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은희경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연작소설이란, ‘독립된 완결 구조를 갖는 소설들이 일정한 내적 연관을 지니면서 연쇄적으로 묶여 있는 소설 유형’을 말한다(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장미의 이름은 장미’,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아가씨 유정도 하지’의 소설이 한데 묶여 있다. 주인공의 이름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 다만 뉴욕이라는 배경의 공통분모가 있다. 잠시 살았거나, 여행, 어학원, 일 등의 경로를 통해 이 도시와 인연이 닿은, 이방인의 자리에서 심리적으로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민영과 승아의 오랜만의 만남. 승아는 민영이 머무는 숙소로 여행을 간다. 부푼 가슴으로 시작한 여행길이 후회의 순간으로 직면하게 된다. 서로 생각이 다른 둘, 각자의 상황으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가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생각해보며, 나의 오해가 엮인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수진이 어학원을 통해 뉴욕에 머문다. 타인에게 자신을 납득시킬 필요도 없이, 조금은 자유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장미의 이름은 변함없이 장미인 것처럼 나의 정체성은 그대로임을 되새겨본다.
p.90 수진은 이곳으로 떠나오며 그녀를 규정하는 나이와 삶의 이력에서 잠시나마 이탈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p.104 장미를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달콤한 향기는 그대로이다. 여전히 장미이다.
p.135 장미의 이름은 장미. 반찬의 이름은 반찬. 마마두의 이름은 마마두. 나는 여전히 미래에 대해 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작가 마마두가 나무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뜨거운 소금을 검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푸른 하늘과 호수의 장밋빛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해본다. 누군가의 왜곡된 히스토리는 장밋빛으로 시작한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
주인공이 작가 초청의 자리로 뉴욕에 가게 된다. 어머니도 함께가고 싶어하여 뜻하지 않게 동행하게 되는데, 어려서 이해할 수 없던 어머니를 이해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50대 남성의 시각으로, 어머니를 회상하며 쓴 소설.
p.225 그때 살아봤다고 해서 다 옛날을 잘 아는 건 아니야, 사람은 자기의 현재를 살아야지.
p.243 하지만 [삼십 세]와 [사십사]라는 소설은 있어도 [오십 세]라는 소설이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쯤 되면 나이드는 일이 전혀 이야깃거리가 아닌 것이다.
p.246 그게 꼭, 죽으려고 연습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 지금처럼
p.250 이따금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 뭘까 떠올려볼 때가 있다. 대여섯 살 무렵 어머니와 바다에 같이 갔던 날 이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도 없다. 어머니의 말대로 아마 더 많은 죽음의 예행연습을 하면 그때에 더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그 기억 속에서는 나를 포대기에 안은 젊은 어머니가 아가씨처럼 웃으며 재즈와 올드 팝에 맞춰 춤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소설인 '아가씨 유정도 하지'가 인상깊다. 읽은 후 잔잔하게 전해오는 먹먹한 여운이 좋았다. 작가가 등장인물 모두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읽는 내내 등장인물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엄마와 자녀간의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 주인공이 그의 엄마를 헤아리는 장면에서 내 엄마를 떠올렸다. 나의 엄마도 충분히 힘든 시기가 있었음을, 마음이 어려워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얽히고설킨 관계가 때론 족쇄처럼 느꼈을 수도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살아냈음을.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한 여성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동감하는 순간이었다. 문득, 자식 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억압하고 살아왔던 동시대 어머니들께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누군가에게 당연한 일이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서로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즉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금 헤아려보게 되었다. 마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처럼. 맞지않는 불편한 자리에서 불편하게 머물다 온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