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주, 또 하나의 첫날
'새해 인사 두 번 받으면 어때.'
이번 주의 가장 큰 화두는 '음력의 1월 1일' 설날이다. 24년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 하고 10일이 넘게 흘렀지만 음력의 첫날도 중요한 우리나라다. 나에게 설날은 새해 인사를 한 번 더 하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날이다. 생각해 보면 새해 인사를 40일 만에 또 하는 게 어색한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 한 번 더 하는 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왠지 복도 두배로 줄 것 같아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끊지 못하고 있다.
'추석과 다르게 설날은 유독 어릴 때 생각이 많이 난다.'
한 살 더 먹는다고 세뱃돈 인플레이션을 주장하며 얼마를 받게 될지 설레하던 초딩 때 친구들과의 추억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반가우면서도 쑥스럽던 첫인사가 10분도 안 돼 솜사탕처럼 녹아버렸던 사촌들과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며칠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아쉬워서 눈물 글썽이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때는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웃음만 난다. 떡국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거라던 할아버지의 말씀도 떠오르는데 이제 우리나라만의 나이가 없어진 지금을 사는 아이들은 설날을 어떻게 추억하게 될까.
'함께 식사하는 새로운 방법론.'
작년과 올해의 반복이라면 차례를 지내지 않았단 것이고, 새로운 건 부모님 댁에서 여동생네 부부와 함께 식사한 것이다. 진짜 웃긴 건 '함께'의 새로운 정의다. 부모님은 평소 그들의 시간에 맞게 10시에 식사를 하셨고, 우리는 12시에 떡만둣국을 먹었으며, 여동생네는 차가 막힌 관계로 1시쯤 식사를 했다. 결국 우리 6명은 같은 시간에 식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함께 먹은 것이냐 반문한다면, 시간은 달랐으나 엄마가 차려준 밥을 같은 공간에서 먹었으니 함께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우리 부모님의 셈법이었다. 이럴 거면 우리를 조금 일찍 불러도 될 일인데 바쁘게 사는 자식들을 위한 배려의 마음을 알기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셈법이 황당한 건 사실이다.
'루틴도 가끔은 쉼이 필요한 것 같아.'
명절은 가족들과 약속된 일정을 완료한 후, 친구들과 저녁에 만나 연속된 휴일의 여유를 술과 함께 즐기는 건 일종의 루틴이다. 내가 연락하지 않아도 A에게 연락이 왔고, A가 연락이 없으면 B가 그렇게 했다. 정한 건 아니었지만 A와 B에게 소식이 없다면 내 차례였다. 그런데 올해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소원해지거나 서운함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쉬어감이 필요했을 뿐이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톡을 남겼다. 물론 누구에게 보다 진심을 담아서.
설날에 스며든 일주일은 여유와 바쁨 사이, 그 어딘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