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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Nov 20. 2021

의미 없는 시간들이어도

마음을 바꾸면 될까

뭔가를 해도, 기어이 마쳐도 아니한  못한 때가 있다. 자신이 선택해서 행하던 무언가가 어깨를 짓누를 때다. 이럴  행하던  버려야 할까, 그래도 끝까지 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끝까지 했다.


하고 싶은 걸 위해, 알고 싶은 걸 찾아서 힘듦을 극복할  때와는 달랐다. 허탈감을 느꼈다.


“Oh, no.”

‘박차고 나올 수 있었잖아. 네가 아는 내용이었는데 왜 견딘 거야.’

‘네가 원하는 걸 하지 않는데 왜 끝까지 참여한 거니.’

코로나가 아니었음 가지 않았을 길이다. 아니 길이 아니라 방법이다.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끝났으니 이제 모두 잊어버리자.




“지연 선생님, 여기는 선생님이 있을 곳이 아니에요.”

의아했다.

‘사람마다 있어야 할 곳이 따로 있나?’

지연은 정숙 선생님이 불쑥, 갑자기 내던진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자원봉사 수업에서도 날을 세워 텃세가 있을 줄이야. 지연이 자원봉사하는 곳은 여성센터다. 같은 프로그램을 나누어 수업하는 흰머리 무성한 정숙 선생님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이야. 볼 때마다 매번 웃던 사람이 찢어진 눈매로 이런 말을 하다니, 지연은 혼란스럽다.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정숙 선생님이 가장 나이 어린 지연에게 불쑥 던진 말, 이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왜 지연이 그곳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걸까.

놀란 지연은 묻는다.

“왜요?”

“지연 선생님은 젊잖아.”

젊으면 자원봉사를 하면 안 되나.

지연은 30대 후반이고 정숙 선생님은 50대 후반이다. 그 무렵 자원 봉사 수업 2년 차인 지연이 수업하는 시간에는 수강생들이 거의 출석했고, 5년 차인 정숙 선생님이 수업하는 시간에는 수강생들이 두 세명 정도 출석했다. 정숙 선생님은 자신의 위태로움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지연은 이럴 때 어찌해야 하는 걸까.




그래, 사람들은 억지로 끌려가기도 하고 억지로 내밀리기도 한다. 지연도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내 경우나 지연의 경우, 둘다 어떤 성질이든 함께 하는 사람이 실력이 없는데 노력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자신의 문제로 정지된 자리에 머물러 있건만 노력하거나 수업 준비를 하지 않고 (시간을 때우는 수업을 계속 하기 위해) 오히려 타인을 걷어차는 말을 했다.


“장소와 사람을 가리는 게 맞는 걸까. 부딪히는 게 맞는 걸까.”


잊고 지낸다고 하여 있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는다. 외면하면 일이 더 커진다.


지나고 보니 의미 없는 시간들이었어, 이 말속에 담긴 시간들은 뭐였을까. 그저 흘러가 버린 걸까. 마음을 바꾸면 되는 걸까.

지난 시간들에서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겠지만 내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실속이 아니었다.

내내 “눈 뜬 장님”을  본 기분이었다.

(20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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