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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 Jan 28. 2024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것

넷째 주, 사진





'철컥', '틱', '찌직'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들의 셔터 소리다. 카메라의 셔터 소리라 하면 일반적으로 '찰칵'이란 의성어를 사용하기로 합의된 듯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 중에 '찰칵' 소리를 내는 것은 없다. 그나마 아이폰의 소리가 그것과 가장 유사한 것 같다.(갤럭시는 안 써봐서 모르겠지만.)


시작은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학여행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남겨준 우리 아버지처럼 친구들과 나를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에는 필카를 썼다. 지금처럼 사진을 찍고 바로 확인할 수 없던 시절이라 기다림이 필요했다. 수학여행을 다녀와 집 근처 사진관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는 한 장씩만 했다. 친구들이 내 앞에 줄을 선다. 자기가 갖고 싶은 사진에 이름을 적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우리는 빛바랜 사진을 보며 철없던 그 시절에 고스란히 머무를 수 있다.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일까?'


바라보는 것을 넘어 잘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 무렵 이런 고민을 했었다. 답을 얻으려면 내가 어떤 사진을 좋아하는지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시간 여행을 하다 한 지점에서 멈췄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내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에. 뷰파인더 안에서 웃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담았을지, 굳이 이해가 필요할까? 내가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미소 짓는 이유는 어린 '나'의 모습이 신기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였을 거다.


그때부터 사진에 감정을 담기로 했다. 기록을 위한 도구에 감정을 담는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조금씩 노력했다. 그렇게 서서히 사진은 나의 일상이 됐다.









내 일상은 뜀박질도 멈추게 한다.

한강을 뛰다가 잠깐 멈춰서 사진을 찍고 다시 달린다. 처음은 달리는 것조차 버거워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심박수가 사진 본능을 다시 깨웠다. 지금도 나는 달리다 멈추고, 찍고, 다시 달린다. 사계절 내내 일상은 계속된다.









이경준 작가의 '원 스텝 원웨이'

오랜만에 사진전에 다녀왔다. 작년 목표 중 하나가 한 달에 한 번은 문화생활을 하기로 했던 거였다. 결국 12번을 채우지 못했다. 올 해는 목표를 수정했다. 분기에 한 번은 해보자고.


사진전. 영감을 얻기에 좋은 문화생활이다. 특히 대형으로 인쇄된 사진을 보고 있자면 그 크기 만으로도 압도될 때가 있다. 맛집인 듯 줄을 서서 끝도 없이 인증샷을 찍는 관람객 때문에 제대로 음미할 수 없는 건 매번 아쉽지만 내가 작가라면 이 광경을 보는 게 너무 행복하지 않을까?









독립서점 '이라선'

전 세계 다양한 작가들의 사진서적을 볼 수 있는 보물창고 같은 서점이다. 감정은 메마를 일이 없는데 출구가 막혀버린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라선을 찾아 도저히 내 머릿속에서 나올 수 없는 사진을 보고 있자면 동공이 확장되며 쌓여있던 무언가 해소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사진 충격 요법이라고나 할까.


헌법재판소 지척에 있는 이 독립서점의 가장 큰 장점은 영감'을' 받기에 최고의 장소라는 것이고, 주의 사항이라면 영감'만' 받고 나올 수도 있다는 거다. 문을 닫고 나오며 나의 사진 실력에 절망할 수 있으니 현실과 마주할 단단한 마음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주간을 정산하기 위함이었던 이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냥 흘려보내기 싫은 감정을 담고 싶어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이미 사진으로 그걸 하고 있었다. 서서히 일상이 되었던 사진은 어느새 온전한 나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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