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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 설 연휴 뭐 했니

행복 보석 5

by 정미숙

올해 설 연휴에는 하루만 휴가를 쓰면 9일 동안 쉴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지인들은 해외여행 준비로 바빴다. 설 연휴가 시작되는 날, 134만 명이 해외로 떠나느라 인천공항에는 새벽부터 많은 인파로 북적거린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일상을 여행처럼 보내기 위해 준비를 했다. 27일에는 설음식 재료를 사기 위해 장을 보고, 28일 설음식을 만들었다. 제사가 없으면 좋은 점은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어 가족들과 나눠 먹으면 된다. 시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원에 계실 때면 캠핑장에서 전을 부쳐 먹으며 명절 분위기를 냈다. 지금은 퇴원하셨기에 함께 먹을 전과 불고기를 재우고, 어머님을 위한 밑반찬을 만들었다.


매년 전은 부녀의 찰떡 호흡으로 완성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부녀의 손은 바쁘고, 입은 즐겁다. 딸이 계란 옷을 입혀서 구이바다에 올려주면 남편은 줄 맞춰가며 전을 올린 공간을 만든다.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진 꼬치 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꺼내달라고 손짓한다. 채반에 줄을 맞춰 꺼내놓자,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이 간다. 딸이 젓가락으로 손을 막으며 한마디 한다.

"엄마, 그만 드세요!"

"미안. 너무 맛있어서."

만드는 것보다 먹는 게 더 많다 보니 열심히 전을 부쳐도 양이 늘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에 동태전, 육전, 동그랑땡을 붙이는 부녀를 도와 전 보관 채반 용기에 가지런히 담았다. 고기를 30만 원이나 샀는데 생각보다 양이 적다. 어른들은 어떻게 그 많은 음식들을 준비하고 만들었지 놀라울 뿐이다.


코로나19로 명절 때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게 되었다. 코로나가 끝난 후에도 서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명절에는 가까운 시댁만 가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친정부모님이 많이 섭섭해하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받아들이셨다. 이후 4월 아빠 생신과 여름휴가에는 꼭 부모님을 찾아뵌다.


며칠 전 친정아빠가 전화를 하셨다.

"막내야, 아빠가 설 다음날 너희 집에 가려고 하는데 괜찮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먼저 오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라 덜컥 겁이 났다.

"아빠,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없어. 그냥 겨울이도 보고 싶고, 너도 보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언제든 오세요.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시간 보내요."


친정부모님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모든 음식은 두 배가 되었다. '여행은 준비할 때 더 즐겁다'는 말처럼 오랜만의 부모님 방문에 설렌다. 가슴을 진정시키며 음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운 덕분에 집안이 엉망진창이었다.


아빠는 깔끔한 분이시다. 분명 이 모습을 보면 폭풍 잔소리가 연휴 동안 이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에 가족회의를 열었다.

"남편, 장인어른 성격 알죠? 겨울아, 할아버지 알지?"

"알죠."

"시간이 없으니 한 방씩 맡아서 정리 정돈하자."

"남편은 안방, 겨울이는 겨울이방, 엄마는 공부방 할게. 거실은 우리 방개(로봇청소기 이름)에게 맡기자."


일사천리로 각자 맡은 공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안방과 딸의 방에서 소리가 들린다.

"청소 끝!"

쏜살같이 안방과 딸의 방으로 가본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방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며 뿌듯해했다.

체력이 방전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냉장고 문을 열고 딸은 우유를, 남편과 나는 두유를 한 번에 들이켰다. 설탕 무첨가 두유가 이렇게 달콤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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