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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Mar 18. 2024

하늘장례식

드리궁틸 사원



티베트의 장례 풍속은 매장이 아닌 조장(鳥葬)이다.

푸줏간의 고기를 해체하듯 시신을 토막 내고 잘게 썰고, 뼈마저도 잘게 빻아 보리가루와 섞어 반죽을 해서 독수리에게 먹인다.

한낱 껍데기에 불과한 육신을 자연에 돌려준다는 의미와 하늘과 땅을 잇는 사자인 독수리를 통해 영혼을 하늘로 돌려보낸다는 종교적 의미도 포함한다.

겨울이 길어 언 땅을 파기 어렵고, 부패가 잘 진행되지 않는 티베트 고원의 기후 특성상 매장은 적합하지 않다.

화장을 하려 해도 척박한 고원에서 자라는 나무는 없다.

티베트에서 말린 야크 똥을 연료로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은 예로부터 시신을 독수리에게 보시하는 조장(천장)을 택했다.

남미의 고원 지대에도 비슷한 풍속이 있다.

결국 조장은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조장터는 관광객에게도 개방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조장터 한 편의 관람석에서 전체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우리네 상식으로 시신을 고기처럼 해체하는 행위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피와 살이 튀는 현장의 모습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디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인문학적 경험을 위해 참관을 원하는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티베트의 장례식장, 드리궁틸 사원


라싸에서 랜드크루저를 대절해 약 4시간을 달리면 '드리궁틸' 사원이 나온다.

절벽에 매달린 듯 위태롭게 선 사원은 전문적으로 장례를 주관하는 사원이었다.

장례는 보통 오전 7시 정도,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진행했다.

따라서 참관하려면 새벽 3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밤을 새울 각오로 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기다렸다.

함께 가기로 한 일행들은 쪽잠을 잔 후 피곤이 역력한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를 싣고 갈 차도 제시간에 도착했다.

중국에서 보기 드문 정시 출발이었다.


랜드크루저는 잘 닦인 포장도로를 따라 캄캄한 밤길을 달렸다.

차에서라도 잠시 눈을 붙이려 했지만 갑자기 번개가 치더니 우박이 섞인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티베트 중부의 9월은 우기의 끝자락이었다.

해가 뜨면 날이 갰지만, 어둠이 찾아오면 낮동안 데워졌던 공기가 차게 식으면서 비를 퍼붓는 패턴이 반복됐다.

라싸에 진입할 때의 트라우마가 스멀스멀 일어나 통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랜드크루저는 비포장도로로 진입했다.

길은 구불거리는 산길이었고, 조금씩 올라가는 고도 때문에 고산증세가 찾아오는 듯했다.  

사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경, 동녘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고원의 가을은 일교차가 굉장했고, 새벽녘 공기는 맨살을 찢을 듯했다.

승려의 안내를 따라 사원에서 좀 떨어진 조장터로 향했다.


사원 인근의 공기는 무거웠고, 음습했다.

조장터로 가는 길에 만난 거대한 견공들은 모두 시뻘건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카일라스 코라에서 개밥이 될 뻔한 기억에 소름이 돋았다.

진저리 치는 나를 본 가이드 겸 운전기사가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했다.



"이 동네 개들은 조장이 끝난 후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인육을 청소하지"



그 때문일까?

개들의 눈에 귀기가 서려있었다.








조장터에서 바라본 사원 인근 마을. 조장터에서의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됐다



조장터에 닿을 때쯤 날이 훤하게 밝았고, 주변의 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리궁틸 사원은 산 중턱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비탈 아래로는 비옥한 농토와 협곡을 배경으로 동화 같은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하얀 모자를 쓴 듯한 산봉우리 사이로 피어오른 물안개가 풍경에 파스텔 톤을 더해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여전히 시린 바람에 코끝이 떨어져 나갈 듯했다.

손에 입김을 불다가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길바닥 곳곳에 사람의 머리카락 뭉치가 굴러다녔다.  

자신의 신체 일부 혹은 소지품을 불경이 적힌 천과 묶어 보시하는 게 티베트 풍습이지만, 이곳에서 본 머리카락 뭉치들은 달랐다.

마치 손으로 잡아 뜯은 듯, 혹은 가위로 대충 잘라낸 듯 어수선하게 뭉쳐 굴러다녔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하늘에는 거대한 날개를 편 독수리 몇 마리가 활강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조장터 너머 산자락과 들판 곳곳에 웅크리고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체 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백 마리는 넘어 보였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글(eagle)'이 아닌 '벌쳐(vulture)'에 속하는 대머리독수리다.

경기 북부, 혹은 철원 지방에서 독수리를 본 사람을 알겠지만, 놈들의 덩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시커먼 바윗덩어리 백여 개가 들판 군데군데 박혀있는 듯한 풍경은 괴기스러웠다.

