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병원 시스템 체험기
독일 중북부 교통의 요지이며 그림형제가 <그림동화>를 집필한 곳이다.
프랑크푸르트, 비스바덴에 이어 헤센 주 제3의 도시다.
도시 규모는 꽤 크지만 고층 건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카셀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림형제는 마르부르크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카셀로 돌아와 빌헬름스회헤 궁전 도서관에서 일하는 틈틈이 <그림동화>를 집필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카셀 시는 2015년 '그림 월드'라는 체험형 박물관을 개장했다.
<그림동화>와 관련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동화에 관심이 없다면 카셀에서 제일 볼 만한 곳은 '빌헬름스회헤 궁전 공원'이다.
17세기에 조성된 영국식 정원으로 총면적이 240헥타르에 달한다.
프랑스 마르세유 궁전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는 곳으로 무지막지한 넓이를 자랑한다.
궁전 내부는 박물관 및 미술관으로 운영 중이며 렘브란트, 루벤스 등 거장의 작품 다수가 전시 중이다.
카셀은 독일 지도 정중앙에서 약간 왼쪽에 있다.
트렌델부르크에서 차로 2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트렌델부르크 성을 충분히 즐긴 후 카셀로 향했다.
카셀은 '도큐멘타'로 유명한, 현대미술의 메카와 같은 곳이지만 우리에겐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우리의 목표는 '그림 월드'였다.
그림동화의 전 세계 판본을 전시하고 있으며, 창작 과정과 민담, 전승에 관한 자료들이 매우 잘 정리되어 있다.
또한 동화 박물관답게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 활동과 전시가 진행된다.
... 고 들었다.
카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쓰러졌고, 아내 혼자 다녀왔기 때문이다.
수동 변속기에 적응이 끝나 운전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옆자리에 앉아있는 아내 생각은 다른 듯했다.
그간 쌓인 스트레스와 단백질이 과도한 고성의 만찬이 문제였는지, 통풍 증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운전하는 내내 몸이 불편했고 계속 얼굴을 찡그리는 나 때문에 아내는 꽤나 불안해 보였다.
트렌델부르크에서 카셀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점심시간 언저리에 호텔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차를 반납한 후 시내 중심가인 프리드리히 광장 노천카페에 앉아 숨을 돌렸다.
커피를 마시며 아내와 첫 일주일 여정의 소회를 나눴다.
아내는 운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내가 불안했는지, 차라리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독일까지 왔는데 아우토반을 달리지 않고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오른쪽 발가락 관절이 뻐근해지더니 온몸이 저릿거렸다.
증상은 시시각각 심해졌다.
뭔가 몸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통풍 발작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전에는 가벼운 증상만 스쳐갔을 뿐 발작이 온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불가능해 바로 호텔로 돌아가 그대로 쓰러졌다.
통풍 발작 증상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유리나 면도칼을 잘게 빻아서 부어오른 발가락 관절 부분에 골고루 주입해 놨다고 보면 된다.
발작이 시작되면 심장박동이 뛸 때마다 그 가루들이 관절 곳곳을 후벼 판다.
'발작'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격통이 이어지며, 옆에 칼이 있으면 환부를 도려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통풍 예방을 위한 주의사항은 알았지만, 맥주도 마시지 않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발작이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혹시 몰라 출국 전 병원에 들러 '콜킨'을 처방받아 왔는데, 일일 복용량 한계치까지 복용해도 증상이 가라앉지 않았다.
발작이 온 후 이틀 밤낮 사경을 헤맸다.
통풍 증상은 뱀파이어 같아서 해가 지면 미쳐 날뛰고, 해가 뜨면 통증이 조금 줄어든다.
발을 내리면 피가 몰려 발작이 찾아오기 때문에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발을 치켜들고 끙끙 앓는 수밖에 없었다.
식당으로 내려갈 수도 없어 아내가 매 끼니 음식을 사다 날라야 했다.
짜고 기름진 독일 음식 대신 마트에서 초밥을 사다 먹었다.
그 와중에 요거트인 줄 알고 퍽퍽 퍼먹은 것은 지방 24%짜리 생크림이었다.
독일어를 읽을 줄 모르니 생긴 해프닝이었다.
