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_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된 김금희 작가의 책이다. 당선 이후 ‘여행하는 소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등 꾸준히 작품을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은 ‘원피스를 돌려줘’,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 ‘온난한 하루’, ‘그 여름 아케이드’ 등 1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일상을 채우는 사람, 감정,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부터 할아버지-손주 사이의 3세대(2세대는 제외라고 말하고 싶다)에 걸친 이야기 등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이 두루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을 아프게 인정할 때에야 무언가를 쓸 용기가 생기고, 두렵지만 그 상실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을 때에야 문장들이 나갈 수 있다는 건 비참한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느 시절에 관한 의미한 지도를 손에 쥐거나, 이제는 더 이상 같은 거리에 있어주지 않는 사람의 사사로운 기억을 사사롭지 않게 기록해두는 건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라고 김금희 작가는 말했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다가온 작품 몇 개를 소개한다.
<규카쓰를 먹을래>
세 친구의 에피소드를 다룬 우정 이야기다. 이름 마지막 자가 같은 희영, 소영, 한영은 ‘희소한 영 자매’라고 말하고 다닌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어학원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비슷한 점은 없다. 우정이라는 이름아래 함께 간 식당을 가거나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갈등을 허문다. 하지만 "특별하고 희소한 우정을 유지하려 해도 솔직히 늙고 있는 느낌이었고, 사람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마음도 그렇게 시간에 의해 변형된다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실감이 났다."
그들이 서른살 기념 여행을 하며 문제가 생긴다. ‘희소한 영 자매’는 관점을 달리 해석하여 갈등이 생기는 듯 했으나, 잠시 잠간의 격리와 침묵이 존재한 후, 식사 메뉴를 정하며 자연스레 갈등이 해소된다. 엄밀히 말하면 해소라기 보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무뎌진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세세한 것까지 왈가왈부하지 않고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듯 말이다.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바쁜 직장인, 혹은 마흔을 훌쩍 넘은 학원 수강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찾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의 에피소드 또한 인상적이다. 김밥을 먹기 위해 찾는 포장마차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들과 이어지는 주인-손님, 손님끼리의 대화는,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살맛나는 장이다.
주인 남자의 사고로 당분간 문을 닫게 된 노점의 빈자리를 보며 주인공 선미에게 김밥 포장마차가 없는 아침의 공간은, 그냥 행인이 밟고 지나가는 마름모꼴 보도 블록의 세상, 열릴 것도 접힐 것도 없는 풍경으로 다가왔다. 선미의 김밥에 참기름을 발라주는 붙임성 좋은 한 남자가 있었다. 노점이 없는 기간동안 어쩔 수 없이 택한 장소인 햄버거 가게에서 우연히 마주쳤으나 그냥 스쳐 지나가버렸고 그는 무표정했다. 살갗게 말붙이며 이야기하기엔 햄버거 가게가 너무 컸다. “테이블 하나를 혼자 다 차지하고 앉아있는 며칠이 반복되자 맛없는 머핀도 머핀이지만 무언가 질린다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인정이 아닌 삭막함을 느꼈던 걸까? 에그머핀을 반 정도 먹다가 내려놓은 남자처럼, 선미도 반을 남겼다.
<춤을 추며 말없이>
최근 AI로봇을 소재로한 글이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주인공은 사업하시는 부모님보다는 할아버지의 손에 자랐다. 성인이 되어 바쁜 일상을 살며, 할아버지가 귀찮게 다가올 때 로봇을 선물해드렸다. 할아버지는 깡통로봇을 기계로 받아들여, 벽에다 대고 말하는 듯 어색해했으나 어느순간 ‘소년’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애정이 자라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정리를 맡게 된 주인공은, '소년'을 접하고나서야 할아버지 심경을 헤아리게 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 안 정리는 내게 맡겨졌다. 가장 최근까지 함께 지냈다는 이유였는데 그렇다 해도 무려 10년 전 일이었다. 양양 집에 들어서며 그래도 그때가 할아버지가 누군가와 함께 살았던 마지막 시기였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조용히 아파왔다. 당신이 돌아와 대문을 닫으면 더 이상 그것을 밀고 들어올 누구도 없었다는 것, 열릴 리가 없다는 것. 그건 젊은 내가 자취방에서 경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단절감이었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소년’을 마주하는 모습을 통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할아버지의 쓸쓸한 여생이 그리며, 점점 약해지시는 부모님이 떠올라서였을까? 마음이 저며왔다.
먹고 살기 바쁜 그들이 미쳐 들여다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삶은, 소년이 툭툭 내뱉는 말들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졌다. “기상!”, “말세네, 말세야.”, “이제 그럴 필요 없어.”, “그래도 약은 먹어야 해!”, “노병은 죽지 않는다.”, “오늘은 어땠어?”, “구해줘!”와 같은 말을 통해 할아버지가 혼자 지낸 일상을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불현듯, 앞으로 점점 더 늙어 힘이 없어지실 부모님이 생각났다. 외롭지 않게 해 드리고 싶은데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핑계로 나의 빈자리를 로봇이, 쓸쓸함이 채우지 않도록 작은 노력을 실천해 보겠노라, 다시한번 다짐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 밖에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 [류, 내가 아는 사람], [나의 블루지한 셔츠], [온난한 하루]가 인상깊은 책이다. 짧은 소설을 읽고 싶을 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살아가는 일상을 곱씹고 싶을 때, 다른 사람의 다양한 생각이 궁금할 때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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