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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Jun 11. 2024

향수병

다리



다리는 당나라 때(8~9세기)에는 ‘남조(南詔)’라는 이름으로, 송나라 때(9~13세기)는 ‘대리국(大理國)’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한 바이족 국가의 수도였다. 

고풍스러운 고대 중국의 정취를 간직한 도시로 대리석(大理石)의 이름이 유래한 곳이며, 무협소설의 고전 ‘천룡팔부(天龍八部)’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날아갈 듯한 처마와 흰 벽에 파란 무늬를 활용한 바이족 전통 양식의 건축물이 인상적인 곳이다.  


창산, 2023


고성 서쪽에 뻗은 산은 ‘창산(蒼山)’으로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이다. 

산 정상은 거의 1년 내내 뭉게구름에 덮여 있는데, 해 질 녘 산자락에 걸린 햇빛이 구름에 투과되며 고성 전체를 아늑하게 감싼다. 

창산을 넘어온 차가운 공기는 온화한 윈난 성의 대기와 만나 자주 비를 뿌린다. 

고성 동쪽의 얼하이(洱海) 호수는 다리국이 수군(水軍)을 운용했을 정도로 큰 호수다.

이 때문에 호수 건너편의 기후는 따리 고성과 또 크게 달라지는데, 동쪽 호변의 남조풍정도(南诏风景到)는 한겨울에도 봄날 같은 날씨를 보여준다. 

여름 햇살은 따갑지만 그늘은 시원하고 겨울은 포근해 한가로이 성 내를 거닐거나,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나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그래서 다리는 서양 여행자들에게 먼저 사랑을 받았던 곳이다.

여행자들이 몰리는 곳은 '양런제(洋人街)'라는 거리였다. 

양런제는 원래 호국로(护国路)라는 이름이었는데, 2000년대 초 서양 배낭여행객들이 밀려들어 태국의 카오산 로드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거리의 이름까지 '양놈 거리'로 바뀌었다.

화려한 리장에서 에너지를 쏟아낸 여행자들은 다리로 돌아와 양런제에 밀집한 게스트하우스에 틀어박히거나, 길가의 바나 식당에서 맥주 한 병 들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 목적지도 거기였다. 







넘버 쓰리 게스트하우스, 2005



당시 다리고성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넘버 쓰리(No.3)'라는 게스트하우스는 '따리 문씨'를 자처했던, 퇴직한 공무원 출신의 주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겸 한식당이었다. 

주인의 손맛은 기가 막혔는데, 장기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뜨신 밥을 먹고 힘을 얻어 가곤 했다. 

나 역시 잔뜩 기대를 하고 넘버 쓰리에 들어섰다.  

먹는 것에는 딱히 연연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몇 달 만에 먹은 제대로 된 한식에 몸이 제멋대로 반응했다. 

음식은 주인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인 종업원이 만든 것이었다. 

교육을 어떻게 시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날 먹은 비빔밥은 뜬금없이 전주를 떠오르게 했다. 

그만큼 기가 막힌 맛이었다. 


그러나 푸근한 감상은 다음날 여지없이 깨졌다. 

한나절 고성 내를 돌아다닌 후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니, 종업원 둘이 "그만두겠다"며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고, 주인은 굳은 얼굴로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넘버 쓰리의 주인은 중국어를 거의 못 했다. 

도대체 그 상황에 어떻게 이역만리 외진 곳까지 날아와 터를 잡고 생계를 꾸려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졸지에 통역이 됐다. 


"사장님이 도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제대로 알려주고 시키는 것 없이 화만 내니 배겨낼 수가 없어요"


종업원의 입장이었다. 

주인은 말을 전해주자 길길이 뛰며 흥분했다.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안 하면서 무슨 소리야?"


손이 날래고 부지런한 주인이 보기에 중국 종업원들의 태도는 영 마뜩잖았던 듯했다. 

불통이 이어지니 종업원과 주인의 갈등은 나날이 깊어진 듯했다. 

주인은 속정이 깊은 사람이었지만, 성격이 불같이 괄괄하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당장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담배만 피워댈 뿐이었다. 

사정을 모르니 중간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쉬러 온 곳이 가시방석이었다. 






뭔가 지쳐버린 느낌이었다. 

티베트를 통과하면서 축난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가치관을 정립해 가던 그 시간은 분명 소중했지만 심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몰상식과 무례함, 이기심을 마주하면서 '왜 나는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티베트 일정 이후로 여행의 동력이 급격하게 스러진 듯했다. 

그러던 차에 집에서 연락이 왔다. 



"수능을 잘 치렀고, 원서 쓸 때까지 시간이 남아돈다. 형이 떠돌고 있는 김에 좀 얹혀서 유람을 하고자 하니 동생을 맞으라"



형 혼자 탱자탱자 유람하는 꼴을 보자니 배가 아파 못 견디겠던 건지, 아니면 죽었다 깨도 자의로는 집 밖으로 안 나가려는 게으른 동생을 쫓아내고 싶은 부모님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원래는 윈난성에서 한 달 정도 더 돌아다닐 예정이었으나, 자리에서 계획을 수정했다. 

동생과는 구이린(桂林 계림)에서 만나기로 정하고, 미리 체크아웃을 했다.  

동생의 소식을 듣자 그간 잘 버텨왔던 혼자만의 시간이 무너져버렸다.

가족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다리고성,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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