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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Feb 25. 2024

라싸로 가는 길

파양-라체


파양에서도 길고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지겨워진 교주와 해랑은 공터로 나가 동네 꼬마들과 어울려 공을 차다가 가슴을 움켜쥐고 헉헉거리며 돌아왔다. 

난 아직 그 정도로 이성을 잃진 않았기에 끌끌거리며 그들을 놀렸다. 

간간히 지나는 트럭이 있었지만 어디 갔다 놔도 부끄러웠을 내 몰골 탓인지 기사들은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생각해 보니 과히 유쾌하지 못한 모양새의 남자 셋이 "차 좀 태워주겠소?"하고 묻는데, 선뜻 태워주는 이가 보살이다.

...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라싸로 간다는 트럭을 찾았다.

라싸에서 사가로 와서 인근 지역에 짐을 내리고 다시 라싸로 돌아가는 차였다.

일흔은 족히 돼 보이는 왕(王) 씨 노인과, 30대 초반의 꺼벙하고 방정맞아 보이는 조수가 모는 화물 트럭이었다. 

노인은 내 중국어를 듣더니 신기한 듯 말했다.



"젊은 친구가 중국어 공부한다니 기특하구먼, 어차피 빈 차로 돌아갈 차니까 내 라싸까지 그냥 태워주지"



알리에서 쟈다, 카일라스를 지나 파양까지 가는 동안 인간성의 바닥을 골고루 구경한 터였다.

뜬금없는 노인의 친절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당장 출발해야 한다는 왕 노인의 말에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허겁지겁 차에 올랐다. 


장거리 화물 트럭은 일반적으로 2인 1조로 운행한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운전사와 조수가 교대로 잠을 자며 운전할 수 있도록 운전석 뒤의 공간을 트고 간이침대를 놓은 구조다.

트럭의 크기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운전석은 넓었고, 보조석 또한 두 자리였다.

그래서 우리 셋은 한 사람씩 교대로 운전석에 앉아갈 수 있었다. 

안전장치도 없이 덜컹거리는 짐칸에 짐짝처럼 실려다니다가 보니, 이 정도 시설도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입이 귀에 걸린 우리를 싣고 트럭은 파양을 떠나 라싸로 향했다. 


"내일모레 중추절(추석)까지는 라싸에 들어가야 해, 가족과 명절을 보내고 싶거든. 그러니 교대로 운전하면서 밤새 달릴 거야."


체력과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할 때가 왔다.


48시간을 내리 달려 라싸까지 800km를 갈 예정





내가 이 사람들의 기쁨조(?)를 맡아 제일 먼저 조수석에 앉게 됐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고 한 시간쯤 지나니, 왕 노인이 묻는다.



"자네, 중국 여행 와서 얻은 성과가 뭔가?"



갑자기 훅 들어온다. 



"뭐... 다양한 중국인들을 만나서 중국인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고, 상상도 못 한 경치들을 보고서 안목을 넓힌 정도랄까요?"



그러자 왕 노인은 이내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자네 여행 허투루 했구먼. 티베트에 와서 저 산들을 봤으면 산 밑에 묻혀있을 광산을 개발해서 돈 벌 생각을 해야지. 돈이 없으면 늙어서 아무것도 아니야."



중국인의 전통적인 배금주의는 유명하다. 

사고방식의 차이와 가치관의 차이를 들어 반박하고 싶지만, 자신의 말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보이는 왕 노인의 얼굴을 보니 '소귀에 경 읽기'였다. 



"그리고 자네, 수염이 그게 뭔가? 중국 가정 법도에는 위에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나이 80이라도 수염을 못 길러!"



... 된통 걸렸다.

티베트 고원에서 이런 꼰대를 만나게 될 줄이야.


한참 차를 달리다 보니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성견이 채 못 된 제법 큰 강아지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헤매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조수가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놈을 잡아 짐칸에 실었다.



"이대로 두면 죽을 거야"



따뜻한 인간미에 뭉클해졌고, 슈퍼 꼰대 왕 노인의 타박은 한 귀로 흘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들은 바로는 티베트 마스티프 견종은 외부로 나가게 되면 대단히 비싼 값에 팔린다고 하니, 이 친구의 마음씀씀이가 단지 호의였다기 보다는 돈을 보고 한 행동일 거란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강아지를 짐칸에 올리는 조수는 분명히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트럭이 다시 움직이기 전 해랑과 자리를 바꿨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나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또다시 징그러운 추위가 찾아왔다. 

그저 빨리 날이 밝기를 바랄 수밖에. 




