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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Oct 14. 2024

달려라, 쥬크박스

아우토반에서 운전하기


통풍 때문에 쓰러져 있는 동안 열흘 남짓한 독일 일정을 되돌아봤다.

트램에는 유모차, 자전거를 위한 공간이 따로 있어서 캐리어를 끌고 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독일에는 러시아워가 없는 건지 단 한 번도 트램 내부가 붐비는 걸 본 적이 없다.

병원도, 렌터카 회사도 업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였다.

점심시간은 두 시간으로 식사 후에도 느긋하게 산책하는 사람들 모습이 부러웠다. 

오후 근무는 2시부터 5시까지였다.

심지어 지점에 따라서는 오전 근무만 하는 곳도 있어서 렌터카 픽업과 반납 장소 선택에 애를 먹었다.


그 결과 나의 불편함과 상관없이 사람들 삶의 질은 굉장히 높아 보였다.

언제, 어디에 가도 한창 일할 연령대 사람들이 개를 끌고 산책 중이었다.

심지어 수요일 오전 11시 반에 자전거를 끌고 공원으로 향하는 고등학생도 있었다.

젊은 아빠들이 정오에 유모차를 끌고 빌헬름스회헤 궁전공원을 거닐었다.

공원 곳곳에는 꼬마들 손을 잡은 부모가 보였다.

사회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하기 때문일 테다.

무척이나 부러웠고, 한국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지 의아해졌다. 


빌헬름스회헤 궁전 공원의 꼬꼬마들






지난 일정을 돌아본다는 건 그만큼 몸 상태가 나아졌다는 뜻이었지만, 아내는 여전히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내는 밤마다 끙끙거리며 앓는 나를 보며 전전긍긍했다. 


"그냥 귀국할까?"


"아냐,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아. 며칠만 쉬고 음식 조심하면서 다니면 돼"


내가 쓰러진 후 며칠 간 아내는 겁에 질려있었다. 

내 엄살이 심한 걸 감안해도 도를 넘은 몸부림에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길잡이가 쓰러지니 아내는 졸지에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매일 마트에 가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야 했고, 남는 시간의 여행 일정은 혼자 계획하고 진행해야 했다. 

괜히 나때문에 아내까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혼자 있어도 괜찮으니 너라도 나가서 돌아다녀라. 네가 원해서 온 '그림월드'가 아니더나"라고 했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말을 해야 할 일이 있거나, 뭔가 알아봐야 할 일이 있으면 전적으로 내게 의지(라고 쓰고 '미룬다'라고 읽는다)했던 아내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던 같다. 


결국 아내는 내 성화에 못 이겨 길을 나섰지만 딱히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숙소로 돌아온 아내는 항상 '혼자 다니는 건 심심해'라며 툴툴거렸다. 

그 사이 나는 호텔 침대에 누워 벽지에 그려진 무늬의 구름이 몇 개 인지 세고 있었다. 


카셀에서의 1주일은 계속 이 자세.




우린 남은 일정에 대해 의논했다.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상태에서 여행을 이어갈 수 없었다. 

나는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하자고 제안했지만 남편은 며칠 경과를 지켜본 후 결정하자고 했다. 

결국 남편 의견에 따라 카셀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로 했다.


남편은 약을 복용하니 나아진 듯했지만, 여전히 걸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이동이 불가하니 당장 식사가 문제였다. 

조식은 호텔에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식사는 방에서 먹어야 했다. 

나는 근처 마트와 식당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포장해 왔다. 

해외에 나와 남편 없이 혼자 다니는 것은 처음이었다. 

남편과 함께 다닐 때는 모든 것이 별 것 아니었는데 막상 혼자 다니니 모든 것이 생소했다. 

길을 찾아가는 것도, 물건을 구매하는 것도,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남편과 함께 있을 땐 그저 예뻐 보이기만 했던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주어진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는 과제만 남아 있었다. 


남편은 심부름만 하는 나를 보더니 답답했는지 혼자서라도 시내 구경을 하고 오라고 했다. 

사실 남편 없이 혼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매일 방에서 둘이 붙어 있는 것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억지로 방을 나왔다. 

시내 구경도 하고 좋아하는 그림형제 박물관도 갔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다니는 여행은 즐겁지 않았다. 

길이라도 잘못 들어서 인적 드문 곳이 나타나면 두려움에 걸음을 재촉했다. 

남편 눈치에 매일 방을 나가기는 했지만 감흥 없는 발길만 이어졌다. 


그 사이 남편 상태는 점점 호전되어 갔고,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조식을 먹으러 남편이 두 발로 멀쩡하게 걸어서 내려가니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우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셀에서 맞은 여행 중단의 첫 번째 위기를 잘 극복하고 우리는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 





카셀에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예정에 없던 1주일을 허비했다.

두 달 여행에 한 주가 날아갔으니 속이 쓰렸다.

이후 일정을 조금씩 당기기로 하고 지도를 폈다.


카셀 이후 일정은 알스펠트, 슈타이나우, 하나우였다.

알스펠트는 동화 '빨간 모자'의 무대고, 슈타이나우는 그림형제가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하나우는 그림형제가 태어난 고장으로 보통 여기서 메르헨가도 일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후 일정과 연계하기 위해 역순으로 동선을 잡은 터였다. 



빌헬름스회헤 역에서 렌터카를 수령했다.

역사 내 DB 사무실 7번 카운터에서 유로카, HERZ, AVIS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었다.

이메일로 받은 인보이스를 제시하니 확인하고 키를 내준다.

키를 수령한 후 기차역 주차장으로 가니 렌터카 주차구역이 따로 지정돼 있고 다양한 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차를 찾는 건 셀프서비스다. 

