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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Nov 11. 2024

소중함을 잊고 있었나?

코리아 타운, 할슈타트


할슈타트 Hallstatt



알프스를 등 뒤에 두르고 앞에는 그림 같은 호수를 펼쳐놓았다.

동화 속 풍경이 있다면 이럴 것이다. 

1997년에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호숫가 산등성이를 따라 늘어선 아름다운 목조가옥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마을 가장 깊숙한 언덕 위에 자리한 교회 뒷마당에는 마을 사람들이 묻힌 공동묘지가 있다.

마을 뒤쪽에 솟은 다흐슈타인 산은 소금 광산이 있는 곳이다.

선사시대부터 채굴을 시작해 할슈타트의 번영을 일궈낸 근간이다.

KBS2 <배틀트립>에서 다녀왔고, EBS <세계테마기행>에서도 소개했다. 

소금 광산이 있는 곳답게 기념품 가게는 암염, 소금 비누 등으로 가득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패키지로 스위스, 오스트리아 쪽을 갈 때면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기념품 가게는 한글 안내문도 구비하고 있다. 






체크아웃하고 호텔을 나서려는데 리셉션 직원이 물 두 병을 건넸다.

숙박일 마다 기본 제공하는 물이지만, 이렇게 받으니 마치 먼 길 떠나는 데 배웅해 주는 기분이다.

나쁘지 않다.


기차는 뮌헨에서 출발해 잘츠부르크, 빈을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이르는 노선이다.

우리는 잘츠부르크에서 내려 할슈타트로 가는 지선으로 갈아탔다. 

기차는 서에서 동으로 달린다. 

여정 내내 오른쪽으로는 알프스산맥이 이어졌다.

기온은 0도 언저리에서 오르내리지만 햇살은 따사로웠다.

멀리 보이는 만년설이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잘츠부르크에서 환승해야 할 기차를 놓쳤다.

기차가 5분 정도 연착했는데, 환승 대기 시간이 15분이라 방심한 게 화근이었다.

환승해야 할 플랫폼으로 가기 전 화장실에 들렀다가 역사를 구경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플랫폼에는 우리가 탈 기차가 대기 중이었다.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문 열림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기차가 '푸쉭'하고 숨을 내뿜으며 출발해 버렸다.

코 앞에서 기차를 놓쳐버렸다.


짜증이 치밀어 오를 만한 상황이었지만, 나도 아내도 의외로 담담했다.

여행 20일째를 넘기면서 어지간한 돌발 상황은 덤덤하게 넘기고 있다. 

일단 티켓 센터에 가서 표를 보여주고 대책을 물었다.

의외로 흔한 일인지 데스크 직원은 내 티켓을 가져갔고, 대신 문서 한 장을 출력해 줬다.

독일어라 알아볼 수 없었지만, 할슈타트까지 가는 열차 시간이 한 시간씩 늦춰져 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로 가는 기차 편은 거의 시간마다 있는 듯했다. 

수수료는 물지 않았지만, 예약해 놨던 좌석은 날아가 버렸다.

기차에 오르고 보니 다행히 자리가 많이 남아있었다. 

아내는 자리에 앉자마자 잠들었다.

부럽기도 한데 좀 안타깝다. 

계속 기막힌 풍경을 놓친다. 








오스트리아 열차는 다홍색이다.

삼선기의 붉은색에서 채도를 조금 뺀 듯하다. 

깔끔하고 세련된 색깔이다. 

나중에 빈에서도 느꼈지만, 오스트리아는 어디를 보더라도 그루밍이 잘 돼 있다.


승무원이 지나가며 사람들에게 말을 걸길래 모바일 티켓과 열차 변경 관련 문서, 여권을 꺼내놨다.

내 차례가 되어 준비한 것들을 내놓으니, 'No, no, drink?'라고 되묻는다.

'홍익인간'에게 표를 내민 상황이었다.

유니폼이 비슷해 당연히 차장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옆에서 낄낄거리고 웃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 남부와 닿아있다.

같은 알프스산맥을 끼고 있는 지역이지만, 느낌이 미묘하게 달랐다. 

드넓은 하늘을 폭발하듯 퍼져나가는 구름이 채웠다. 

남부 독일의 끝없는 지평선은 어느새 사라지고 리듬감 있는 구릉이 춤췄다.

그 너머로는 어김없이 남자의 강인한 턱선 같은 알프스산맥이 따라붙었다. 

동네 뒷산이 알프스라니, 부럽다. 










목적지는 할슈타트지만 숙소는 호수 건너편 오베르타운에 잡았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마을보다는 조용한 곳에 묵고 싶었다.

