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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Feb 23. 2024

초대받지 않은 손님

바가, 파양


카일라스 코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마지막까지 극도로 긴장했던 탓인지 밤새 몸살에 시달렸다. 

교주와 해랑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설핏 잠이 깬 듯했는데, 갑자기 교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가(Saga) 가는 트럭 찾았어! 가자!"



사가는 서부 티베트에서 라싸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마을이다.

갈림길에 있는 마을이라 유동량이 많아 차를 구하기 쉽다고 해 다음 목적지로 찍어둔 터였다. 

언제 다시 있을지 모르는 차, 몸이 아픈 게 문제가 아니었다.

잽싸게 일어나서 채 마르지도 않은 옷을 주워 입고 가방을 챙겨 나섰는데, 트럭은 그 사이를 못 기다리고 그냥 가버렸다.

별 수 없이 근처에 놀고 있는 장족 트럭을 웃돈 주고 빌려 빌려 20km 떨어진 바가(Barkar)까지 나갔다.

바가에서 다시 사가로 나가는 차를 찾아야 했다. 

바가에 도착하니 검문소를 새로 짓는 중이다.

군기가 바짝 들은 공안인지 변경순찰대인지 모를 공무원들이 퍼밋을 요구했다. 

알리에서 데끼가 끊어준 퍼밋이 빛을 발했다. 

바가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더니, 유일하게 하나 있는 식당 주인이 외출했다고 밥이 없단다.

별 수 없이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발면을 사서 끼니를 때웠다.

생각해 보니 밥을 구경한 지 사흘이 넘었다. 


바가에서 두어 시간 기다리니 드디어 라싸 가는 트럭이 한 대 걸렸다.

깎고 깎아서 두당 200원에 낙찰을 봤는데, 아뿔싸, 짐칸 꼭대기까지 짐을 가득 싣고, 그 위에 사람 11명을 태우고 가는 만차다.

알리와 자다에서 히치하이크에 학을 뗀 탓에 일단 덥석 잡아탔다. 

차에 올라 자리를 잡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트럭이 시속 30km 이상 속도를 못 낸다.

라싸까지는 약 1,000km를 달려야 했다.

문득 "과연 굶어 죽지 않고 라싸까지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해가 넘어가니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9월 초였지만 고원의 밤은 혹독했다. 

가지고 있는 옷을 모조리 꺼내 입어도 온몸이 덜덜 떨렸다.

궁상맞지만 남자 셋이 부둥켜안고 '시발시발'하면서 버텨야 했다.






유람 나온 듯 느긋하게 달리던 차는 밤 9시가 되자 갑자기 허허벌판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니 짐칸에 함께 탔던 장족들이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차에서 내렸다. 

설마 여기서 노숙을 하는 건가 싶어 당황했는데, 다행히 저녁 먹을 시간이란다. 

빌어먹을 고원의 환경은 척박했지만, 밤 풍경은 기가 막혔다.

하늘에 빼곡히 박힌 별빛만으로도 사방이 훤했다.

장 씨의 콘보이를 타고 알리에 들어가면서 봤던 밤하늘도, 추위에 벌벌 떨며 하염없이 트럭을 기다릴 때 만났던 새벽하늘도, 이날 바라본 밤하늘도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만약 누군가 나지막하게 휘파람이라도 불었다면 와락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황량한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내려 바라본 현실은 역시나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시커멓게 때가 탄 얼굴로 똥밭에 앉아 야크똥을 연료로 불을 피웠다.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설거지를 하지 않았을 것처럼 새카맣게 탄 주전자를 걸고 물을 끓인 이들은, 수유차를 끓여 마시면서 몸을 녹였다. 

그리고는 포대자루에서 짬파(* Tsampa, 쌀보리의 일종인 '청과맥(靑顆麥)'을 볶은 가루. 죽을 끓이거나 수유차를 섞어 반죽해 떡처럼 먹는다)를 꺼내 그릇에 담더니, 능숙하게 조물딱거리며 반죽해 입으로 던져 넣었다. 

