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니스 댄스 자리
댄스 자리를 위하여,
오늘은 피트니스의 댄스 자리 명단 대기줄에 15번째 줄을 섰다. GX실 댄스 수업에서 자리 번호 2번과 4번이 내 앞에 서 있었고 내 뒤로 7번이 따라섰다.
나는 댄스 수업이 다시 시작된 이래로 줄곧 14번 자리다. 이렇게 나란히 서 있는 네 명은 한 달간 고정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2,4,7,14번에서 댄스 수업을 했다.
첫 줄의 여유로다.
2번과 4번은 열세 번째, 열네 번째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들 자리가 보장되기에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7번은 열여섯 번째에 서 있어서 불안하다. 앞줄에 서 있는 누군가 자기 자리에 이름을 적을까 봐, 초조한 표정이 역력하다. 평소에 차분한 편인 7번인데 오늘은 조급하여 심장박동 소리가 커지고 목소리 톤도 높다.
나는 열다섯 번째에 서 있지만, 14번이나 15번이나 별 다를 게 없다. 오히려 15번이 셋째 줄 중앙이다. 하지만 그 자리는 내 숨은 의도가 있는 자리다. 내가 작년 일 년간 겪었던 자리 고충을 올해 신입 회원들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어떤 신입이든 하루 만에 댄스 수업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배려와 함께 양보하는 내 마음이 숨어 있는 자리다. 물론 나 혼자 속으로 내린 결정이고 혼자서 실천하는 흐뭇함이다.
작년을 잘 견디었구나!
작년 1년 동안 내내 가장 뒷줄에서 운동했다. 자리 번호 20~24번 정도였다. 그마저도 자리가 매일 바뀌었다. 처음 보는 새로운 얼굴이 ‘불쑥’ 나타나선 자기 자리라니, 기존에 다니고 있었다니, 하며 비키라는 식이었다. 가장 뒷줄 중 다른 빈자리가 있거나 여유로운 자리가 있어도 어디에 서든 신입에겐 자기 자리라고 주장했다. 말로 직접 세차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표독스러운 눈초리나 깁스한 고갯짓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 나를 비롯한 신입 회원들은 그냥 옆으로 비켜 줬다.
내가 피트니스에서 본 댄스 회원들 특징은 이러하다. 그들은 피트니스 내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기 것인 양 주인 행세하고, 피트니스를 매점매석한 듯 독점권을 행사했다. 피트니스 회원들은 모두 같은 회비를 내고 같은 회원권을 소유한 동등한 입장인데 말이다.
올해 경력 2년 차인 나도 이제는 마냥 웃는 얼굴로 피트니스 회원들을 대하지 않는다. 선한 이에게는 웃어주고 악한 이에게는 무표정하게 대한다. 무표정한 표정을 지을 때는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잘 연출해야 해서 연기자처럼 행동한다.
작년이다. 피트니스 기존 댄스 회원들은 내가 다닌 지 한 달 만에 또는 두세 달 이상 지나서 나타나선 자기 자리라고 우겼다.
‘그만큼 긴 시간을 쉬었다 나오면서 자기 자리라니. 똑같은 돈을 내고 등록했건만. 돈을 더 주고서 자리를 모두 사기라도 했나. 그것도 가장 뒷줄을 몽땅?’
나는 그래도, 그들의 만행에도 자리를 양보했다. 오래 다닌 앞줄에서도 자리 때문에 싸우는 걸 종종 봤기 때문에 뒷줄에다가 신입이니 당연하겠구나, 하며 양보했다.
원래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운동하러 간 거니까 어느 자리에 서서 하든 운동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댄스가 재밌었고 신나서이기도 했다. 수업하는 동안 댄스 음악을 아주 크게 틀고 운동하기 때문에 기분이 업되면 공연을 볼 때처럼 크게 소리 지를 수도 있다. 좋아하는 리듬이거나 아는 가사 가 나오면 큰 소리로 신나게 따라 부를 수도 있는 공간이어서 견딜만했다. 그 덕분에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뒷줄에서 운동하던 완전 초보 신입들 중에서 살아남은 자는 나뿐이다.
댄스 수업에서는 경력은 묵살하고 신입이면 보통 가장 뒷줄에 서서 운동한다. 작년 내내 뒷줄에서 운동하다 보니 한번 본 신입을 다시는 못 보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가 자기 자리라며 퉁명스러운 어투와 노려보는 표정으로 비키라고 하면 기분이 상해 나가 버리거나, 하루만 수업해 보면 초보는 따라갈 수 없겠구나, 느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중급도 버벅댈 텐데 그 정도도 아닌 최고급 수준 댄스 수업이었으니 말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생각해 본다. ‘댄스 자리 명단 대기줄에 서서 기다린 순서와는 상관없이, 한 달 정도 계속 섰던 고정 자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 배려이고 매너일까, 아니면 그냥 자신이 서고 싶은 자리 중 아무 자리에나 이름을 적게 해 주는 것이 각자 권리를 할당하는 걸까.’
내게 물어본다.
“정말 아무 자리에 서서 운동해도 상관없니?”
내가 대답한다.
“상관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댄스에선 댄스 룰이 있대. 내 뒤에 새로 들어온 회원이 나보다 신입이래. 내 뒤로 신입이 10명 이상 생겼으니 내가 나를 나름 인정하여 계산한 자리가 14번이잖아. 스물네 자리 중에서 열명을 뺀, 14번 자리가 내 하한 자리지. 그러니 언니들이 타 피트니스 경력은 0으로 친다고 알려 준 댄스 룰에 의거하여 내 자리는 14번이 된 거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댄스 수업에선 댄스 룰을 따르련다.’
애매하지만, 우선 운동 자체가 먼저이니 이렇게 대처한다. 언젠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생각나겠지. 댄스 회원들 모두가 서로 화합하고 점점 더 슬기롭게 대처하리라. 하지만 옳고 바르고 합당해야겠지. 모두에게 공정하고 더 만족스러운 자리 배정이 이루어져야겠지. 그런 날을 고대하며 우선은 운동에만 전념한다.
(202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