하지만 새벽부터 바깥이 소란스러워 일찍 눈을 떴다. 

창문을 열었더니 카메라와 삼각대를 싸 들고 온 사람들이 호텔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잔잔한 호면은 그대로 거울이었다. 

별생각 없이 잡은 숙소가 촬영 명소였다. 

잠은 설쳤지만 뜻밖의 행운에 입이 벌어졌다. 




소동파의 시 중에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이라는 작품이 있다.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여산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는 건, 내가 산속에 들어앉았기 때문이라네


산의 참모습을 보려면 산속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 멀리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시의 철리(哲理)에는 더 깊은 뜻이 있지만, 표면적인 해석은 그렇다.

할슈타트도 그랬다. 

동화 같은 마을 내부는 숨을 할딱일 정도로 흥분되는 풍경인데,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선경이었다. 






할슈타트는 방송에 워낙 많이 소개된 탓에 단체 관광객 천지였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한국말이 들렸다. 

살다 살다 오스트리아 산골짜기서 인터파크 투어 전세 버스를 볼 줄은 몰랐다.

금발 머리, 벽안의 남자가 한국 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마을 안에 들어가도 여기가 유럽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한국말이 많이 들렸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호반 도시를 상상하고 들어섰는데 꽤나 당혹스러웠다. 

쉴 새 없이 어깨를 스치는 사람들 때문에 자꾸 정신이 사나워졌다. 

모이기만 하면 공중도덕과 예의범절을 망각하는 몰지각한 관광객들은 이곳에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들뜬 마음은 이해하지만 짜증이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다. 


"숨 쉬어. 어차피 좀 있으면 안 볼 사람들이야"


이제는 내 예민한 성격을 파악한 아내가 나를 다독였다.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아내는 길을 걷다가 고양이 인형을 파는 기념품 가게가 나오면 어김없이 주저앉았다. 

여전히 아이 같은 면이 있는 아내를 보면 웃음이 나왔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나니, 언제부터인가 아내 사진을 찍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는 연애 기간이 짧았던 만큼 신혼이 길었다. 

결혼 5년 차가 되도록 단 한 번도 싸운 적도, 언성을 높인 적도 없었다. 

의견 충돌이나 감정 대립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아내나 나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면 우선 말을 삼갔다. 

반나절이고 한나절이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했다. 

왜 화가 났는지, 상대의 잘못이 무엇인지 설명했고, 상대는 반론을 펴거나 시인하고 사과했다. 

대화가 길어질 때가 많았지만 덕분에 감정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런 아내의 성향이 쌀쌀맞아 보였는데, 살아보니 매우 고마운 성격이었다. 


하지만 24시간 붙어 지내다 보니 이런 대화법도 한계가 있었다.

수시로 터져 나오는 감정을 매번 억누르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고마움을 잊고 있었다. 

심경이 복잡했다.

내 상태는 이해했지만, 감정적으로 해결이 되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여전히 해맑았다. 






남편과의 첫 만남은 소개팅 자리였다. 

퇴근이 늦어졌다며 미안해하며 등장한 남편은 점잖고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환장할 정도로 답답한 면이 있었다. 

남편은 첫 만남에서 “마흔 넘으면 퇴사하고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때까지는 결혼 생각은 없고요”라고 말했다. 

‘저렇게 우아하게 상대가 싫다는 말을 돌려서 말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은 내가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생각하고 있던 바를 그대로 말한 것이었다. 

연애 경험이 거의 없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 무딜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여기서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게 맞지만 사람 인연은 참 얄궂다. 

예의상 한번 다시 보자고 할 법도 한데, 남편은 그날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냥 잊어버려도 됐을 텐데, 오기가 발동했다. 

‘도대체 넌 얼마나 잘난 사람이길래 예의상 문자 한 통도 보내지 않는 거냐?’라는 생각에 문자를 보냈다. 

‘이것이 예의라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고 싶었다. 

문자를 보내고 하루가 지나 남편에게 답장이 왔다. 

문자만 봐도 코가 땅에 닿을 듯 허리를 숙인 남편이 상상될 정도로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마감 기간이라 정신이 없어 잊고 있었다는데, 이것도 변명인가 싶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보니 농담이 아니었다. 

기자의 마감은 지옥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신혼 때도 한 달 중 절반은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두 번째 만남은 첫 번째 만남만큼이나 강렬했다. 

약속 장소는 종로인데, 지하철 역 근처에서 만나자고 했다. 

차를 가져오나 싶었는데, 집 근처 역에서 만나 같이 지하철 타고 가잔다. 


