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주, 나만의 꿈을 꾼다는 것에 대하여
꿈꾸던 것을 이루어 봤느냐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소소한 꿈이지만 그래봤다고.
"너는 꿈이 뭐니?"
꿈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길래,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울 초등학생에게 이런 걸 묻는 걸까? 꼬마의 꿈을 궁금해했던 어른들은, 이 질문에 명확한 답할 수 있었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른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꿈의 함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직업'이었다. 꿈이란 어떤 직업을 꿈꾸고 있냐는 의미였다. 충격이었다. 알고 있던 꿈이 질문 속 꿈과 너무 다른 의미여서. 자매품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것도 있었다. 어른들의 질문에선 '꿈'이 '직업'이 되었고, '사람'도 '직업'이 되어있었다.
‘한 사람의 어떠함을 직업으로 정의할 수 없듯, 꿈 역시 직업으로 정의할 수 없는 거잖아.‘
꿈이라는 건 뭘까? 중학생이 되자 최소한 꿈이 직업일 필요는 없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직업이 아니더라도 뭔가 이루어야 하는 것이란 생각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직업이 아닌... 이루어야 할 것', ‘직업처럼 이루어야 할 것이지만 직업은 아닌 것’ 그게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죽어도 하고 싶은 것'. 꿈을 떠올리면, 뭔가 특별히 정의하기 어려우면서도 고귀하게 느껴져 마치 죽음과 견줄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것이 상상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소한 행복을 알게 된 날이었다. 한강에 앉아 있는데 강물에 반짝이는 윤슬이 그날따라 보석처럼 예뻐 보였다. 눈이 부시는데 찡그리기는커녕 그걸 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행복했다. 그러자 꿈만큼 거대한 것이라 생각했던 행복의 막연함이 민들레 꽃씨처럼 바람에 사라져 버렸다. ‘일상 속 자그마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구나’, ‘이런 것을 소소한 행복이라 하는 거구나’ 그렇다면 꿈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졌다. 거대한 것이 아닌 일상 속 자그마한... '소소한 꿈' 뭔가 말이 되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일상 속 소소함이 행복을 알려주었듯 꿈도 거대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번 소소한 꿈을 찾아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봤다. 매일 혹은 매주 반복되는 나의 재미. 재미를 느낄 때 얻는 행복. 소소한 행복이 소소한 꿈으로 연결되자 더 이상 소소함은 어떤 거대함보다 작지 않게 되었다. 어른들의 질문 속 꿈이 아닌 '나의 꿈'을 정의할 수 있게 되자, 본격적으로 꿈을 찾아 떠날 채비가 끝난 것 같았다. 그렇게 꿈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고 몇 년 후 나는 결국 꿈을 이루었다.
대단히 큰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꿈을 이룬 것 그 자체만으로도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행복했던 건, 꿈을 찾는 과정에서 정의할 수 있게 된 '나의 꿈'이었다. 꿈을 정의할 수 있게 돼버리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안내해 준 곱디고운 길보다 포장되지 않은 '나'의 길에서 얻은 것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꿈을 나의 길에서 찾았듯, 살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그 길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