지난 편에도 올렸던 이 사진 속 트럭은 사실 왕 노인의 차였다






추위에 떨면서,  딱딱한 폐타이어 위에 앉아 연신 쿵쾅대는 진동을 허리로 다 받아내며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햇빛을 받으니 몸이 조금씩 풀렸다. 

내 몸이 인간의 그것인지, 짐승의 그것인지 분간이 안 됐다. 

정신이 들고나니 허기가 심하게 들었다. 

갑자기 트럭을 잡아타게 돼서 먹을 걸 미리 준비 못 한 상태였는데, 역시나 이 사람들도 아무것도 안 먹고 무작정 달린다.

중추절 전에는 목숨 걸고 라싸에 들어가야 한다며 밥 먹을 시간도 아깝단다. 

빨리 가는 건 좋지만 하루 종일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못한 채 트럭 위에서 시달리다 보니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어쨌거나 차는 사가를 지나 라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산들도 서부티베트의 황량한 갈색산이 아니라, 푸른 녹음이 덮인 둥글둥글한 구릉으로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유목민들의 천막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흰색 벽에 적갈색 지붕을 올린 전통적인 티베트 가옥이 들어선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수량이 많은 기후 때문인지 중부 창(Tsang)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을 이루어 모여 살면서 보리농사를 짓는다.

티베트 사람들의 주식인 짬파의 재료, 바로 그 청과맥이다. 

그리고 이 청과맥에는 티베트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서려있다. 






천안문에 걸린 모택동 초상. 2018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과 싸워 이긴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은 결국 1949년 중국을 일통했다. 

모택동은 절대권력이자 종교에 버금가는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권력에 취한 모택동은 점점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한나라 이래 중국 역대 왕조들의 강역에 한 번이라도 속했던 지역은 모두 중국의 강토라는 논리에 무산자를 해방시킨다는 공산당의 논리가 더해져 중국은 들불처럼 영토를 넓혀갔다. 

그 과정에서 티베트 역시 중화인민공화국의 서장 티베트자치구로 편입됐다. 

몽골제국 이래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중국은, 그러나 여전히 가난했다. 

1958년, 모택동은 국가 산업의 체질을 농업에서 중공업으로 바꿔야 한다는 판단 아래 이른바 '대약진운동'을 개시했다.


"자본주의 진영의 1등은 미국, 2등은 영국이고, 공산주의 진영의 1등은 소련, 2등은 중국이다. 그러니 중국이 영국의 생산력을 추월하면 공산주의의 우월함을 증명할 수 있다"


라는 정신 나간 발상에서 시작된 참사였다. 


사람들은 '인민공사'라고 부르는 집단농장에 소속돼 일을 해야 했다. 

농업 생산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벼 재배를 강제했으며, 이 과정에서 몰상식하고 비과학적인 경작 방식을 강요한 결과 1960~1961년 사이 대기근이 들었고, 무려 2500만 명(*공식 발표가 이 정도고, 실제로는 5000만 명 이상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이 굶어 죽는 참사가 벌어졌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


라는 모택동의 한 마디에 참새의 씨를 말리려 든 바람에 해충이 창궐해 농사가 쫄딱 망한 탓이었다. 

티베트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티베트 고원에서 유일하게 경작 가능한 작물이었던 청과맥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재배를 금지시키고 벼를 심은 결과 셀 수 없이 많은 티베트 사람이 굶어 죽었다. 



왕 노인의 트럭을 타고 가로지른 중부 티베트 고원은  시선 닿는 곳 끝까지 황금빛 벌판이 뻗어있었다. 

티베트 사람들의 생명의 양식인 청과맥은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탐스럽게 결실을 맺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석이 하루 남은 날이었다. 






'목숨 걸고 달리겠다'는 조수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중부 지역은 라싸와 가까운 탓에 그나마 도로 같은 길이 나 있는 곳이었다.

포장도로를 만난 트럭은 말 그대로 폭주했다.

짐칸이 비어 가벼워진 트럭은 사정없이 덜컹거렸고, 짐칸에 탄 나와 교주는 그 진동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야 했다.

허기가 심해지니 고산증이 다시 도졌다.

속을 게워내고 싶어도 쓴 물만 계속 올라왔다.

완전히 탈진해 고개를 들 힘도 없어 트럭 난간을 붙잡고 고개를 처박은 채 그저 짐짝처럼 실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라체에 닫기 직전, 나지막한 산을 하나 넘을 때였다.

산 꼭대기에 고장 난 트럭이 한 대 길을 막고 서있었다.

장족 남자들 열댓 명이 트럭 근처에 앉아 있다가 우리 차를 보고 손을 흔들어 세웠다.



"라싸까지 가오? 차가 퍼져서 그런데, 우리도 좀 태워주겠소?



