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1933년작,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의 한 구절이다.
주인공인 콘웨이가 비행기 사고로 불시착한 히말라야 산골 오지에서 겪은 일들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불로불사의 비밀을 간직한 신비로운 이상향, '샹그릴라 Shangri-la'가 여기서 등장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상향에 대한 동경,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출간 후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덕분에 '샹그릴라 '는 아예 고유명사로 사전에 등재되어, 유토피아와 동일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인기를 끌자 호사가들은 허구임을 알면서도 '샹그릴라는 어딜까?'라는 논쟁을 벌였다.
관광자원으로 훌륭한 소재기 때문에 히말라야를 끼고 있는 중국, 인도, 네팔은 각각 '여기가 샹그릴라의 원형이다'라고 주장한다.
인도는 라다크 왕국의 수도였던 레(Leh)를 샹그릴라의 모델로 주장하고, 중국은 윈난성 디칭장족자치구 내의 중뎬(中甸)을 샹그릴라의 실제 배경이라 주장했다.
중국은 2001년에 중뎬현의 이름을 아예 '샹거리라(香格里拉)' 시로 바꿨고, 고성 내의 다 무너져가던 고건축물 밀집지역을 개발, 리장 같은 형태의 관광지로 조성했다.
... 그러니, 샹그릴라로 향하는 내 머릿속에는 "과연 얼마나 뻥을 쳐놨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2003년은 중뎬현이 샹그릴라 시로 행정구역명을 바꾼 지 두 해가 막 지난 시점이었다.
대중교통편에 표시된 행선지는 모두 중뎬이었고, 마을의 간판에도 대부분 중뎬이라는 지명이 붙어 있었다.
마을에 진입하기 직전 아동이 투덜거렸다.
해가 꼴딱 넘어간 시간에 샹그릴라에 들어섰고, 어느새 고객과 승객에서 대충 친구 사이가 된 아동이 씩 웃으며 나를 꼬셨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나 돌아본 중뎬 시내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번화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대했던 '샹그릴라'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설에 따르면 제임스 힐튼은 조지프 로크라는 미국 식물학자가 리장(丽江)에 거주하면서 내셔널지오그래픽에 기고한 글을 보고 샹그릴라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샹그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지금은 '두커쫑(独克宗)' 고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개발이 덜 된, 온 사방이 다 파헤쳐진 난장판이었다.
아마도 고성 관광지 개발을 막 시작한 시기였던 듯하다.
그러니, 중뎬에서 이상향의 실마리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해질 무렵, 황송하게도 아동이 내가 묵는 숙소까지 마중을 나왔다.
지금은 두커쫑 고성이 된 그곳은, 당시만 해도 온 사방이 건물을 올리느라 자재를 널어놓은 공사판이었다.
가로등도 거의 없었고, 길은 온통 진흙탕이었다.
도무지 인적이라곤 있을 것 같지 않은 그곳에서, 자그마한 언덕배기를 하나 넘자 주황색 불빛이 마법처럼 나타났다.
깜깜한 길 한가운데 'Raven'이라는 글자가 빛났다.
멋진 목조 건물 내부에는 장작 난로가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고, 아늑한 분위기의 소파가 몇 개 놓여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제이슨'과 '애니'가 활짝 웃으며 우릴 맞았고, 그 옆에는 그들이 키우는 똑똑한 사냥개 '샬루'가 꼬리를 흔들며 격렬하게 나를 환영했다.
상상도 못 했던 멋진 바다.
아동이 "오늘은 내가 쏜다"며 동네 친구들을 불렀고, 차례차례 모여든 친구들과 함께 맥주잔을 부딪히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훌쩍 지나갔다.
다들 분위기에 취해 기분 좋게 만취한 상태로 헤어졌지만, 난 중간에 정신을 잃었다.
아동은 낄낄거리며 떡이 되어버린 나를 부축해 숙소까지 데려다줬다.
중간에 어느 가로등 아래서 그간 먹은 음식들을 괴롭게 확인했고, 그때서야 끊어진 필름이 이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처음 느껴진 건 내 등을 두드리고 있는 아동의 억센 주먹이었다.
민망하기 그지없어 초면에 실례를 범했다고 사과했더니 아동이 껄껄 웃었다.
초대 두 번만 더 받았다가는 황천길 가겠네.
중뎬에서는 가 봐야 할 곳이 있었다.
'리틀 포탈라'라고 부르는 송찬림사(松赞林寺)였다.
약 700명의 승려가 거주하는 거대한 사원으로, 티베트 전체로 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거대한 사원이다.
지붕 전체를 황금색으로 덮어 화려하기로 치면 포탈라궁보다 더 하다.
1679년에 5대 달라이라마가 지었으며, 청나라 강희제가 '송찬림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한다.
윈난성과 접한 동부 티베트는 티베트 전체에서 자연환경이 가장 좋은 곳이다.
그만큼 물자도 풍부하고 인구도 많았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벗어나 삶의 여유를 찾게 되면 예술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지역 유지와 고승들은 앞다퉈 송찬림사에 시주해 자신의 이름을 단 법당을 건설했다.
