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보석 2
집 근처에 수영장이 생겼다. 오픈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매번 바쁜 일정들로 정신없던 나에게 평온한 주말이 찾아왔다. 수영장에 가기 위해 수영복, 수영모, 수경, 수건을 챙겼다.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의 손도 갑자기 분주해졌다.
겨울에 집 밖을 나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여러 겹의 옷을 입고 롱패딩까지 입자, 순식간에 까만 곰이 되었다. 일일 입장권을 끊고, 남편은 남자탈의실로, 나는 여자탈의실로 이동했다. 처음 이용하면 모든 것이 낯설다. 사물함 열쇠가 없다. 혼자 탈의실 안에서 헤매고 있자, 벙거지 모자를 쓴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새댁, 뭐가 없어?"
"네, 열쇠는 어디서 받는 건가요? 오늘 처음 와서요."
난감해하며 말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르신은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매표소에서 열쇠를 받아주셨다. 말로 설명해 주셔도 되는데 직접 데려다주시며 알려주시는 모습에 갑자기 아이가 된 기분이 들어 얼굴이 붉어졌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다시 탈의실로 돌아와 옷을 사물함에 넣었다. 수영장으로 입실하기 전 샤워를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데, 머릿속에는 조금 전 어르신의 행동이 떠올랐다.
먼저 해본 사람과 처음 해보는 사람은 다르다. 먼저 해본 사람은 여유가 있고, 처음 해보는 사람은 어설프다. 누구나 처음은 존재기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어르신의 다정한 손길이 머릿속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수영장 물의 온도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수영할 생각에 가슴은 뛰었지만, 몸은 바위를 들어 올리듯 무거웠다. 근력운동으로 기초체력이 향상된 자신감은 100m를 마친 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와 마주하며 금세 사라졌다. 1000m는 가볍게 하던 나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놀라움에 레인만 쳐다볼 뿐이다. 남편이 25m를 하고 숨을 헐떡인다. 운동의 종류에 따라 쓰는 근육이 다르다 보니 남편은 수영을 버거워했다. 수영은 호흡이 중요한데 남편은 음파를 내며 호흡이 딸려 물을 계속 먹고 있었다.
100m 접영을 시도하고 또 좌절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접영의 팔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멋진 날개가 아닌 허우적거리는 날갯짓에 당황해 한 팔 접영을 하며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25m가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있었는지 여러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그때 들려오는 남편의 한마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남편의 힘듦이 나를 웃게 만든다. 스키와 골프에서 월등한 재능을 보이던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난데없이 즐겁다. 남편의 고통이 자극제가 되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내 수영의 장점은 지구력이다. 속도는 남들보다 느리지만, 쉼 없이 1000m, 2000m를 해낸다. 이 또한 과거의 일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200m도 버겁다. 접배평자를 할 때 접영의 힘든 구간을 이겨내면 배영의 쉼이 있다. 이처럼 계속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400m를 완주하고 물 위에 누워본다. 이보다 편안할 수 없다. 온 세상이 고요하고 나만 존재한다. 추운 날씨 덕분에 사람들이 적어 레인에는 남편과 둘뿐이다.
지금 이 순간 물침대가 나의 무게를 포근히 감싸준다. 몸에 힘을 빼고 누워있자,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에 이곳이 수영장인지 하늘인지 알 수 없다.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남편이 목소리가 들린다. "회원님 여기서 주무시면 안 됩니다." 짧은 2분 동안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남편에게 물개수영으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물개수영은 얼굴을 내밀고, 손과 다리는 평영으로 한다. 호흡이 자유롭기 때문에 바다에서 하기에 적합하고, 힘을 빼는 연습에 좋다.
뭐든 잘하면 좋지만, 즐길 때 만족감이 훨씬 높다. 50분 동안 마음껏 놀았다. 운동은 시작이 어렵지, 하고 나면 개운하고 뿌듯하다. 달달한 케이크와 커피가 당긴다.
무료했던 주말, 수영 덕분에 더없이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몸을 일으켜 세워 무언가를 했기에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 덕택에 오늘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