한 남자가 운전석의 조수에게 묻는 말이 희미하게 들렸다.

조수가 대답도 하기 전에 남자들은 이미 난간을 붙잡고 트럭에 오르려 하고 있었다.



"1인당 500위안, 싫으면 말고"



그런데 조수가 갑자기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더니 액셀레이터를 있는 힘껏 밟았다.

트럭은 굉음과 함께 튀어나갔고, 난간을 오르던 남자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라 손을 놓고 뛰어내리거나, 굴러 떨어졌다.

조수는 대략 30분 정도 미친 듯이 질주하더니 길가에 차를 세우고는 짐칸을 살폈다.



"괜찮냐? 절대로 차에서 떨어지지 마라"



떨리는 목소리로 신신당부한 그는 다시 부리나케 트럭을 몰았다.

트럭은 오후 6시경 라체에 도착했다.

라체는 서부에서 중부 티베트로 진입하는 관문 도시였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시골 읍내를 보는 듯 아담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근 보름동안 마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곳들을 지나온 터라 제법 길이 닦인 마을을 보니 반가웠다.

무엇보다 라체에는 식당이 여러 개 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왕 노인은 우리에게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더니, 식당에서 제일 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음식을 주문하라 '명령'을 하더니, 조수와 함께 가서 담배를 사 오라고 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네 담배를 왜 내가 사러 가?'


하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왕 노인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거듭 담배를 요구했다.

조수와 함께 가게에 들어갔더니, 이 녀석이 한 보루에 120위안 정도 하는 가장 비싼 담배를 덥석 집고는 계산도 안 하고 나가버렸다.

순간 뒷골이 지끈거리면서 상황이 파악됐다.



"많이 드시죠. 이건 우리가 살게요. 차비도 안 받는데, 이 정도는 우리가 해야죠"



대번에 왕 노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는 흐뭇한 미소를 떠올린 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중국인의 예의인가?'


부아가 치밀었다.

이들이 먹어치운 음식을 계산하기 위해 나뿐만 아니라 교주와 해랑도 전대 깊숙이 숨겨놓은 마지막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야 했다.

학생이라 돈이 없을 테니 차비를 안 받겠다고 해놓고는 담배와 비싼 음식을 갈취하며, 뻔뻔한 표정으로 거들먹거리는 역겨운 중국인이 내 앞에 있었다.

공짜를 좋아하지만 절대로 공짜가 없는 중국인에 대해서는 수차례 들었지만,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너그러운 표정으로 차에 타라던 영감의 표정은 탐욕에 찌든 흉물로 바뀌어 있었다.

조수의 꺼벙한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음흉하고 교활한 기운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런 상황에서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었을까?

치가 떨렸다. 이미 기아와 다름없는 상황이었지만,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까 만난 장족 남자들, 강도였어"



게트림을 하며 이를 쑤시던 조수는 놀라운 말을 했다.

눈치를 챈 조수가 말문을 막아버릴 생각으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한번 부른 다음 그대로 줄행랑을 놓은 거였다.

허기에 지쳐 반쯤 넋이 나가있던 나와는 달리 정신줄을 잡고 있던 해랑은 이 말을 듣고 기함을 했다.



"어쩐지 그놈들 본새가 이상하더라. 한 놈이 조수랑 말을 트자마자 나머지 놈들이 트럭을 빙 둘러싸고는 조심스럽게 기어오르기 시작하더라고"



장족 남자들은 모두 30cm 정도 되는 티베트 전통 도검을 패용한다.

장식품이 아닌 진검이다.

여전히 야크를 치며 유목생활을 하던 그들에게는 필수적인 공구였겠지만, 마음을 달리 먹으면 순식간에 인명을 앗아갈 수 있는 흉기였다.

나중에 라싸에 들어가서도 검을 차고 다니는 남자들을 숱하게 봤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그게 자연스러웠다.



"강도짓을 한 돈으로 독립운동을 한다는 산적들이 아직도 많아. 저런 외진 곳에서 잘못 만나면 여지없이 칼 맞고 저승 가는 거야. 트럭이야 산 밑으로 굴려버리면 찾지도 못하니까 위험하기 짝이 없지. 그래서 화물트럭 몰고 이 길 다니려면 진짜 조심해야 해"



조수의 말을 듣고 나니 등골이 오싹했다.

서로를 쳐다보는 나와 교주, 해랑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일제 식민지배의 상처가 유전자 단위에 각인된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의 티베트 병탄이 어떤 느낌일지는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현장의 한가운데 던져졌고, 심지어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목이 날아갈 뻔한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머리가 조각나는 듯했다.

"눈먼 칼에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정확히 그 꼴이었다.