중세 기독교에서 성당을 지을 때, 왕이나 귀족이 자신의 전용 예배당인 '챔버(chamber)'를 본당 옆에 짓는 풍습과 비슷하달까?
정확히 같은 형식은 아니지만, 겔룩파의 시조인 종카파를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그런 법당들이 번식하듯 점점 불어나 현재 송찬림사의 외형을 완성했다.
지금이야 샹그릴라 시내에서 송찬림사까지 교통망이 잘 닦여 있지만, 당시엔 허허벌판이었다.
아스라이 멀리 보이는 사원까지는 약 1시간을 걸어야 했다.
사원으로 가는 시골길은 바싹 말라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고도 3200m 고지대의 10월 하늘은 시리게 맑고 높았다.
길은 한적했고, 간혹 들리는 새소리 만이 이곳이 살아 숨 쉬는 땅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사원 앞에 도착하자 고즈넉한 분위기는 사정없이 깨져나갔다.
사원 입구에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아직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이라 그런지 사람은 거의 없었고, 외지 사람이 보이자 너도나도 달려들어 호객에 열을 올렸다.
해발고도가 3200m에 달하는 곳에서 때아닌 트레킹을 했더니 고산증세가 다시 찾아왔고, 호객하는 소리에 갑자기 두통이 도져 사원 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송찬림사의 입구는 108 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계단을 타고 올라야 했다.
마치 포탈라 궁의 입구를 처음 볼 때처럼 압도되는 기운이 느껴지는 계단이었다.
하지만 사원의 외관은 쇠락한 티가 역력했고, 이미 포탈라궁과 죠캉사원, 드레풍 사원 등 주요 사찰들을 다 둘러보고 난 터라 큰 감흥이 없었다.
멀리서 볼 때는 성냥갑 같은 건물들이 군집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가까이서 바라본 사원은 어둡고 무거워 짓눌릴 듯한 분위기였다.
내부 참관은 포기하고 먼발치에서 사원을 구경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중뎬으로 걸음을 돌렸다.
중간쯤 갔을 때, 동자승과 함께 사원으로 돌아가는 노승을 만났다.
멋진 선글라스를 쓴, 인상적인 외모의 승려였다.
그는 카메라를 메고 있는 나를 보더니 손짓으로 자기를 찍으라며 동자승과 함께 자세를 잡아줬다.
사진을 찍고 싱긋 웃어 보인 후 발길을 떼려는데, 동자승이 내 옷자락을 잡았다.
뒤돌아보니 승려가 씩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 여기는 중국이었다.
공짜는 없는 곳.
샹그릴라 서사 이전에 티베트는 이미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 <3X3 아이즈>를 본 후 각인된 환상의 영역이었다.
명확하진 않았지만 티베트에 가면 무엇이든 느끼고, 깨닫고,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도 마치 인도에서 깨달음을 구하듯, 티베트에서 영적인 체험을 원했다.
하지만 이상향은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티베트 사람들의 일상과 종교가 완벽하게 합일한 삶의 형태는 분명히 나에게 어떤 영감을 줬지만, 현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순식간에 나를 가장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샹그릴라'라는 이름은 오히려 독이 됐다.
여기서는 무엇도 찾을 수 없었다.
생각이 바뀐 건 레이븐 바에서 아동과 제이슨, 애니를 만난 후였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결핍이 깊어지던 시점이었다.
계속 새로운 풍경, 절경을 만나며 감각적인 호기심은 채워나갔지만 몸은 축이 나고 있었다.
반복되는 짧은 만남과 헤어짐 때문이었을까?
외롭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래서 레이븐 바에서는 정신을 놓고 술을 퍼마셨던 것 같다.
어쩌면 위험할 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정신을 잃는 추태를 부렸음에도 따뜻하게 나를 보듬어주는 아동을 떠올리며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이상향은 현실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곳.
때로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있는 곳, 그래서 오히려 아무 걱정이 없는 곳.
거기야말로 샹그릴라였다.
문득 여행의 끝에 닿게 될 그곳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아직은 돌아갈 때가 아니었고, 그날을 기다리며 다시 발걸음에 힘이 붙는 걸 느꼈다.
한번 다녀간 여행지를 다시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난 아내의 여름휴가를 핑계로 윈난 지역으로 다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무려 20년 만에 다시 찾은 샹그릴라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온통 파헤쳐져 검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던 도로는 리장 같은 돌길로 포장이 됐고, 어떻게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두커쫑 고성을 둘러싼 거대한 성벽이 숨 막히게 나를 맞았다.
밤이 되면 지우빠(酒吧)의 앰프 소리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8월 초 극성수기임을 감안하면 그래도 양호한 상태였다.
제이슨과 애니가 반겨주던 레이븐 바로 가는 길은 레트로 감성을 잘 살린 목조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올드타운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캄캄한 와중에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던 언덕배기 일대는 배낭여행자들의 성지가 되어 있었다.
상인의 대답에서 20년 전 내가 봤던 모습이 바로 두커쫑 고성의 시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늑한 레이븐 바는 사라졌지만, 여느 중국 여행지와는 다른 느긋한 장기 여행자들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게 무척이나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