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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Jan 23. 2022

생각하기 나름

작은 책방에 간다

작은 책방에 간다.

작은 책방에 가는 건 처음이다. 궁금해서 설렌다.


내가 아는, 책을 파는 곳이란 교보문고, 그다음으로 영풍 문고였다. 십몇 년 전부터는 온라인 서점인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면서 yes24와 알라딘, 반디 앤 루니스도 알게 되었다.

책을 사는데 돈을 많이 쓰고 살았는데 올해 들어 이제야 알게 되었다. 작은 책방이 유행이고 전국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어 사람들이 이미 작은 책방 기행을 다니고 있는 것을.


올해 들어 알게 된 지인이 여름에 제주도 작은 책방 기행을 가자고 제의했었다. 숙박은 호텔 더본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고 하며 그 호텔은 백종원이 운영하는 호텔로 조식이 아주 맛있다는 극찬에 군침이 절로 돌았다. 예약 대기가 많다는 말에 그 호텔 조식이 더욱 먹고 싶어졌다. 제주 작은 책방도 궁금했고 책방 주변 맛집을 가자는 말에 군침이 돌았다.

그런데 나는 이럴 때 망설인다. 어쩜 좋지. 제주도는 가족들과만 갔었다. 지금껏 따로 나만 여행을 간 적이 없다. 10년 전 단 한 번 혼자 떠났던 유럽 여행도 수학 세미나 겸 선생님들과 학생들까지 함께 간 여행이었다. 가고 싶은데 걸리는 게 많다. 나를 멈짓하게 하는 대상들은,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는 두 키즈의 스케줄과 올해 들어 자주 관절통을 호소하는 신랑의 건강, 울 강아지 밥 주기 등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마구 떠올라 결정을 못했다. 게다가 나중에 가족들과 모두 같이 가자며 신랑이 가지 말라고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신랑이 진정 가고 싶으면 가라며 태도를 바꾼 것도 살짝 거슬렸다. 이리저리 상황을 둘러보다 결국엔 못 갔다. 작은 책방을 체험할 첫 기회를 놓쳤다.


그 후 당인리 책 발전소를 두 번째 책방 체험으로 계획했다. 마포에 있다는 말에 가까우니 가자고 단번에 약속했다. 그런데 으흐, 이번엔 같이 가기로 한 지인이 강의 일정이 변경되어 취소되었다. 두 번째도 못 가게 될 줄이야.


오늘은 세 번째 책방 계획이다. 처음에 가고 싶던 책방 느낌과는 다르지만 오늘 작은 책방에 간다.

오, 그런데 책방을 향해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책방에서 만나기로 한 지인이다. 책방이 궁금하여 설렌 나와는 달리 눈이 올 거란 예보에 운전할 수 없다며 그 지인은 약속을 취소했다.

세 명이 만나기로 한 약속이다. 그래서 나는 가겠다고, 이미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다른 한 분과는 오전에 약속 체크를 위해 소통을 마친 후였다. 지인은 책방에서 만나기로 한 다른 분을 본인은 줌으로 만날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오늘 약속을 어겨 다른 날로 다시 약속을 잡았나 보구나, 했다. 그런데 지인은 그 말에 이어 결국 줌으로 같이 보겠지만, 이란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


‘나는 이미 약속 장소로 출발했고 가는 중이라고 알렸는데 이게 무슨 말이지.’

책방에 도착해 보니 지인이 우리 세 명 모두가 줌으로 얘기 나누도록 조치를 취해 둔 상태였다. 이 와중에, 얼떨결에 책방에 도착한 나와 다른 한 분은 어리둥절했다. 대면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면 본인만 불참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남은 우리 둘까지 작은 책방이라는 아늑한 공간을 느낄 수 없도록 줌 진행을 요청하고 회의 주소를 덩그러니 띄워 놓다니.

다른 한 분은 우리  두 사람과 아는 사람이 아니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노트북을 열었고 노트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게 뭐람…’


나는 대면 만남을 원해서 약속을 정했고 눈이 와도 달려갔다. 나와 다른 한 분은 이 황당함을 억지로 감추고 줌 대화를 진행했다. 책방 공기는 또 왜 그리 냉랭하던지. 다른 한 분의 마음 온도인 듯 느껴졌다. 눈이 와서 위험하다며 우리 두 사람 마음은 전혀 개의치 않고 약속을 신속히 취소한 지인 때문에, 난 다른 한 분의 싸늘함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

다행히도 책방에서 처음 만난 다른 한 분은 표정은 싸늘했지만 실례를 범하지는 않았다. 나는 지인의 실례로 처한 어색한 상황을 스스로 조금씩 조절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다른 한 분도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며 내 질문에 성심껏 답해 주셨다. 하지만 다른 한 분은 끝까지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대화 주제에 부정적 답변을 연달아 했다.

이러저러해도 나는 내 지인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보다 나이가 10살 이상 많으신 데다 눈이 왔을 때 사고 난 적이 있다고 줌 대화 중에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코로나를 빌미로 전 세계가 공포를 조장하는 마당에 생명과 안전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순위이지 않은가. ​

지인을 이해하고 마음을 놓으니 책방 공기도 따듯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책방이지만 서서히 책방 자체에 집중했다. 난 이럴 때도 창 밖에 내리기 시작한 눈이 보였다.

‘창 밖에 눈이 오지 않는가.’

그걸로 좋구나.

귀여운 책방 창문 너머로 내리는 눈은 또 하나의 설렌 내 추억이 될 테니까. 후훗!


정말 작은 책방이었다. 좁은 공간을 둘로 분리해서 더 작아 보였다. 의도가 있는 공간 분리겠지만 동선이 어지럽고 나누어진 공간이 너무 비좁았다. 내가 움직일 때만 내 패딩 자락이 의자에 탁자에 슥슥 스쳤다.


그래도 책은 좋았다.


그림 동화, 교과서 접목 만화책 등 아이를 키우며 친숙했던 책들이 주로 진열되어 있었다.


얘기하며 느꼈다.


유아, 초등 도서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책 표지에서 느꼈다. 기성세대 감각이 묻어 있구나. 아이들 책 같지 않구나. 책 내용도 아이들 호기심과 어투가 아니네.


발견했다.


어른들이 만든 책이어서 어른들 입장이구나.

덕분에, 책방에 직접 간 덕분에 깨달았다. 어떤 책이어야 하는지. 후훗, 그뿐이랴.


또 발견했다.


<<무지개 물고기>>를.



울 아들이 무척 좋아했던 그림 동화를.

아들이 너무 많이 읽고 너무 좋아해서 그 두꺼운 표지가 뜯어지고, 책 그림 중에서 특히 마음에 들던 물고기 그림 내지를 찢어서 꼭 안고 자던 아들의 추억을 찾았다.


“아들의 물고기 그림 동화”

“창문 너머 내리던 함박눈”


후훗, 눈 내리는 날 작은 책방에 갔던 추억을, 오늘을 이리 마무리한다.


(202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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