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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Mar 29. 2024

다시, 출발

바이-보미


비몽사몽간에 누군가 내 귓가에 대고 말을 걸었다.



"난 이제 네팔로 넘어간다. 동부티베트 성공하길 바란다"



교주가 떠났다.



"어... 형, 잘 가요. 한국에서 봅시다"



채 뜨지 못 한 눈으로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다. 

교주가 똬리를 틀고 있던 침대는 덩그러니 비어있었다. 

길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3개월 간 동고동락했다.

그런 이를 배웅도 못한 채 보내고 나니 미칠듯한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라싸에서만 한 달을 머물렀다.

중간에 중국 국경절(*10월 1일. 국경절이 낀 1주일은 중국 전체가 휴가 기간이다)이 끼어 오도 가도 못할 상황이 되긴 했지만, 이를 감안해도 지나치게 오래 있었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여정의 긴장감이 사라졌고, 주저앉아 한량처럼 먹고 마시는 시간이 길어졌다.

교주가 떠난 후 거울을 보니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떠있었다. 

떠나야 할 때가 지났음을 깨달았다.







마침 윈난 성으로 나가려는 한국 여행자가 둘이 있어서 총 세 명이 함께 길을 나섰다. 사진 속 한 명은 서쪽으로 떠났다.


배낭을 싸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집을 떠나 처음 여행길에 오를 때 같았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두려움 섞인 설렘이 느껴졌다. 

종아리에 힘이 들어갔다. 


원래 계획대로 라싸에서 동쪽으로 가 동부 티베트를 가로질러 윈난 성으로 진입하는 루트를 탔다. 

당시 중부(칭하이성) 루트는 퍼밋을 발급받아 버스를 타고 진입할 수 있었다. 

서부(카슈가르-알리) 루트는 외국인에게 퍼밋을 내주지 않았지만, 워낙 황량한 지역이라 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몸만 죽도록 힘들었을 뿐 검문이 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동부 루트는 달랐다. 

티베트 내에서는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고, 쓰촨, 윈난을 통해 라싸로 통하는 길이 고대부터 닦여있던 곳이라 유동량이 많은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공안의 검문이 가장 삼엄한 곳이었다.

실제로 이 길을 통해 라싸로 진입을 시도해서 성공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 곳이기도 했다. 


다만 라싸에서 나갈 때는 중간에 공안에게 걸려도 어차피 원래 가려던 쓰촨성이나 윈난성으로 추방되기 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었다. 

'중국 일주' 계획을 세울 때 서부-중부-동부로 티베트를 관통하는 동선을 짠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다만, 동부 역시 퍼밋 발급이 안 됐기에 중간에 들르는 지역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동부에서는 여행객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가능한 빠르게 윈난성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 공식적으로 동부 티베트를 여행하는 방법은 중국 현지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 차량, 퍼밋이 포함된 패키지를 끊는 방법이 유일했다. 
단, 이 경우 사전에 등록한 지역 이외의 곳은 갈 수가 없으며, 정해진 기간 내에 티베트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5개월 간의 여행경비가 약 600만 원이었는데, 1주일짜리 동부 티베트 패키지 가격이 300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라싸에서 출발해 더친현에 이르는 여정



첫 차를 타기 위해 동트기 전 야크호텔을 떠났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막 넘어가고 있는 보름달을 목에 건 포탈라궁이 보였다. 

추석 날, 거지 같은 몰골로 거대한 보름달을 보며 라싸에 들어선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꽉 채운 한 달이다.

45인승 버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린쯔 방향으로 출발했다. 


라싸 동쪽 지역은 이제껏 봐왔던 황무지와 달랐다. 

높은 산 사이로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달렸다. 

어느새 10월이라 누렇게 색이 변한 단풍이 군데군데 보였다. 


서너 시간쯤 달렸을 때 첫 번째 검문소가 나왔다. 

버스는 천천히 검문소 앞에 정차했고, 앞문으로 제복을 입은 경찰이 오르더니 소개령을 내렸다.

승객들이 차례차례 뒷문으로 내렸고, 뒷문 앞에 위치한 경찰이 신분증을 확인했다. 

시작하자마자 검문에 걸려 추방당할 판이었다. 



"됐다. 출발!"



그러나 사람들이 절반쯤 내렸을 때 검문하던 경찰이 갑자기 기사에게 소리쳤다. 

기세는 삼엄했지만, 여기도 검문은 요식행위에 그쳤다. 

첫 번째 묵어갈 마을인 바이(八一)에 도착할 때까지 두 번 정도 더 검문이 있었지만, 버스 기사가 내려 차량 번호를 등록하는 걸로 끝이었다. 

