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영주의 도시, 뷔르츠부르크
주교영주의 도시, 뷔르츠부르크
로맨틱 가도의 시작점이며, 나중에 소개할 '로맨틱 가도 버스'도 여기서 출발한다.
중세 시대 주교 영주의 권한이 막강했던 곳으로, 그 영향으로 도시에 수많은 대형 교회가 산재해 있다.
왕권이 공고하지 못했던 중세 유럽은 도시 국가가 발달했다.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는 교권을 등에 업고 주교가 영주의 직무를 겸임했던 곳도 꽤 많았다.
이런 주교를 통칭 '주교 영주'라고 불렀다.
도시의 주요 관광지인 레지덴스, 마리엔베르크 요새 모두 주교 영주 공관이나 궁전이었던 곳이다.
'프랑켄 와인'이라는 와인 산지로도 유명하며, 대학 도시라 젊은 기운이 넘치는 활기찬 도시다.
다사다난했던 렌터카 여행을 마치고 뷔르츠부르크에 들어섰다.
호텔에 짐을 부린 후 렌터카를 반납하러 에이비스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은 도시 중심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있었는데 오후 2시 경임에도 문을 닫아놓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내가 갔던 날은 성 금요일, 부활절 휴가 기간이었다.
난감했다. 차를 반납하지 않으면 렌트 비용이 추가 청구될 터였다.
에이비스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어보고, 뷔르츠부르크 지점에 전화를 해보고, 혹시나 싶어 사무실 문도 두드려 봤지만 답은 없었다.
30분쯤 헤맸을까?
모델처럼 생긴 훤칠한 독일 남자가 차를 몰고 렌터카 사무실에 들어섰다.
남자는 차를 주차하더니 사무실 옆 우체통에 뭔가를 넣고 돌아섰다.
30분 만에 처음 본 사람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붙잡고 물었다.
미심쩍었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녀갔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인증숏 한 장 찍은 뒤 사무실을 떠났다.
다음날 호텔 리셉션을 통해 렌터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니 "No problem, everything is OK"란다.
슈퍼 커버 보험을 들면 차량 인수, 인도 시 차량 컨디션 확인도 생략한다는 걸 이때 알았다.
차가 어떤 상태가 되건 보험으로 커버할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렌터카 여행이 몸은 편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차량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관리해야 했고, 생소한 주차 시스템에 적응하고 주차장을 찾는 과정이 모두 스트레스였다.
책임져야 할 무엇인가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차를 반납하고 나자 신기하게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우여곡절 끝에 차를 반납하고 나왔으나 다른 문제가 튀어나왔다.
렌터카 사무실은 도시 외곽에 처박혀 있었고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택시를 부르거나 걸어 나와야 하는 상황인데, 콜택시 번호도 몰랐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구글맵을 보니 한 시간 정도만 걸으면 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닿을 수 있을 듯했다.
아내와 터덜터덜 걸으며 '독일 시골 풍경이 참 느긋하다'같은 한담을 나눴다.
걷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으나 대로변에서 식당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천행으로 길 중간에 맥도널드를 만나 요기를 할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도대체 이 나라는 차가 없으면 어떻게 돌아다니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뷔르츠부르크의 랜드마크인 레지덴츠 Residenz로 향했다.
레지덴츠는 18세기 뷔르츠부르크 주교 영주 '요한 필립 프란츠 폰 쇤베른'의 궁전이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교 공관'이라고 극찬한, 바로크 건축의 걸작이다.
원래 시내 남쪽 마리엔베르크 요새를 공관으로 삼았던 주교 영주가 거처를 시내로 옮기기 위해 지은 궁전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계단의 방 천장은 거대한 프레스코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천장화라는데, 성경과 고대신화에서 소재를 가져와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프레스코화의 중심, 원래대로라면 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뜬금없이 인간의 초상이 있다.
안내문을 살펴보니 주교 영주 요한 필립의 초상이다.
