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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Mar 04. 2024

The Forbidden City

라싸



라싸에 떨어진 새벽, 바낙숄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씻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오후 늦게 간신히 일어나 샤워를 한 후, 쓰레기로 변한 짐을 해체해 빨래를 한 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다가 또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두컴컴한 천장이 보였다.

목재 창틀을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싸구려 녹색 페인트를 발라놓은 거친 벽에 가느다란 선을 그어놨다.

어둠과 빛의 강렬한 대비 위로 먼지 입자들이 느리게 흘러 다녔다.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켜고 마른세수를 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정오였다.

이틀의 시간이 사라졌다.






서부티베트에서 라싸까지 가는 길은 오지(奧地)였다.

21세기에 막 진입한 시점, 인터넷은커녕 핸드폰도 안 터지는 길을 며칠씩 달려야 했다.

씻는 것은 고사하고 황량한 벌판에서 노숙을 밥 먹듯이 했으니 때아닌 기아에 시달렸다.

비록 미리 알고 간편식과 인스턴트식품, 비스킷과 빵 등을 챙겨갔지만 끓인 물이 없으니 생라면을 씹은 일도 부지기수였다.

절대로 타인에게 추천할 수 있는 여정은 아니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들어선 라싸는 천국이었다.

<티베트에서의 7년>에서 하러가 갖은 고생 끝에 닿은 라싸를 세상에서 가장 번화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봤던 게 이해가 갔다.

폴 써로우가 <중국기행>을 쓸 때, 티베트로 가는 여정을 마지막에 넣은 것도 이해가 갔다.


라싸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피곤하면 포근하진 않아도 청결한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친절했으며,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적어도 그때의 라싸는 아직 중공 정부의 느슨한 통제 아래 여유롭고 활기찬 기운이 넘실거리는 도시였다.

고원의 햇살은 가을이라는 계절이 무색하게 살갗을 태웠지만, 야외 테라스에 앉아 일광욕을 하고 있노라면 나른하게 행복했다.

그 나른하고 뿌듯한 기분에 취해 라싸에 도착한 며칠간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렸다.

느지막이 정신이 들면 포탈라궁까지 걸어갔다가 조캉 사원을 지나 호텔로 돌아오곤 했다.







포탈라 광장 앞 도로는 반질반질한 돌로 덮여 있었다.

그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자동차와 자전거들의 행렬은 언제나 신이 나보였다.

인력거를 끄는 이들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묻어났고, 손님을 부르는 목소리는 활기가 넘쳤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귀가 찢어져라 휘파람을 불어대며 페달을 밟아대는 그들의 모습에 절로 흥이 났다.  

반면 포탈라 광장에는 언제나 빨갛고 노란 모자를 뒤집어쓴 단체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중국과 티베트의 관계에 대한, 약간은 알레르기 같은 반응 때문에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때는 아름다운 호수였던,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시멘트로 메워버린 광장에 서서 바라본 포탈라궁은 아름답고 처연했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2007년에 라싸를 다시 찾을 기회가 있었다.

2003년에는 없었던, 하지만 그때는 어느새 완공이 된 '칭짱철도(青藏鐵路)'를 타고 베이징에서 출발, 이틀 만에 라싸에 들어섰다.

이미 해가 넘어간 시간, 대충 짐을 부려놓고 서둘러 포탈라궁으로 달렸다.

포탈라궁 앞에는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궁의 벽면은 화려한 조명을 받아 희게 빛났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밝은 조명을 받아 빛나는 포탈라궁은 마치 짙은 화장을 한 창부의 모습 같았다.

원하지 않았지만, 가족을 살리기 위해 길로 나선 여인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라싸라는 도시 전체를 굽어보며 위엄을 뽐내던 포탈라궁의 주위로는 경쟁하듯 키를 높인 빌딩들이 들어섰다.

광장을 중심으로 궁의 맞은편에는 포탈라궁을 내려다볼 기세로 해방기념탑이 우뚝 솟아있었다.




울렁거림이 멈춘 건 다음날 오전에 다시 포탈라궁을 찾았을 때였다.

이방인의 주제넘은 감상과는 상관없다는 듯, 티베트 사방에서 모여든 순례객들은 여전히 포탈라궁 앞에서 몸을 던지고 있었다.

