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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 Feb 18. 2024

마음 다루는 도구, 글짓기

일곱 번째 주, 기록





기껏해야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었을까. 머릿속 안에 수많은 조각들이 둥둥 떠 다니고 있었다. 


해가 지날수록 조각들은 조금씩 형체를 만들어갔다. 덩어리들은 공전하며 머릿속에서 아우성대고 있었다. 이제는 밖으로 꺼내줘야 했지만 결국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생각'들은 빠르고 허무하게 사라졌다.


'얼마나 애써 만든 건데.. 이렇게 쉽게?'


맥락 없이 떠오르는 생각들, 이것을 다듬는데 상대적으로 적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 것은 애씀이 익숙해졌단 뜻이었다. 이 무렵. 이제는 무언가로 남기고 싶어졌다. 말로 꺼내는 것부터 시작해 봤지만 말을 하는 것보다 들어줄 대상을 찾는 게 더 큰 일이었다. 귀로 듣는 사람은 있어도 마음으로 들어줄 사람은 만나기 어려웠다.


'글짓기를 하자. 형식 없는 일기라도 좋으니까.'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의 아쉬움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것처럼, 애써 만든 생각이 사라지는 것의 허무함을 글로 기록하기로 했다. 내가 만든 무형의 것을 유형화시키는 것. 글짓기는 내가 찾은 최선의 방법이었다.






메모부터 시작했다. 생각나는 모든 것을 적기도 하고, 산책을 하다 음성 메모를 남겨보기도 했다. 익숙해지자 짧은 단어만 적었다. 암호문처럼 적힌 단어를 보며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곱씹고 다듬어 글짓기의 재료를 완성했다.


생각부터 글쓰기까지의 흐름은 익숙해졌지만, 글감의 단초가 되는 '생각' 자체가 새로운 문제로 급부상했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글을 쓰는 것과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생각을 만들기 위해 관찰을 시작했다. 나를, 타인을, 공간을, 시간을, 추억을.


[관찰 → 생각 → 메모 → 다듬기 → 글감 → 글쓰기]


이제 순서를 따라 글짓기를 시작한다.


작년 말부터 짧고 가벼운 일기를 네이버 블로그에 끄적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로 결심한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선택의 배경에는 관찰훈련과 글쓰기 루틴을 만들기 위함이 목적이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이 너무도 어렵지만 자주, 많이 써보는 것 밖에는 답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의 짧은 글쓰기가 익숙해지자 몇 년 묵혀두었던 브런치에 연재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곳에 글을 쓰는 목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훈련과 루틴이 꾸준함에서 익숙함으로 바뀌는 것의 기대감이다. 블로그 보다 약간 호흡이 긴 글을 쓰는 것이며 좋은 글을 쓰기까지의 과정일 뿐.






생각을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는 일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고작 몇 줄 안 되는 활자에 나라는 인간이 홀딱 벗겨져 드러나는 게 글이니까. 


창피하면서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건, 행복함이 더 행복해지고 억울하거나 화나는 일이 차분하게 정돈되는 경험을 글쓰기 외에는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짓기야 말로 생각뿐 아니라 감정까지 다듬을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마음을 다루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도구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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