이후에도 두 번 정도 더 검문이 있었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동쪽으로 나갈수록 산과 계곡이 점점 깊어졌다.

검문 이후 대략 8시간 이상 달린 끝에 바이에 도착했다.

티베트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중국화 된 도시였다.

심지어는 장족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숙소를 잡고 짐을 풀고 나니 라싸에서의 한 달이 어느새 꿈결같이 느껴졌다. 


바이에 도착한 날,  무지개가 떴다.






바이에서 보미(波密)로 가는 버스는 사흘에 한 대가 있었다. 

사람이 몰릴 법도 하지만 손님은 우리 일행 세 명과 중국 아낙 한 명, 총 네 명이 전부였다.

버스에 앉아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데 지나가던 중국 남자 하나가 한 마디 했다. 



"이렇게 큰 차에 달랑 네 명이야? 기름이 아깝다" 




대형버스에 4명만 타고 가니 좌석에 드러누워도 될 지경이다. 

쭉 뻗은 도로를 따라 강원도 산골 같은 풍경이 끝없이 펼쳐졌고,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버스의 움직임에 취해 이내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 몸이 심하게 덜컹거려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는 깊은 산속을 지나고 있었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비포장도로였다. 

시기적으로는 우기의 끝자락이었다. 

그늘진 도로가 채 마르기 전에 비가 내리는 상황이 반복돼 온통 진흙탕이었다. 

버스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 출렁였고, 가끔씩은 옆으로 넘어질 듯 심하게 기우뚱거렸다.


보미까지 가는 길은 허리에 구름을 두른 설산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고지대의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조금 일찍 피어난 단풍이 눈에 들어왔다.  

낭떠러지를 달리는 길 옆은 키 큰 침엽수가 우거진 숲이었다.

계곡 밑바닥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난 늙은 나무들이 산허리에 나 있는 도로 위로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지나가는 차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길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어느 순간 차들이 길게 늘어선 길이 나타났고, 버스도 속도를 줄였다. 



"트럭 한 대가 진흙탕에 빠져서 못 움직이고 있다오"


밖에 나가 상황을 살피고 온 기사가 구시렁거렸다. 

외길이라 양방향의 차들이 번갈아 지나야 하는 곳이었다. 


파양까지 갈 때 잡아 탔던 트럭이 딱 이런 모양새였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밖으로 나가보니, 바가에서 파양으로 가는 길에 히치하이크했던 트럭과 비슷한 모양새의 트럭 한 대가 진흙탕에서 악전고투 중이었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미비한 곳에서 사람들은 트럭을 교통수단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안전장치 따위는 사치였다. 

트럭 짐칸은 사람과 짐이 엉켜 엉망이었다. 

가느다란 철제 프레임 사이로 사지 한쪽을 내놓은 사람들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길 옆에는 장족 아이들 몇이 일하다 말고 삽자루를 턱에 괸 채 길가에 주저앉아 쉬고 있었다. 

신기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길래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더니, 씩 웃으며 일제히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망할 놈들.


그 사이 교통정리를 끝낸 도로가 뚫렸고, 이후 보미까지는 일사천리였다. 

보미는 티베트 같지 않은 낡은 시골 마을이었다. 

주택도 티베트 전통양식이 아닌 시멘트와 벽돌로 네모반듯하게 지은 전형적인 중국식 건물이었다.  

딱히 볼 것도, 할 일도 없는 곳이었다. 



보미(波密). 동부 티베트 여정은 여행이라기보다는 탈출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를 타고 바쑤(八宿)로 향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버스에는 사람이 가득 들어찼다. 

해가 뜨자 설산이 오렌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뜻밖의 절경에 넋이 나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인적도 없는 산길 한가운데 검문소가 나타났다. 



"모두 신분증 꺼내쇼!"



버스에 오른 경찰이 험악하게 소리쳤다. 

지난번 검문처럼 대충 지나가길 바랐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뒷쪽 좌석에 앉아 있던 나한테까지 순서가 돌아왔다. 



"신분증!"



경찰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등골이 서늘했다.

최대한 느긋하게 지갑을 열고 중국 학생증을 꺼내는 순간, 내 옆에 앉았던 장족 소년 하나가 손을 번쩍 들더니 경찰에게 말했다.



"저... 전 아직 18살이 안 돼서 신분증이 전혀 없는데, 어쩌죠?"


"아무것도 없어?"


"전 학교도 안 다녀서..." 



경찰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냥 가라며 차에서 내렸다.

나를 포함 불과 대여섯 명만 검문이 남은 상황이었다. 