맛이라도 느꼈어야 할 텐데 통증이 심해서 미각도 마비된 것 같았다.
설사와 복통이 더해졌다.
지옥이 있다면 여기지 싶었다.
카셀에 도착해 차를 반납했다.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차를 보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숙소로 이동하는 길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숙소에 도착하자 남편은 긴장이 풀렸는지 통풍 증상이 올라온다고 했다.
남편의 지병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상비약도 준비했고, 음식도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막지 못했다.
이틀째 밤, 남편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발작을 일으킨 남편은 고통에 몸부림쳤고 나는 걱정과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남편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 뭐라도 해야 했다.
리셉션으로 내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짧은 영어로 남편이 아프니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런데 직원이 독일어로 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밤에 당직을 서는 직원은 영어를 못 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번역기를 돌려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제야 직원은 긴박한 상황을 이해했는지 구급차를 불러주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다만 불러줄 수는 있으나 비용이 매우 비쌀 것이라고 했다.
몇 시간 있으면 낮이니 조금 참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한번 더 남편의 상태를 확인하겠다고 말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그 사이 남편은 발작을 멈추고 지친 상태로 축 쳐져 있었다.
직원과 나눴던 대화를 전하고 남편의 의사를 물었다.
남편은 내일 아침까지 참아보겠다고 말했다.
언제 또 발작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외교부에 연락해 도움을 청해야 할까? 내일 당장이라도 귀국해야 할까? 미리 구급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식은땀을 흘리며 수시로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아내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두 사람 다 여행이고 나발이고 여기서 접고 귀국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져간 콜킨을 계속 복용하고 음식을 조절했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발작 이틀째 밤에는 도저히 못 참고 구급차를 부르려 했으나 야간 당직인 호텔 직원은 영어를 전혀 못했다.
나는 리셉션에 내려갈 수도 없고 아내가 리셉션과 방을 오가며 땀을 뺐다.
앰뷸런스를 부를까 하다가 참았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타국에서 잘못 비용을 지출했다가는 여행 일정이 반토막 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었다.
이를 악물고 하룻밤을 더 버텼다.
발작 사흘 째, 아침에 직원이 출근하자마자 병원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독일 의료체계는 1차, 2차, 3차 의료 기관 순서를 철저하게 지키게 되어 있다.
대형 병원은 그냥 가면 안 받아준다.
나도, 리셉션 직원도 그 사실을 몰랐다.
직원은 택시를 불러 나를 태웠다.
낑낑대며 겨우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1차 진료기관인 의원(hausarzt)에서 소견서를 받아오란다.
호텔에서 소개해 준 병원이라 당연히 진료가 될 줄 알았는데 그딴 거 없다.
다시 호텔에서 상황 설명하고 'hausarzt'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리셉션 직원은 그제야 '아~'하고는 어딘가로 다시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택시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병원에 도착했다.
첫인상은 병원이 아니라 전원주택이었다.
택시기사도 '여기가 병원인가?' 하며 우리를 내려줬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간호사 둘이 앉아 있는 데스크가 보였다.
의사가 등장하더니 나를 진료실로 데려갔다.
고기, 맥주 콤보의 나라 독일이라 그런지 통풍은 흔한 질병인 듯했다.
'통풍(Gicht)'라고 써진 구글 번역기 화면을 보여줬더니 의사가 증상을 물어봤다.
의사는 문진 후 내 발 상태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는 진리다.
처방받은 약을 먹은 후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됐다.
밤 9시가 넘어도 발작이 나타나지 않았고, 조금만 노력하면 땅을 딛고 설 수가 있었다.
이 간단한 일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독일 의료체계는 여행자에게는 불편하지만 꽤 합리적이었다.
일단 주치의에게 먼저 상태를 보이고 의사 소견에 따라 큰 병원으로 옮겨가는 시스템이다.
독일은 시스템을 통해 과잉진료를 예방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갔던 의원에서도 문진을 마친 후 별도의 약 처방이나 주사제 처방 없이 바로 처방전만 끊어줬다.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나온 병원비는 24유로(약 3만5000원), 약 값은 13(약 2만 원))유로였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가격이어서 조금 비싸게 느껴졌지만, 만약 밤 사이 리셉션 직원과 의사소통이 돼 구급차를 불렀으면 여행 경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거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체계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