하지만 규칙 따위 없이 중구난방 진열돼 있는 차들 사이에서 처음 보는 차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도움을 요청하니 직원이 '아차'하는 표정을 짓고는 씩 웃으며 앞장섰다. 


신청한 차량은 폭스바겐 골프 왜건형이었는데 실제 수령한 차는 닛산 쥬크였다. 


"예약하신 차는 수리 중이외다"


이 정도 변수는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평소 몰아보고 싶던 차를 뺏긴 듯한 기분에 썩 유쾌하진 않았다.

어쩌겠는가? 로마에 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직원의 당당한 태도에 '이 동네는 원래 이런 식인가 보다'하고 빠르게 납득해 버렸다. 

수령한 차의 예명은 '쥬크박스'로 정했다. 







쥬크박스는 자동 변속기 차량이었다. 

트렌델부르크에서 경기를 일으킬 뻔한 아내의 강력한 주장에 굴복했다.

이제는 완전히 적응해서 수동 변속기 운전도 문제없다고 항변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자동 변속기 차량을 모니 확실히 편하긴 했다.

옆자리의 아내는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차가 어딘지 시원찮다.

가솔린 엔진인데도 초반 가속이 굼뜨고 치고 나가는 힘도 부족했다.

나도 모르게 액셀을 밟는 발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독일 고속도로(아우토반)는 통행료가 없다. 

그래서인지 톨게이트도 없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잠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주변 풍광이 바뀌었다. 


규정속도인 120km로 달리고 있는데 뒤차들이 모조리 나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재빨리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속도 제한 표시가 사라져 있었다.

아우토반이다.





가즈아!


일단 2차선에서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며 정속 주행했다.

어지간히 밟아도 앞차와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속도계 바늘은 이미 160km/h를 넘나들고 있었다.

왼쪽 1차선을 지나는 차들은 쏜살같이 내 옆을 지나 점으로 변해버렸다.

등골에 짜릿한 느낌이 올라오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앞차와 거리가 줄어들길래 추월을 시도했다.

하지만 엑셀레이터를 끝가지 밟았는데도 쥬크박스는 치고 나가지를 못했다.

한참을 밟고 있었더니 속도가 조금씩 올랐고 속도계 바늘이 180km/h를 넘기고서야 간신히 앞차를 추월했다.


그 사이 벤츠, 포르셰, 아우디 등 독일 명차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를 지나쳐갔다.

1, 2차선을 넘나들며 아우토반의 흐름을 타보고 싶지만 차 성능이 못내 아쉬웠다.

160km/h를 넘으면 풍절음이 날카로워졌다.

하체가 부실한지 차가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 들고, 핸들을 살짝만 건드려도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어느새 아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결국 달리기는 포기하고 2차선 정속 주행을 택했다.

그래도 속도계는 140km/h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고속으로 우리를 지나치는 차들 때문에 불안한 아내와 달리 핸들을 잡고 있는 나는 운전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도로 위 차들은 주행 차선과 추월 차선을 칼같이 지켰다.

1차선으로 들어가 추월을 마친 차는 예외 없이 2차선으로 돌아왔다.

깜빡이를 켠 차는 마음 놓고 차선을 변경했다.

1차선에서 달려오던 차도 깜빡이를 보면 상향등을 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 독일에서 상향등은 '네 신호 봤으니 안심하고 차선 변경해라'라는 뜻이다)


'모두가 규칙을 지킨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아우토반의 매끄러운 흐름을 보장했다.

나 역시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고속으로 운전을 하면서도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상대 운전자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기쁜 마음으로 양보를 하게 된다.

손을 들어 감사를 표하는 다른 운전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빙긋 웃게 된다.

운전은 원래 이렇게 안전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이게 선진국의 준법정신이다.





카셀에서 보낸 1주일은 불안하고 불편했지만, 나도 혼자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시간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카셀에서 렌터카를 찾을 때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어필했다. 


“반드시 자동변속기! 미니 쿠퍼 그딴 거 필요 없어. 무조건 자동변속기야!”


해외여행을 할 때 대부분 남편 의견에 따르는 편이지만 이번은 양보할 수 없었다. 

조수석에 앉아 느끼는 공포를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남편이 다시 운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내가 해야 하므로 만일의 사태도 대비해야 했다. 

남편이 독일 일정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이 바로 수동 차량으로 아우토반을 달리는 것이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남편은 단호한 내 모습에 조금 당황했고, 못내 아쉬워했지만 결국 내 의견을 따랐다. 


렌터카 회사에서 자동변속기 차량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간절한 내 바람이 통했다.

남편은 못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여 가능한 자동 변속기 차량 리스트를 보여줬다. 

사실 나도 독일에서 미니 쿠퍼를 타고 달려보고 싶었지만 그런 바람은 사치였다. 

유희의 욕구보다는 심리적 안정이 더 중요했다. 






차종과 상관없이 제어가 가능한 차량이니 마음 편하게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아우토반에 들어서는 순간 깨졌다. 

1주일을 앓아누웠던 사람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솟구치는지 질주 본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눈빛, 반쯤 올라간 입꼬리, 핸들을 꽉 잡고 있는 손과 팔에 보이는 퍼런 힘줄이 당혹스러웠다. 


한국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속도에 나는 공포에 질렸다.

‘타다닥’ 소리를 내며 앞 유리에 부딪혀 터져나가는 수많은 벌레는 내 마음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신나게 질주하던 남편은 조수석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하얗게 질린 나를 발견하고 나서야 속도를 줄이고 정속 주행을 했다. 

공포를 즐기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남편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흥분한 상태였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난항의 연속이었다.

무엇 하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게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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