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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Feb 15. 2024

21. 시바의 땅에서

카일라스 산


다르첸은 카일라스 코라의 기점이자 종착점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성지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도는데, 이를 '코라'라고 한다. 

카일라스 코라는 약 42km 구간으로 보통 1박 2일에서 2박 3일 코스를 잡는다. 


수많은 사람이 카일라스 산을 '영산(靈山)'이라 부른다.

삼대 종교의 성지라는 위명에 각종 전설과 서사를 품었고, 황량한 풍경과 접근이 쉽지 않은 지리적 요소는 이 산을 신비로운 산으로 치장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서부 티베트에 가면 누구나 카일라스 코라를 돈다 했다. 

아니, 이 산에 오르기 위해 서부 티베트를 찾는다 했다. 






미로 같은 다르첸 마을.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는 송아지 만한 개들이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앉아있다.



남루의 가게 아낙이 길 가는 트럭을 수배해 준 덕에 다르첸까지의 여정은 수월했다. 

그래도 오후 늦게 도착한지라, 일단은 천막으로 만든 초대소에 짐을 풀고 밥을 먹은 후 이내 곯아떨어졌다. 

다르첸은 제법 추웠다. 

천막 사이로 어슴푸레 햇살이 밀려들어 눈을 떠보니 오전 8시 반이었다. 


본격적인 순례길에 오르기 전 다르첸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익숙한 얼굴이 있다.

1주 전, 알리 공안국에서 데끼의 옆을 지키던 장족 공안이었다. 

며칠 전 이곳으로 한 달간 파견근무 나왔단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여기서 다시 만나니 서로 반가움을 금할 길이 없다.

초대소 주인은 우리가 도착한 날 오전에 한국 스님 네 분이 이미 코라길에 올랐다고 알려줬다. 

주인은 "스님들이 2박 3일 일정으로 출발했으니, 1박 2일 일정인 우리와는 '디라푹' 사원에서 만날 수 있을 거다"라고 귀띔했다. 

다르첸에서 한국인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카일라스 코라의 시작



죽과 만두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코라에 올랐다.

시작은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기점인 다르첸의 해발 고도는 이미 4800m다. 

숨이 들고 날 때마다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100m 정도 전진하고 나면 2~3분씩 숨을 골라야 했다. 

평지를 걷는데도 저 땅밑에서 누군가 내 다리를 잡아끄는 느낌이었다. 

고된 히치하이크 여정에 몸뚱이가 축이난 건 생각 않고, 내 체력의 비루함에 절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골초였던 교주와 해랑은 오히려 죽죽 앞으로 치고 나갔고, 나만 뒤에 떨어져 힘겹게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다르첸 맞은 편의 마나사로바 호수와 산...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인도 순례팀을 따라가던 포터 한 사람이 죽을 듯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사원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라'며 격려했다. 

그가 말한 사원은 디라푹 사원이었다.

코라에 오르는 이들은 보통 이 사원에서 하루를 묵어갔다.






카일라스의 서면을 지나며 그 웅장한 자태에 감탄하고 있을 즈음,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의 경사면을 타고 비구름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급하게 우산을 꺼내 썼지만 몸을 날려버릴 듯한 강풍에 우산살이 부러져 나갔다.

우박은 바람을 타고 옆으로 날아 온몸을 마구 두들겨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던 길이 순식간에 냉동창고로 바뀌었다.

우박을 피해 쉬어가고 싶지만, 몸을 숨길 바위도 하나 없이 허허벌판이다.

재킷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꾸역꾸역 앞으로 나가야 했다.

숨을 쉴 때마다 계속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산소가 부족한 탓이었는지, 나중에는 시야가 흐려지고 현기증이 나 계속 눈을 비비면서 올라야 했다.


그렇게 10분쯤을 걸었을까?

눈앞에 작은 텐트가 보였다.

죽기 살기로 달려 천막 안으로 굴러들어가 밭은기침을 토해내고, 곧 죽기 직전의 늙은 개처럼 거친 숨을 내뿜으니 천막 안의 사람들이 모두 쳐다본다. 