왕이나 황제가 아니라 주교다.
거룩한 부르심을 받아 만인의 종복으로 봉사해야 할 사제가 신의 영역을 넘본다.
18세기에 바벨탑이 다시 섰다.
레지덴츠 내부는 원칙적으로 사진 촬영 금지다.
그런데 프레스코화를 보며 감상에 젖어 있는 동안 여기저기서 셔터음이 들렸다.
잠시 고민했지만 카메라는 들지 않았다.
다만 천장화를 본 감상을 기억하고 싶어 딱 한 장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레지덴츠 다음으로 찾은 곳은 마리엔베르크 요새 Festung Marienberg다.
뷔르츠부르크 중심을 관통하는 마인 강 서쪽 구릉에 자리 잡은 성채다.
원래는 8세기 초에 예배당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13세기 초부터 예배당을 둘러싼 성곽을 지으면서 확장해 요새로 개조했다.
17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했으며, 현재까지 그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18세기 초까지 역대 주교 영주 공관이자 성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요새 내부는 딱히 볼거리가 없지만, '왕자의 정원'에 들어서면 뷔르츠부르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르크트 광장에서 시청사를 바라보면 건물 너머로 알테 마인 다리 Alte Mainbrücke가 보인다.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를 축소해 놓은 듯한 모양새다.
마인강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로, 다리 위에는 뷔르츠부르크의 성인 성 킬리아니 등 성자 12명의 동상이 도열해 있다.
때가 탄 듯 색깔이 칙칙하기 짝이 없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암으로 만든 동상이라 색이 변한다고 한다.
씻어내면 원래 색을 찾는데, 원래 색은 연한 노란색, 혹은 아이보리색에 가까운 밝은 색이다.
다리 위에서는 거리의 악사가 날마다 자리를 바꿔가며 현을 탔다
알테 마인 다리 진입 직전에 카페, 레스토랑이 몇 개 있는데, 사람들은 거기서 와인을 사 들고 나와 다리 위에서 경치를 조망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리 위에는 흥청거리지 않는, 느긋한 흥겨움이 넘실거렸다.
알테 마인 다리 한가운데는 심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서양인의 골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구걸 중이었다.
행색은 남루했지만 더럽지는 않았고,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지그시 눈을 감은 모습은 명상 중인 수행자 같았다.
마침 지나던 사람이 모자에 동전을 던져 넣었고, 남자는 두 손을 합장하며 고개 숙여 "당케, 나마스떼"라고 인사했다.
순간 사짜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왔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라니...
사진 값은 1유로였다.
알테 마인 다리를 건너면 마리엔베르크 요새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길은 두 갈래고 시간만 다르다.
당연한 얘기지만 빠른 길은 힘들고, 먼 길은 편하다.
마리엔베르크 요새까지 가는 길은 줄곧 오르막이다.'요새'답게 중간중간 관문을 거쳐야 한다.
성벽 높이를 보면 농성의 기능은 못 미더웠지만, 규모나 만듦새는 꽤 인상적이었다.
별다른 장식 없이, 네모 반듯하게 세워진 육중한 건물은 한때 이곳이 교회였음을 웅변했다.
세월을 따라 덧대어 놓은 건물과 성벽은 투박하고 장엄했다.
한때는 육두마차가 들어섰을 길을 따라 자동차가 드나들었다.
하지만 마리엔베르크 요새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건물도, 역사도 아닌 '사람'이었다.
카셀에서도 그랬고, 브레멘에서도 그랬다.
뷔르츠부르크도 술집과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업장이 6시에 칼같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일까?
평일 오후에 유모차를 끌고 나선 젊은 부모들이 참 많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하거나 유모차를 끄는 남자들이 흔했다.
남자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살 수 있는 사회 환경이 대단해 보였다.
아이가 사라진 대한민국 풍경이 잘못됐다는 걸 이곳에서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