에서 맞이 한 권태를 미국과 캐나다 여행으로 날려버리고.


손때 묻은 물건들, 편안한 잠자리, 눈 감고도 찾아갈 동네 단골 마트와 미용실, 도서관, 휴대폰 채갈까 걱정하지 않고 덜렁덜렁 멍 때리며 걷는 산책길,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관계, 무심코 내뱉을 수 있는 모국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전반적으로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 작동되는 내 나라에서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거저 돌아가는 감격과 아쉬울 것 없는 주인의 당당함을 며칠 만끽하고, 다시,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체험하고, 곡선과 굴곡이 주는 위로와 휴식을 깨달았으며, 눈에 띄는 세상 온갖 것에 대해 시시콜콜한 관심이 생겨났는데,


스스로 뭐 좀 달라졌는가, 성장했는가?


그럴 리가! 그렇게 쉬울 리가!


원하는 모습으로의 변화와 성장에는 경험과 더불어 공부와 성찰이 뒤따라야 하는 법이니!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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