버스가 길 모퉁이를 돌아 검문소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절로 긴 한숨이 삐져나오며 그대로 자동차 시트에 미끄러지듯 파묻혔다.

그 소년은 나에게 윙크를 날리며 싱긋 웃어 보였다. 

이 친구, 분명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행한 여행자들도 십년감수한 표정이었다. 






보미에서 파소까지 가는 구간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가 낚싯대를 던지던 계곡의 풍경같았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강의 폭이 넓어졌고, 가끔씩 물길이 크게 굽이치며 급류가 몰아쳤다. 

동쪽으로 향할수록 단풍이 점점 짙어졌고, 계곡과 단풍, 설산이 어우러져 시선을 돌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중간에 그림 같은 풍경의 라웍 쵸(Rakwa-Tso, 然乌湖 란우후)를 지난 후 발이 묶였다. 

버스에서 내려 대기 중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산사태가 나서 막힌 길을 뚫는 작업 중이라고 했다.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이어졌고, 지진이 난 듯 땅이 흔들렸다.

멀리서 누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일행들과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랜드크루져 한 대가 멈춰 서더니 서양인 가족 네 명이 차에서 내렸다. 

일행 중 한 명이 반색하며 인사했다.


"조장 보러 갈 때 같이 갔던 사람들이야"


구멍가게의 의자를 모조리 점거하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버지는 호주사람, 어머니는 영국사람이지만, 거주지가 캐나다인 관계로 이 집 아이들은 호주, 영국, 캐나다 3중 국적이라고 했다. 


"국적이 세 개니까 여행할 때 편한 점이 많아. 이스라엘을 거쳐 시리아로 가는 것도 가능하지(* 당시에는 여권에 이스라엘 비자가 찍히면 시리아 입국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 이스라엘 입국 때 호주여권 쓰고, 시리아 입국 때는 캐나다 여권을 쓰면 되거든."


신기한 이야기였다. 


"근데 여권이 여러 개니까 가끔 난처한 일도 있어. 한 번은 여행 갈 때 캐나다 여권을 집에 두고 간 거야. 떠날 때야 문제가 안 됐는데, 집에 들어올 때 난리가 났지. 입국신고할 때 캐나다 여권이 없으니 외국인으로 취급이 된 거야. 입국심사 때 '무슨 용무로 캐나다에 오셨나요?'라고 묻는데, '어... 어.... 부모님 만나러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


딸내미는 낄낄거리며 맥주를 홀짝였다. 


맥주 한 짝이 비어갈 때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길이 뚫렸고 어느새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 시동소리가 들리길래 고개를 돌렸더니, 기사는 우리가 탄 걸 확인도 안 하고 그대로 출발하고 있었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허겁지겁 내달려 속도를 올리려는 버스의 옆 면을 사정없이 두들겨 겨우 차에 올랐다. 

공사장에서 시간을 날린 탓에 빠쑤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였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날이었다. 







윈난, 쓰촨, 티베트의 관문 도시인 망캄에서 발이 묶였다.

버스터미널 인근을 돌며 빵차(미니 봉고)라도 구해보려 했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거나 자리가 없다.

3개 성으로 통하는 길이 교차하는 곳이다 보니 차량의 유동량은 많지만, 그만큼 사람도 많아 빈 차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다음 목적지인 더친까지만 가면 퍼밋 걱정 없이 어디든 갈 수 있는 터라 조바심이 났다.

더친으로 나가야 중뎬-리장-따리로 이어지는 차마고도 루트를 탈 수 있었다.


반나절 정도 버스터미널을 헤매다가 지쳐서 주저앉아 있었는데, 티베트 방향에서 빈 랜드크루저 한 대가 들어왔다.

동부 티베트 패키지를 운영하는 차량인 듯했다.

손님은 이미 내렸고, 윈난성으로 나가는 듯 기사와 가이드로 보이는 남자 두 사람이 탄 차였다.

혹시 태워줄 수 있는지 물었다. 



"어디로 가오?"



까무잡잡한 얼굴의 기사가 되물었다.

중뎬(中甸 *지금의 샹그릴라 시)으로 나갈 거라고 했더니, 자기도 마침 중뎬으로 간다며 타겠냐고 묻는다.

차비는 인당 200위안이었다.

도시로 들어가 현금을 찾기 전까지 예산이 빠듯했던지라 100위안에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승낙한다.



"어차피 중뎬까지는 빈 차로 갈 거였거든"



닳고 닳은 중국인들만 보다가 시원시원한 대답을 들었더니 당황스러웠다.

랜드크루져 기사는 나시족 청년이었다.