체면이고 나발이고 흙바닥을 뒹굴고 있으니 먼저 와있던 장족 포터가 씩 웃으며 따뜻한 차를 건넨다. 

차를 마시며 숨을 돌리고 나니 거짓말처럼 날이 개이고 카일라스가 다시 그 얼굴을 드러냈다.

사방에 지옥도를 그려냈던 비구름은 어느새 산 너머로 도망가버렸다. 

다시 길을 나서기 전, 차를 건네준 포터가 나를 잡아 세웠다. 



"숨 쉴 때는 천천히 깊게 들이마시고, 내쉴 대는 세 번씩 나눠서 뱉어봐요. 절대 빨리 걷지 말고 호흡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으세요."



친절한 배려 덕분에 여유를 찾은 탓일까? 

아니면 어느새 해발 5000m의 고도에 조금이나마 적응을 한 탓일까? 

이후의 길은 조금이나마 편했던 듯하다. 

그래봐야 쉬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었을 뿐, 심장과 허파를 한꺼번에 잡아 찢는 듯한 고통은 그대로였다.




거짓말처럼 개인 하늘






디라푹 사원에 굴러들어가니 먼저 도착한 교주와 해랑이 나를 반겼다. 

우박과 비에 흠뻑 젖은 옷은 사원까지 오는 동안 강렬한 햇살에 거짓말같이 말랐지만, 신발과 양말은 엉망이다.

사원 내에 설치한 텐트 안에서 난로가에 쭈그리고 앉아 양말과 신발을 말렸다.

때마침 아침에 이야기 들었던 한국 스님들이 텐트로 들어왔다. 

그중 가이드 격인 젊은 스님이 난로가에 앉길래 인사를 한 후 평소 궁금했던 티베트 불교에 대해 물어봤다. 



"우선 한국의 불교를 보자면, 고려조까지 융성했던 불교가 조선조에 들면서 선종과 교종으로 통합되며 수많은 종파들이 명맥을 잃고 대부분의 고급불교들이 유실되고 맙니다. 조선조의 억불정책 때문이지요. 하지만 티베트에는 인도 후기 대승불교와 밀교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 모두 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9세기 경 인도에 이슬람정권이 들어서면서, 승려들이 박해를 피해 미얀마나 스리랑카, 혹은 히말라야 북부로 옮겨오게 되지요. 그러면서 티베트에 인도 불교의 각 종파가 그대로 유입되게 됩니다. 수많은 종파와 교리가 모두 공존하며 발전하던 티베트불교지만, 사원의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자 서로 간의 세력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5대 달라이 라마가 정권을 잡아 겔룩파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물고 물리는 싸움이 이어지고, 정권도 이리저리로 넘나들게 되지요. 그러다가 5대 달라이라마 이후 겔룩파(황모파)가 정권을 잡아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권력을 잡은 종파는 세속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교리를 함께 발전시키고, 그렇지 못한 종파들은 교리 쪽으로 더 깊이 파고들게 되고요."



스님의 강의를 듣던 중 인도 순례객들이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사원으로 들어섰다. 

그중 디라푹 사원에서 도움을 받았던 장족 포터가 보였다. 

이 친구도 신발을 말리러 난로가를 찾아들었고, 다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내 고향은 이 동네가 아니야. 봄부터 가을까지는 다르첸으로 와서 순례객들의 짐꾼으로 일하고, 겨울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쉬어"


"중국어가 유창하네?"


"군대에서 배웠어, 껄껄껄. 시골 사람들은 할 일도 마땅찮고, 입은 줄여야겠어서 군대에 많이 가. 근데 여기서 입대하면 보통 양을 치거나 말을 키우고, 가끔 티베트 고원의 길을 닦는 공사에 동원되곤 해"



문득 총보다 삽을 더 많이 드는 우리네 보병의 현실이 겹쳐 보인 건 나뿐만은 아니었을 거다. 

옆에서 듣던 교주와 해랑의 입꼬리에 걸린 미소가 증거였다. 

낄낄거리며 웃는 우리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순례객들 몇이 대화에 끼었다. 

난로에 던져 넣은 장작은 조용히 타닥거렸고, 사원의 밤도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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