“주말에 종로통은 차 갖고 갈 데가 못 돼요”


남편은 철저하게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지하철 역을 고른 이유는 환승 없이 한번에 약속 장소로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만나 아직 어색함이 가시기도 전인데 지하철에서 바짝 붙어 가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이미 불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종로 근처 모 신문사에서 일하던 남편이 “여기에 진짜 맛있는 집이 있다”며 나를 이끈 곳은 칼국수 집이었다. 

레스토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칼국수 집은 좀 너무하지 않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불만을 넘어 포기 상태였다. 

소개팅한 남자와 마늘 냄새를 풍기며 대화를 해야 할 상황이라니.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맛있게 먹고 집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김치를 한 접 집어 먹었는데... 이게 왜 맛있는 거지? 

그 와중에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칼국수를 한 입 후루룩 먹었는데 국물이 진짜 진국이었다. 

이미 자포자기하고, 밥만 먹고 집으로 가기로 한 나는 입에서 김치 냄새날 것을 포기하고 그냥 칼국수 한 젓가락에 김치 두세 점을 곁들어 가며 소개팅남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모두 접은 채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밥만 먹고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도 잊고 허겁지겁 국수를 먹어치웠다.

남편은 그걸 보더니 “맘에 드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라는 말로 확인사살을 했다. 

기막힌 상황이지만 그냥 웃었다.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꼈을지도 모르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소개팅을 한 사이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중이었으니까. 


맛있는 것만 먹으면 단순하게도 화가 모두 사라지는 나는, 맛있는 칼국수와 김치를 먹고 나니 기분이 풀어졌다. 

원래 의도대로라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집으로 가야 했지만 이미 기분이 풀어진 나는 맥주 한잔 하자는 남편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사실 맥주를 마시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남편에 대한 기대감이 모두 사라진 이후였다.

소개팅남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도, 아니 우리가 소개팅했다는 사실도 모두 잊고 있었다. 

그런 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너무 편한 대화를 나눴고, 대화에 임하는 남편의 진솔한 태도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남겼다. 


그 이후 남편은 하루가 멀다고 나를 만나러 왔다. 

마감인 날에는 와서 5분,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도 꼭 얼굴을 보고 갔다. 

살짝 귀찮은 날도 있었지만 남편이 보이는 정성에 거절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만남 이후 거의 매일을 만났기 때문에 기간에 비해 만남 횟수는 꽤 많아졌다. 

그리고 남편은 한 달 만에 사귀자는 프러포즈를 했다. 

교제는 시작됐지만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예의를 갖춘 연인 같지 않은 연인의 모습을 보였다. 

이런 만남은 나름 장단점이 있었다. 

예의를 갖추다 보니 트러블이 생길 일은 없었지만 아주 편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 불편함은 있었다. 


그렇게 3달이 지났지만, 남편 비혼주의는 여전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결혼에 대한 남편 생각은 완고했다. 

이렇게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는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설득 대신 기다림을 선택했다. 

결혼을 강요하며 부담을 주는 것은 오히려 남편이 결혼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없이 조용히 스며드는 시간을 무시할 수 없다. 

비혼주의를 외치던 남편은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식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연애 기간이 짧았기에 우리는 결혼 이후도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우스갯말로 남자친구가 집을 안 간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소꿉장난 같은 결혼 생활이 이어졌고, 딩크족이었던 우리는 차곡차곡 모은 푼돈을 모아 여행으로 목돈을 사용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행복이라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또 여행을 계획하는 그 시간이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할슈타트를 떠나기 전, 마을 끝자락 어느 건물 앞에서 집을 지키는 고양이를 만났다. 

처음엔 길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외출했던 주인이 돌아와 문을 열자 쏜살같이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추위를 피하려 카페에 들어갔더니 거기에도 고양이가 있었다. 

목걸이를 바짝 졸라맨 날씬한 녀석이 꼬장꼬장한 표정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가게에서 키우는 고양이예요?"


"아뇨, 동네에 사는 길고양이예요. 가끔 이렇게 와서 먹을 걸 달라고 졸라요."



카페 종업원은 능숙한 솜씨로 캔을 하나 따서 녀석 앞에 놓아줬다.

'촵촵'거리며 캔을 비운 녀석은 카페 문을 열고 유유히 떠나갔다. 

나중에 마을 입구에서 녀석을 다시 만났다.

이 동네 고양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여유로웠다. 

심지어 행복해 보였다. 

길고양이가 행복한 곳은 사람도 행복한 곳이리라.

그만큼 인정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뜻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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