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보석 6
친정 부모님을 모시러 딸과 함께 터미널로 향했다. 긴 연휴로 모두 여행을 떠난 것인지 항상 막히던 구간에 차들이 보이지 않는다. 주차를 하고 대기실로 올라가자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도착했다는 아빠의 말에 주변을 살펴보지만 부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눈 밝은 딸이 할아버지를 먼저 발견했다. 강릉이 아닌 곳에서의 만남은 더욱 반갑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엄마는 추우신지 패딩점퍼에 달려있는 모자를 쓰고 있다.
몇 달 전 친정에 갔을 때 분명 겨울 모자를 두 개 사드리고 왔는데 엄마는 미처 챙기지 못하신 모양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근처 백화점에 들렀다. 엄마에게 어울릴만한 모자를 딸과 함께 골라드렸다. 동그란 모자가 엄마를 더욱 귀엽고 사랑스럽게 만들어줬다. 엄마도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자꾸만 웃으신다.
“할머니 정말 잘 어울려요.”
“딱 어르신 모잔데요.”
“엄마, 겨울에는 꼭 모자를 써서 체온을 유지해야 해요. 아끼지 마시고, 꼭 쓰고 다니세요. 아빠가 항상 모자를 쓰는 이유가 있어요.”
엄마는 알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머리가 따뜻해진 엄마는 돈을 쓰게 해 미안하다며 손을 꼭 잡으셨다. 엄마는 항상 자식에게 짐이 되기보다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분이다. 백화점에 온 김에 점심도 먹고 가기로 했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사드리고 일어서는데 아빠가 부른다.
“막내야, 아빠 휴대폰 케이스 좀 사러 가자.”
필요한 것을 이야기해 주는 아빠가 좋다. 표현하면 알 수 있지만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부모도 자식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 관계가 편안해진다. 아빠는 지갑형 휴대폰 케이스를 원하셨다. 아빠 휴대폰이 오래되다 보니 강릉에서는 구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알파세대의 빠른 검색으로 휴대폰케이스 매장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수원역으로 이동했다.
수원역 8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휴대폰케이스 매장이 보였다. 다양한 케이스 중에서 아빠는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고르셨고, 점원은 케이스를 교체해 주었다. 아빠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하다.
집에 도착한 아빠는 사위를 보자 휴대폰케이스를 자랑하셨다. 엄마도 모자를 쓰며 깜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갑자기 조용하던 집안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남편이 휴대폰케이스를 만지다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아버님, 케이스에 휴대폰을 직접 붙이면서 휴대폰이 망가졌는데요.”
남편의 말에 놀란 가족들은 휴대폰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이럴 수가 휴대폰이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내일 as센터에 방문하기로 했다.
수리비는 5만 원이다. 다만, 언제 또 망가질지 알 수 없다며 바꾸기를 권했다. 그렇게 5년 된 아빠의 휴대폰과 이별을 고했다. 휴대폰 대리점 점원은 아빠에게 어울릴 만한 폰을 추천해 주셨다. 점원은 아빠가 원하는 지갑형 케이스를 선물로 주셨고, 어제 새로 산 케이스지갑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고객님, 이 케이스지갑은 바로 휴대폰을 붙여도 되지만, 지난번 같은 고장의 위험이 생길 수 있으셔서 기본케이스를 하나 붙여서 사용하시면 훨씬 편하실 겁니다. 제가 이것도 같이 드릴 테니, 제가 드린 케이스가 망가지면 이걸로 교체하세요.”
친절한 점원의 태도에 감동이다. 고객이 조금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것은 고객입장에서 고마운 일이다. 요즘은 생각보다 친절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어르신들은 더욱 그렇다.
어제오늘 만났던 직원들을 잠깐 비교해 보면, 첫 번째 점원은 물건만 팔았다. 두 번째 점원은 물건을 고객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까지 안내를 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고객의 만족도는 확연히 다르다. 자신이 맡은 일 속에서 이 작은 차이가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생각지도 않은 휴대폰의 망가짐 덕분에 아빠는 새 휴대폰을 가지게 되었다. 아빠는 기분이 좋다. 부모님과 함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보통저수지는 추운 날씨에 꽝꽝 얼어 있었지만, 흩날리는 눈 덕분에 겨울을 만끽하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부모님과 파스타를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한잔씩 마셨다. 아빠도 웃고, 엄마도 웃는다. 이보다 행복할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여든이 넘은 부모님과 또 이런 시간이 허락될지 알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작년 12월 여든이 된 엄마만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어드렸다. 현재 도서관에 전시 중이라 같이 구경을 갔다. 엄마와 똑 닮은 표지에 웃음이 나온다. 인증사진을 찍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로또가 뭐 별건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하면 그게 로또지.
- 나의 완벽한 비서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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