가끔 날개 품에 처박고 있던 대가리를 들어 올려 사방을 훑는 놈들과 시선이 마주치면 섬찟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추위에 떨며 한참을 기다리고 있자니 저 멀리서 시신을 실은 경운기가 나타났다.

이 날의 장례는 세 건이었다.

경운기에서 작은 관 하나와 잔뜩 웅크린 사람 형태의 천 두 무더기가 내렸다.

망자의 수의는 경제력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눈알을 희번덕거리고 있는 독수리들 앞에서 나름 공을 들여 짠 관과 시신을 싸맨 하얀 면포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인생무상과 공수래공수거의 철학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은 없을 듯했다.


관이 열리자 대여섯 살 난 여자아이의 시체가 드러났다.

천 무더기에서는 노파의 시신 한 구와 중년 남자의 시신 한 구가 굴러 떨어졌다.

시커멓게 죽어버린 피부와 제멋대로 덜렁거리는 사지는 비현실적이었다.

저 물체가 사람이었다고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훠~!"



제관의 일갈(一喝)이 얼어붙은 공기를 찢었다.

건장한 승려들이 섬뜩하게 날이 선 칼과 갈고리를 들고 조장터에 입장했다.

나이 많은 승려 하나가 조장터 구석에 앉아 끊임없이 북을 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을 외웠다

참관하는 사람들은 낮은음으로 끊임없이 읊조리는 그 소리에 홀린 듯 다들 멍한 얼굴이었다.

그 사이 승려들이 벌거벗겨진 시신을 제단 위에 올린 후 의식 준비를 끝냈고, '작업'이 시작됐다.








승려들이 시체에 갈고리를 꽂고 칼질을 시작하는 순간, 벌판 너머 산자락에 앉아있던 독수리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조장터 옆에 내려 진을 쳤다.

시커먼 그림자가 일렁이고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거침없는 칼질에 살점이 출렁였다.

힘줄이 드러나고, 피가 튀고, 누런 내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와중에 승려들은 시시덕거리며 칼질을 이어갔다.

참관인 중 젊은 여자 하나는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조장터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떤 여자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길고 지루한 작업이 이어졌다.

척추를 따라 길게 살을 가르고 갈비뼈 방향을 따라 칼집을 낸 시신은 하얀 뼈를 드러냈다.

피냄새를 맡은 독수리들 중 용감한 몇 놈이 채 차려지지 않은 식탁으로 달려들었지만, 제단을 지키고 선 인부의 돌팔매를 맞고는 후다닥 도망쳤다.


어느 순간 집전 승려가 칼을 높이 쳐들고 뭐라고 외치니 독수리들이 일제히 날아올랐고, 승려들은 황망히 제단에서 비켜섰다.

이제 의식의 주인은 독수리로 바뀌었다.

독수리들이 제단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내 키 만한 날개를 펄럭이는 짐승들 사이로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올랐다.

그 탐욕스러운 행위 앞에 난 얼어붙었다.  

망자의 내장을 부리에 휘감은 독수리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들었고, 옆에 있던 놈들이 그걸 뺏으려고 달려들었다.

내장을 차지한 놈은 뺏으려는 놈들을 피해 내가 선 쪽으로 날아올랐다.

핏방울 하나가 내 볼에 튀었고, 난 무의식적으로 볼을 훔쳤다.

순간 등골에 소름이 돋으며 욕지기가 치밀었다.

독수리들은 피범벅이 된 채 춤을 추고 있었다.

고개를 쳐들고 다른 먹잇감을 찾는 독수리의 대가리와 목은 시뻘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승려들이 다시 입장하며 큰 소리를 지르자 독수리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짐승들이 빠져나가 휑한 벌판에는 앙상한 해골 세 구만 놓여있었다.

빨간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묻은 해골을 본 순간 피비린내가 사방으로 퍼졌다.  

승려들은 유골을 수습해 절구에 넣고 빻으며 경을 외웠다.






고작 1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온전한 인간의 형상 하나가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순식간에 뼈도 안 남고 사라져 버린 세 사람을 보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이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그 조그마한 어린아이의 마지막은 잊히지가 않았다.

내 인생도 어느 순간이 되면 저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생각하니 허무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현생을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다가 이때를 떠올리면 헛웃음이 난다.

그리고 나면 허기가 느껴졌다.


이 세상 한번 살고 가는데,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건지 고민하게 된다.

살아지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다.

'나'라는 존재의 증거를 남기고 싶은 욕구가 치민다.

그저 소비하며 살고 감각의 충족에 만족하며 살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았을 때, 내가 세상에 남긴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떠난다면 비참할 것 같다.

죽어도 눈을 못 감을 듯하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았다는 실존의 증거는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기록이고, 작품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2세일 수도 있을 테다.

난 여전히 그 증거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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