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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Feb 05. 2024

20. 聖山, 카일라스로 가는 길

다르첸



聖山, 카일라스



불교, 힌두교, 뵌교 삼대 종교의 성지다.

불교 전승의 '수미산'으로 여겨지며,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세계의 중심에 있는 산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산(* 최근에는 달라이 라마가 수미산 우주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보이는 등, 신화와 현실을 연결하는 비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늘고 있다)이며, 라싸와 함께 평생에 한 번은 순례를 해야 할 성지로 여긴다.

2015년에 발표된 <영혼의 순례길>을 보면 참도에 사는 세 가족이 라싸를 거쳐 카일라스까지 순례하는 여정이 나온다.


해발 6638m의 높이는 히말라야의 수많은 봉우리들 사이에서 일견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 봉우리는 아직 등반기록이 없다.

사면이 깎아지른 절벽이라 등반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불교, 힌두교, 뵌교의 성지이다 보니, 누군가 등반을 시도할 때마다 신도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기 때문이다.

카일라스 산은 사면의 독특한 모습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남면의 한가운데를 길게 가로지르는 홈은 마치 산 정상까지 솟아오르는 듯한 모습 때문에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아... 레드제플린...



또, 티베트 불교에는 12 간지에 따라 각 해에 순례를 권장하는 성지가 있는데, 카일라스 산은 그중 말(馬)의 해에 순례객이 몰리는 곳이다.

내가 갔던 때는 2003년 말의 해, 나는 말띠.

그리고 카일라스 산은 힌두교 전승에는 시바신과 그 배우자 파르바티가 거주하는 곳으로 나온다.

그렇다... 내가 눈 까뒤집고 티베트에 기어든 그 이유, <3X3 EYS>의 최종장으로 넘어가는 바로 거기다.

왠지 안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쟈다에서 카일라스 산이 있는 다르첸으로 가기 위해서는 역시나 히치하이크를 해야 했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차를 한 대라도 놓칠까 싶어, 새벽 5시에 일어나 마을 어귀에 진을 쳤다.

9월 초순이었지만, 새벽 공기는 싸늘했다.

재킷을 꺼내 입었지만 한기가 스며들어 진저리를 칠 지경이었다.  

어느새 따라왔는지, 주먹만 한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발 옆에 웅크리고 있다.

새벽 6시, 아직 별은 총총하고 추위에 발목이 얼어붙었다.

털을 곤두세우고 있는 놈도 애처롭고, 몇 일째 뒤통수만 얻어맞고 하염없이 차를 기다리고 있는 내 처지도 애처로웠다.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갑자기 온 쟈다현의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때문이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송아지 만한 개 두 마리가 우리 옆까지 와서 짖어댄다.

이젠 개들까지 괄시한다.

자구책으로 근처에 보이는 짱돌을 긁어모아놨는데, 다가오는 개들의 무리를 보니 잘못 건드렸다간 셋 다 개밥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수 없이 초대소 앞 큰길로 후퇴했고, 새끼고양이는 내 다리 사이가 제법 따뜻했는지 나를 졸졸 따라왔다.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징그럽게 추웠다.



생각해 보면 교주와 해랑은 말수가 적었다.

나 역시 멍하니 사색에 잠겨 시간 보내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터라,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딱히 힘들지는 않았다.

남들이 보면 지독하게 답답한 모습이었을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은 조용히 흘렀고, 해가 떠올랐다.

몸을 녹인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실없는 농담과 카일라스 산, 라싸에 대한 교주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정오였다.

그 사이 쟈다를 떠나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그만 마을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던 차에 트럭 한 대가 쟈다로 들어왔다.

허겁지겁 손을 들어 물어보니, 쟈다에 짐 내리고 바로 알리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어차피 카일라스로 한 번에 가기는 틀렸고, 알리와 카일라스 산으로 가는 길의 분기점인 '남루'까지만 가기로 하고 차에 올랐다.

차비는 1인당 50위안이었다.



인증샷




짐칸에 앉아 또다시 무시무시한 먼지를 뒤집어쓰며 달렸다.

30분쯤 달려 쟈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내 다와쫑 계곡에 들어섰다.

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만큼 비좁은 협곡을 달리고, 웅장한 계곡과 거친 단층 협곡을 지나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달렸다.

그야말로 불모지, 황야다.

그 삭막함 속에 꿈틀대는 지세는 원초적인 생명력을 깊이 숨기고 있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날 것의 자연, 그것도 풍요로운 자연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내 생명을 갉아먹을 것 같은 거친 자연의 위력에 압도된 탓일까?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멍하니 공상에 빠져들어 있던 찰나, 트럭이 덜컹이는 움직임을 멈췄다.



"남루 안가. 바로 알리로 갈 거야. 남루 가려면 50원씩 더 내."



이젠 화도 나지 않는다.

돈 맛을 알아버린 장족은 더 이상 내 환상 속의 순박한 미소를 간직한 장족이 아니었다.

교주는 서부 티베트에 가면 아직 때 묻지 않은 장족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던 교주는 옆에서 육두문자를 내뱉고 있었다.


길은 삼거리였다.

우리가 달려온 길을 기준으로 좌측은 알리로, 우측은 남루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즉슨 기사는 '굳이 너희 때문에 반대쪽으로 가야 하니 돈을 더 내라'는 뜻이었다.

애초에 얘기를 하던가, 돈을 더 받던가 할 것이지, 왜 이 상황이 돼서야 말을 꺼내는지 알 수 없었다.

카일리크를 떠나 티베트 경내로 들어온 후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식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고 짐을 내렸다.

티베트에 들어온 지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내 평생 해 본 욕보다 더 많은 욕을 하고 있다.

뭐라고 구시렁거리는 기사를 뒤로한 채 우리는 무작정 걸었다.

80L, 약 30kg에 달하는 배낭은 어깨를 파고들었고, 고산지대의 희박한 산소 때문에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30분 만에 '이게 과연 잘한 짓일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고, 'X 됐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한 순간 저 멀리 집 몇 채가 들어왔다.

남루였다.





진짜 아무 거나 주워 입고 다녔더니, 거지도 이런 거지가 없다. 저 뒤에 보이는 집이 '점방'이다


지도에 '남루'로 표기된 곳은 영화 <세븐>의 마지막 장면에서 브래드 피트가 절규하던 그 사막을 닮았다.

황량한 벌판에 한 줄기 도로가 나 있고, 그 위로 모래바람이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도대체 왜 거기에 있는지 알 길이 없는 작은 티베트 가옥이 하나 있길래 들어갔더니, '점방'이다.

사발면과 과자부스러기를 몇 개를 팔고있었고, 우리처럼 차를 잡아타려는 사람이나 잠깐 눈을 붙이고 갈 사람들을 위해 간이침대를 제공해 주는 가게였다.

반나절 넘게 기다렸지만 지나는 차라곤 한 대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하루 묵어야 했다.


수도가 있을 리 없으니 길가 웅덩이에 고여있는, 아마도 구정물인 듯한 물로 흙먼지에 찌든 얼굴을 대충 씻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초라한 외관과는 달리 꽤나 아늑했다.

홀 가운데 자리한 난로에서는 향나무 타는 냄새가 그윽하게 올라왔고, 언제 세탁했는지 알 길 없는 붉은 카펫은 비록 꾀죄죄했지만 푹신했다.

배낭을 베개 삼아, 재킷을 이불 삼아 그 카펫 위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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