짬파를 반죽하는 이들의 손톱 밑에는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위생을 따질 여력이 없는 건 당연했지만, 나도 모르게 비위가 상해 속이 울렁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우리 일행이 '설마 밤에는 마을에 들어가겠지'하는 생각에 식량을 전혀 준비 안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네들이 밥 먹는 걸 구경하는 것도 민망한 짓이라, 트럭 뒤쪽에 셋이 모여 앉아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를 본 트럭기사가 "이거라도 먹어보지?"하고 차 한 주전자와 짬파 한 그릇을 건넸다. 

자존심도 상하고 준비성이 모자란 스스로에게 화도 났지만 사양할 처지가 아니었다. 

짬파를 받아 들고 보니, 내 손 또한 트럭 건너편에서 밥을 먹고 있는 장족들과 다를 바 없이 더러웠다. 

다르첸에 들어선 이후 사흘간 물 근처에도 못 간 터라 손톱 밑이 새까맸다. 

한숨을 내쉰 후 짬파를 버무려 입에 넣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지만, 짬파는 고소했다.

어느새 셋 다 정신없이 짬파를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사진을 찍어놨으면 아주 볼 만했을 것 같다.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없을 모양새였으니까. 

밤 10시가 되자 배를 채운 사람들이 차에 올랐고, 기사는 "오늘 밤새 달릴 거야"라고 말했다.

왠지 기사 얼굴 뒤로 저승사자가 나를 보고 미소 짓는 듯 한 환상을 본 듯했다. 



히치하이크의 현실. 라싸까지는 이런 몰골로 다녔다






밤 사이 기온은 한 자릿 수로 떨어졌다. 

짐칸에는 서리가 내렸다.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추워 쪼그려 앉아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나는 당시 짐칸의 가장 앞쪽에 앉아 운전석 외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트럭이 지나가며 새겨놓은 바퀴자국이 끝없이 뒤로 달렸고, 수평선 위로는 채 차지 않은 보름달이 떠올라 사방을 비추고 있었다. 

어찌나 눈이 부시게 밝은지 그 빛에 가린 별들이 빛을 잃을 지경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자락에서 움직이는 짐승들의 모습도 똑똑히 보였다. 

달빛에 홀린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어느새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고, 덜덜거리는 엔진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넋을 잃고 달을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본 장족 청년 하나가 피식 웃더니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성대를 강하게 접촉시켜 단단하고 날카롭게 뽑아내는 높고 센 소리의 민요였다. 

격렬하게 음을 꺾다가 애잔하게 잦아드는 가락이 이어졌다. 

노래를 타고, 저 달 빛을 타고 이대로 샴발라로 들어가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달이 차면 추석일 텐데, 어느새 2년째 타지에서 명절을 맞고 있었다. 

문득 집 생각이 났다. 



낭만은 순간이었다. 

밤 사이 꽁꽁 얼었던 몸은 새벽이 되니 비명을 질러댔다.

내 근처에 앉았던 영감 하나는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와 내 배낭을 깔고 누우려 들었다. 

배낭에 꽂아놨던 물통은 잠시 잠든 새 누군가가 마셔버려 텅 비어 있었다. 

항의하는 나를 본 영감과 남자들은 내 말투를 흉내 내며 키득거렸다. 

뱃속에서 불덩어리 하나가 목구멍으로 치달리는 듯했다. 

정오경 '파양'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주먹다짐이 오가기 직전까지 험악한 상황이 됐다. 

라싸까지 거리를 계산해서 두당 50위안씩 차비를 던져주고 짐을 내리니, 이제는 대놓고 우리를 손가락질하며 낄낄거리고 웃는다.


초대받지 않은 곳에서 친절을 바라는 건 욕심이다. 

친절하고 순박한 소수민족은 없었다. 

어차피 다 똑같은 사람이다.

친절함에는 감사하되, 무례와 불친절로 인한 미움을 내 안에 쌓을 필요는 없다.

결국 그 미움은 내 속에 타오르는 불길이 되어 나 자신을 태울 뿐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난 스물다섯이었고,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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