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주, 운동
디스크 문제로 15년 간 취미로 하던 축구를 그만두고 여건에 맞는 유산소 운동을 찾아야 했던 게 벌써 5년 전이다. 이것저것 고민하다 수영을 시작했고 물에서 운동하는 맛에 푹 빠져 한강 건너기 대회까지 나가 메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코로나 때문에 좋아하던 수영장을 갈 수 없게 됐다. 다시 제대로 된 유산소 운동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집 근처에 한강공원이 있어 별다른 고민 없이 그냥 나가 뛰었다.
그렇게 난 러닝을 시작했고, 벌써 세 번째 겨울이다. 조금씩 거리가 늘어가는 모습에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고, 점점 빨라지는 페이스를 보며 얼마 지나지 않아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겠단 자신감이 가득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 것처럼 가장 폼이 좋았을 때 예고 없는 불청객, 부상이 찾아왔다.
실력이 올라가니 신이 나서 아직 이겨낼 수 없는 몸을 혹사시켰던 거다. 부상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길들여지지 않는 욕심. 언제나 이게 문제다.
'실력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부상을 당하니 러닝 성장통이 마치 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 하는 일의 초창기시절. 성공을 향해 순항하던 내 모습에 도취되어 욕심을 부리는 지도 모른 채 부족한 실력이 누적되어 화를 부른 경험이 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운이 좋아 잘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하루빨리 나가서 달리고 싶지만 발목은 여지없이 신호를 보냈다. 사실 걸을 때 통증이 없는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두 달을 더 쉬었을 때 한강에서 산책을 하다 살짝 뛰어 보기로 했다. 대신 조금이라도 통증이 느껴지면 당장 멈추기로 하고, 걷는 수준과 비슷하게 뛰기 시작했는데 아프지 않았다.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조금씩 속도를 내보았다. 다치기 전과 비교하면 훨씬 느린 페이스지만 뛸 수 있다는 그 자체에 감사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마음을 다 잡고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선에 섰다. 걱정은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음에 대한 마음이었다. 실수한 과거와 감사함까지. 나의 러닝 성장통과 꼭 닮은 패턴이다. 이 시간을 오롯이 견뎌내니 '천천히', '꾸준히'라는 단어에 숨겨진 함의가 얼마나 위대한 지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숨이 헉헉 거릴 정도로 페이스를 올리지 않는다. 속도를 늦추면 풍경을 볼 수 있고, 흩날리던 내음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마침내 산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기분으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한 번씩 기분 좀 내고 싶을 땐 마음껏 달리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기분 전환용이다.
눈이 많이 내렸다. 그래도 나는 달린다. 춥기도 하고, 미끄럽기도 하지만 위험할수록 욕심을 부리지 않고 더 천천히, 조심히 달리면 된다. 주변을 살피면서. 그마저도 어려우면 걸어도 되고 잠시 멈춰도 된다. 늦더라도 꾸준히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있는 나와 만날 수 있다. 이때 마주하는 내 모습이 궁금해서 달리는 걸 참을 수 없다.
러닝, 참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