이마에 하얀 인이 박히도록, 무두질도 하지 않은 두꺼운 가죽 앞치마가 땅에 쓸려 찢어질 정도로 오체투지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소리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포탈라궁은 힘을 잃고 간신히 버티고 선 듯했지만, 코라를 도는 사람들은 예년 그대로였다.

그들이 궁 주위를 돌면서 뿜어내는 서릿발 같은 기상이 무너질 듯 무너질 듯 위태로운 포탈라를 지지하고 있는 듯했다.


티베트 사람도 아니면서  이곳의 현실을 가슴 아파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이제는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고, 달라이라마 역시 종교와 문화의 자유를 보장하면 중국의 통치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성과 현실을 논하기 전에 포탈라궁 앞에서 펄럭이는 오성홍기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티베트인들은 일생에 한 번은 라싸로 순례 가는 걸 꿈꾼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부터 라싸 포탈라궁까지 수백~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오체투지로, 삼보일배하며 걸어간다. 

그때 만났던 티베트 사람은 "무엇을 그리 간절히 염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달라이 라마의 귀환을 원한다"라고 대답했다. 

어떤 이는 "나의 죄를 씻기 위해 걷는다"고도 답했다.

이유는 각자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무언가 간절한 염원을 가슴에 담고 장정에 올랐다.


이미 서부티베트를 가로지르면서 봤다.

그들이 걸어야 하는 길은 황무지였다. 

따라서 이들은 순례길에 오를 때 서너 명씩 조를 짜거나 아예 아예 십수 명씩 무리를 이뤄 이동했다.

천막과 식기, 모포 등을 실은 지원 차량(때로는 나귀)이 뒤를 따르며 사고를 방지하고, 순례객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를 따라 하루 종일 몸을 던졌다. 


간혹 이런 상궤에서 벗어나 홀로, 혹은 두 사람이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경우도 봤다.

보급의 중요성을 모르는 걸 아닐 텐데, 그렇게 길을 가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식수가 떨어지면 어쩌냐고 물었더니, 티베트 사람들은 순례객들을 보면 조금씩 시주를 하는 게 관습이라는 답을 들었다. 

무리를 지어 나온 순례객은 쉬어가는 자리에서 홀로 순례 중인 순례객을 보면 큰 소리로 불러 차와 짬파를 대접했다.

초대를 받은 사람은 거리낌 없이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사의를 표하고 요기한 후 다시 길을 떠났다.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이들의 여정을 지지했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담아 온 포근한 감상은 라싸에서 금이 갔다. 

조캉 사원 주변, 바코르 광장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코라길에서 만난 순례객들은 어느 순간 거지로 변하기 일쑤였다. 

열심히 오체투지를 하며 조캉 사원의 코라 길을 돌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기도를 멈추고 내 앞을 막아서며 손을 벌렸다. 

이를 본 꼬마들이 앞다퉈 나에게 달려들었다. 




숙소에서 만난 장족 직원에게 물어보니, 라싸에는 순례를 왔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했다. 

아찔했다.

옷을 찢고 맨발을 드러낸, 씻지 않아 때가 덕지덕지 앉은 얼굴의 사람들이 보였다. 

황야에서 만난 순박한 사람들의 눈빛과 라싸에서 돈뭉치를 세어가며 코라를 도는 이들의 눈빛은 확연하게 달랐다. 

다행인 것은 라싸의 순례객 중 이런 이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묵묵히 코라를 돌며 지그시 눈을 감고 경을 외웠다. 







문제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외지인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본질과 작가의 의식, 저널리즘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다만, 카메라를 든 사진가는 자신이 찍는 사진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조캉 사원 앞에서 오체투지 하는 티베트 사람들을 촬영하려는 사진가들은 아귀다툼을 벌였다. 

피사체가 된 사람의 의지 따위는 개의치 않고, 사원을 향해 절을 올리는 티베트 사람과 사원 사이를 가로막고 코 앞에 렌즈를 들이밀었다. 

당황한 순례객이 항의를 해도 개의치 않고 자리를 옮겨 다른 이를 찍어댔다. 

간혹 이런 행태에 분노한 순례객과 사진가가 드잡이를 하는 경우도 생겼다. 

반대로 빙글빙글 웃으며 사진가에게 손을 내밀어 돈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십중팔구 앞서 말한 '라싸에 정착한' 순례객이었다. 

그러면 사진가는 되려 화를 냈다.

모순의 현장이었다. 

자신들의 땅에서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티베트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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