문득 이방인인 입장에서 이 이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우리의 쌈짓돈까지 쪽쪽 빨아먹고 있는 저 욕심 많은 중국인들을 보자니 더 치가 떨렸다.

과연 어느 쪽이 강도였을까?






트럭은 밤새 얄룽계곡을 달렸다.

티베트인들이 '얄룽창포'라고 부르는, 인더스 강과 갠지스 강의 원류인 브라마푸트라 강이 지나는 계곡이다.

얄룽창포 강은 풍부한 수량으로 척박한 티베트 고원 한가운데를 적셔 보리를 재배할 수 있게 해 준, 티베트 사람들의 젖줄이다.

덕분에 이 지역은 우기에는 비가 제법 많이 내렸는데, 하필이면 우리가 이 지역을 통과할 당시가 우기의 끝자락이었다.

라체를 지나 시가체, 라싸가지 닿는 내내 폭우가 쏟아졌다.

전날 구해준 강아지는 배은망덕하게도 우리 배낭에다가 오줌을 한 바가지나 갈겨놓고는 어느샌가 줄행랑을 쳐 버렸다.

개새끼...

우비를 뒤집어썼어도 얼마 못 가 속옷은 물론 배낭 안까지 몽땅 젖어버렸다.

라싸에 닿기 전 마지막 6시간은 무시무시한 추위에 떨어야 했다.

이틀밤을 꼬박 새우고, 라체에서 저녁을 먹은 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숨도 쉬지 않고 내내 짐칸의 딱딱한 폐타이어 위에 앉아 달렸다.

라체에서 라싸까지는 '우정공로(友谊公路 요이꽁루)'라는 도로가 닦여 있었다.

당시만 해도 티베트에서 가장 좋은 길이었다.

그러나 미친 듯이 퍼붓는 비에 수량이 불어 도로 군데군데가 유실됐다.

트럭은 때로는 물을 피해 진창으로 변한 비포장 도로를 넘었고, 때로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도로를 달렸다.



"작년에도 이랬으면 내가 이 길을 다시 왔을 리가 없지. 빌어먹을, 작년보다 네 곱절은 족히 힘들다. 내가 여길 왜 또 왔지..."



교주가 신음을 흘렸고, 비록 말은 안 했지만 나도 혼자 속으로 "내가 여길 왜 왔지"와, "빌어먹을" 두 마디만을 주문처럼 계속 중얼거리며 멀어지는 의식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



추운 밤, 비에 맞아 체온이 점점 식어가면서 손발 끝에 감각이 없어졌다.

조금 지나니 뼛골까지 시리던 한기가 피부 표면에서 느껴지며 피부가 따끔거리고 저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추위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고 졸음이 미친 듯이 밀려왔다.



"얼어 죽는다..."



순간 머릿속에 이 생각이 퍼뜩 들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신줄을 잡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 판이었다.

지난 보름간 트럭 짐칸에 퍼질러 앉아 달리다 보니 오른쪽 허벅지 피부가 까진 상황이라, 왼쪽 엉덩이로 트럭 벽에 기대앉은 상태였다.

이를 악 물고 오른쪽으로 자세를 바꿔 그 통증으로 잠을 쫓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새벽 4시경, 갑자기 온몸이 근질근질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여 나도 모르게 트럭 벽을 두드리며 괴성을 질러댔다.


"으아아아악!!!"


그 소리를 듣자마자 옆에서 고개를 떨구고 헐떡거리고 있던 교주와 해랑도 미친 듯이 트럭을 두드리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함께 소리를 지르고 나니 몸이 근질거리던 증상이 잦아들었고, 비몽사몽간에 트럭이 멈춰 섰다.



시간은 새벽 6시, 눈앞에 포탈라궁이 서있었다.  

<티베트에서의 7년>을 보면 하러가 어떤 개고생 끝에 라싸에 도착하는지 생생하게 나와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지만, 어쨌거나 개고생 끝에 닿은 라싸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포탈라궁은 그 존재 만으로 공간을 압도했다.

걸레짝이 된 몸과 흐릿한 의식에도 그 장엄한 광경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났다.


감상은 잠시, 왕 노인은 헛기침을 하며 또다시 돈을 요구했다.

주고 싶어도 속곳까지 털린 터라 줄 돈도 없었다.

노인의 못마땅한 시선을 무시한 채, 쓰레기처럼 변한 짐을 끌어안고 숙소를 찾아 터덜터덜 걸었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하던 티베트 사람들이 흠칫 놀란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티베트에 발을 디딘 지 한 달 만에 라싸에 들어왔다.





교주(좌)와 해랑(우). 완전히 거지꼴이 된 나와 달리 생기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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