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제자리(스포주의)

앤드루 포터_<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by 아시시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나의 중요한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 생각에,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중에서 -



작가 앤드루 포터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단편소설 부문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남자인데 화자는 여자다. 여자가 보기에 무리없는 전개와 그의 내면을 표현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교수와 학생이라는 소재가 신선하다. 다른 학생들은 경멸의 눈빛을 쏘며 나가버리고 유일하게 답안지를 작성해서 낸 학생, 헤더. 그를 집으로 초대하는 교수, 로버트. 처음에는 물리학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차츰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속내를 토로하며 감정적인 교류가 오간다. 헤더에게는 이미 연인이 있다. 연인 콜린은 학교에서 유명했고 수영 선수였던 상급생이었다. 심지어 교수도 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체로 이야기가 술술 읽히며, 읽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부모와 버금가는 나이의 이성과 썸을 탄다는 게 정서적으로 맞지 않아 별점은 4.0을 주었다.



단편소설이기에 감정선을 충분히 다룰 수 없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드러내기 충분했다. 특히, 헤더는 학생 시절부터 의사의 아내가 되기까지 그 삶이 무료해 보이기도 했다. 로버트 교수가 그의 삶에 들어오면서부터 그녀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찾고 갈망하기조차 한다. 콜린에게서 없는 무언가를 그에게서 느꼈던 걸까? 아무래도 나이와 학식, 연륜이 있어서인지 로버트는 헤더의 삶 자체를,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었다. 로버트 때문인지, 그녀의 말대로 우울증 때문인지 모를 이유로, 그녀의 피임은 결혼 후에도 지속된다. 로버트가 죽고 나서야 헤더는 삶에 변곡점이 왔다. 아이를 갖으려 노력하고, 멈추었던 공부도 이어간다.


이 책의 제목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다. 소설의 제목에는 어울리지 않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과연 누가 빛이고 누가 물질이라는 걸까. 단편소설 읽기모임 중 한 분이 올려주신 글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소설 제목으로 가당키나 한가. 실제로 이건 물리학 용어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양자전기역학:빛과 물질에 관한 이상한 이론’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낮에 램프를 켜놓고 보면 빛이 유리창의 표면에서 부분적으로 반사된다고. 가령 빛의 입자 100개가 있다면 96개는 투과하지만 4개는 부딪혀 돌아온다고. 문제는 어떤 녀석이 투과하고 어떤 녀석이 돌아올지 알 수 없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은 96개의 빛에 해당할 테고, 그럼 4개의 돌아오는 빛이 로버트와 헤더일 것이다. 하지만 헤더는 시간이 지나 결국 제자리를 찾아간다. '결국에는 떠나야 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자신의 말을 지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운이 남는 책이다. 우리네 정서에 맞지 않으나, 김민영 작가님의 말씀대로 외국작가가 쓴 글이기에 같은 소재로 다른 느낌의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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