나시족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울 거라며, 자기를 '아동(阿东)'이라고 부르라 했다.




망캄을 떠나 달리는 길은 목가적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햇살은 따사로웠고, 울긋불긋한 가을의 색깔이 사위를 물들여가고 있었다.

산 중턱의 벌판에서는 야크들이 한가로이 노닐며 풀을 뜯고 있었다.

경치에 취해 한 시간 정도 길을 달렸을까?

아동이 물었다.



"너희 통행증은 있지?"



솔직하게 불었다.


"아니, 근데 통행증이 꼭 필요한 거야?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검문이 몇 번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던데?"



"그래? 이상하네. 뭐, 어차피 성 경계니까 별일 없을 거야. 그냥 가자"



확실히 그 시절에는 변경 관리가 느슨했다. 다행이었다.

이후로도 차는 한참 동안 산길을 달렸다.

아동은 능숙하게 핸들을 감아댔다.

그간 트럭이나 버스, 봉고차를 잡아타고 티베트 고원을 달리다가 랜드크루져를 탔더니, 승차감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황송할 정도로 편했다.

도요타의 전설, 랜드크루져는 말도 안 되는 비포장도로를 힘들이지 않고 달렸다.



"이 험한 동네에서 운용하려면 가격과 성능을 따졌을 때 이만한 대안이 없지"



아동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티베트에서 봤던 SUV는 대부분 도요타의 랜드크루져 거나 미쓰비시의 파제로였는데,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한참을 달린 랜드크루져가 산 정상에 오른 순간 말도 안 되는 풍경이 펼쳐졌다.

탁 트인 시야에 깊은 계곡 위로 우뚝 솟은 설산이 보였다.

끝도 없이 아래로 떨어진 계곡의 사면을 따라 성냥갑 같은 티베트 사람들의 집이 군데군데 박혀있었다.

티베트를 횡단하면서 절경이나 비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경치를 숱하게 봤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시야를 채우는 경관은 처음이었다.

아동은 너른 공터가 나오자 차를 세우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좀 쉬었다 가자. 사진도 찍고"



풍경을 묘사하는 수식어를 참 많이도 썼지만, 매번 더 나은 표현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야 했다.

티베트는 그런 곳이었다.

다시 차를 몰기 시작한 아동이 말했다.



"여기는 대설산 지구의 일부야. 중뎬까지 가다 보면 중간에 매리설산(梅里雪山) 볼 수 있는 곳이 있어. 거기서 사진 찍게 내려줄게."



이 친구, 아무래도 직업병인 듯했다.

나야 고맙지만.







랜드크루져는 란창강을 따라 계속 달렸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한 얄룽창포강은 윈난성에 접어들면 란창강(澜沧江)으로 합류한다.

계속 남쪽으로 내려간 물줄기는 윈난성을 지난 후 메콩강으로 이름을 바꿔 미얀마, 라오스, 태국, 베트남을 지나 남중국해까지 흘러나간다.

강을 따라 먼지를 마시며 두어 시간 달렸을까?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저기가 마지막 체크포인트야. 너희들은 말만 안 하고 있으면 외국인인지 모를 테니까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순간 오금이 저릴 정도로 긴장이 됐지만 "너희는 외국인인지 모를 테니까"라는 한 마디가 비수처럼 박혔다.  



고산증 때문에 얼굴이 불어 터지기 직전이었다


 

아동은 검문소 앞에서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러나 창밖으로 빼꼼 내다본 검문소에는 경찰이 없었다.

아동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그대로 검문소를 통과해 윈난성으로 들어섰다.


백미러로 보이는 검문소가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또 한 번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드디어 두 달에 걸친 티베트 여정이 끝났다.

도로 한가운데 아치형 구조물이 서 있었다.



"시장(西藏)에 다시 오세요. 티베트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역설적인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구조물 밑을 지나는 순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날 정도로 아련했다.

서부 티베트를 지나 라싸에 들어서면서 "내가 다시 여길 오면 성을 간다"라고 수도 없이 다짐을 했지만, 멀어지는 티베트를 보면서 "언제쯤 다시 올 수 있을까"하고 우울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당장이라도 차를 돌려 다시 티베트로 돌아가고 싶었다.


두 달간 스물 다섯 해를 사는 동안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겪고, 생각지도 못했던 인연을 만들었다.

세상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냉정했고, 따뜻했다.

짧은 시간 동안 압축된 경험을 통해 가치관과 삶의 목표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 진폭이 어찌나 컸던지 다시 중심을 잡고 서기까지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일까?

티베트는 나에게 추억이 아닌 그리움으로 남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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