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힘이 세다
체코 남부, 오스트리아 북부 국경 인근 작은 마을이다.
붉은 지붕과 좁은 골목길, 체스키 성에서 바라본 아기자기한 모습은 '동화 마을'을 꿈꾸는 사람들의 환상을 자극한다.
올드 타운 내 건물은 대부분 18세기 이전에 지은 것들로, 1992년에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꼭 들러야 할 관광지라면 체스키 성 정도겠지만, 그보다는 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것 자체가 목적인 소도시다.
할슈타트를 떠난다.
떠나는 날 눈과 비가 섞인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산속 날씨는 언제나 괴팍하다.
체스키로 가기 위해 셔틀버스를 예약했다.
버스는 12인승 폭스바겐 승합차를 8인승으로 개조한 미니 버스다.
네 자리를 떼어내고 짐칸을 만들었다.
덕분에 캐리어 8개를 차곡차곡 쌓을 공간이 나온다.
셔틀버스 운전사 이름은 '빈센트'였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운전은 상당히 거칠었다.
린츠를 지나 체코 국경으로 향하는 내내 엔진이 비명을 질러댔다.
빈센트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무서운 기세로 주파했다.
얕은 둔덕을 넘을 때는 가끔 차체가 떠올랐다.
빈센트는 마치 다운힐을 공략하듯 곡선 주로를 전속력으로 돌파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길가에 둥근 표지판이 하나 서있었다.
표지판에는 <체코 공화국>이라고 써놨다.
국경이다.
검문소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국경을 넘는 순간 주변 풍광과 공기가 극적으로 변했다.
오스트리아 풍경이 말끔하게 그루밍한 조각 미남 같은 느낌이라면, 체코 풍광은 거친 수염이 무성한 마초다.
구름 아래 신록이 펼쳐진 오스트리아와 달리 체코 숲은 검푸른 색이었다.
오스트리아 전원 풍경은 목동의 피리소리가 들릴 것처럼 평화로웠는데, 체코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단조의 러시아 군가가 들릴 듯 음울했다.
듬성듬성 들어선 시골집은 낡고 쇠락했다.
목재에는 이끼가 끼거나 시커먼 때가 잔뜩 묻어 있었고, 시멘트 벽은 온통 잿빛이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벽돌이 드러난 건물 담벼락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눈매가 매서운 청년들이 그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체스키로 향하는 산길에서 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푸조를 만났다.
아키나의 86을 보는 듯한 문양이 인상적이었다.
낡은 푸조는 굽이진 산길을 날렵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빈센트는 푸조의 주행이 답답했는지 직선로가 나오는 순간 순식간에 추월해 버렸다.
폭스바겐 승합차 엔진이 괴성을 질렀고, 아내는 멀미로 쓰러졌다.
광란의 질주에 지쳐갈 때쯤, 빈센트가 말했다.
'이 음울한 풍경 어디가 체스키란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빈센트가 핸들을 꺾었다.
고개를 한 굽이돌자 언덕 아래에 붉은 벽돌 지붕으로 덮인 마을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빈센트는 호텔 입구에 우리를 내려줬다.
빈센트는 정확하게 주소를 찾았지만, 이 호텔, 리셉션과 숙소가 1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호텔 입구에서 들어갈 방법을 몰라 전화를 걸었더니 "아, 조금만 걸어오면 우리 리셉션이에요. 미안하지만 이쪽으로 와주세요"란다.
멀미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내는 호텔 입구에서 짐을 지키고 있고, 나 혼자 리셉션으로 내달렸다.
아내가 침대에 늘어져 있는 동안 짐을 정리했다.
문득 내가 통풍으로 쓰러져 있을 때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됐다.
아픈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 몸밖에 생각나지 않지만, 지켜보는 사람의 고통도 만만치 않다.
이제까지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았던 아내라 내가 너무 늦게 알았다.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이제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아내가 정신을 차린 후 식사를 하러 나섰다.
맥주의 고장 체코에 왔지만, 통풍 환자에게 맥주는 언감생심이다.
고통스러워하는 날 보며 아내는 깔깔대며 흑맥주 잔을 기울였다.
레스토랑 바로 옆은 에곤 쉴레 박물관이었다.
나중에야 퇴폐미의 정수를 보여준 화가라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에는 아내나 나나 미술에는 문외한이라 그대로 지나쳤다.
유럽 여행 내내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산책하고 차 마시면서 동네를 조망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작은 미술관이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체스키크룸로프는 눈길 닿는 곳 모두 톤이 짙었다.
프라하까지 이어지는 블타바강은 시커먼 색이었다.
강물은 우울하고 무겁게 흘렀다.
사람들은 마을을 타고 도는 강줄기를 끌어들여 수로를 냈다.
집집마다 그 수로에 물레방아를 놓았다.
골목을 하나 꺾었을 때 어느 집 물레방아 옆 작은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조각을 보는 순간 뒤통수에 벼락이 떨어졌다.
1985년, 내가 8살 때 어머니께서 한글 교육을 목적으로 동화 전집을 사주셨다.
문선사에서 나온 <현대 세계 걸작 그림 동화 전집>이었다.
얇은 양장본 31권으로 구성된 동화 전집이었다.
각 권마다 동화 구연 카세트테이프가 딸린 세트였다.
각종 동화 관련 상을 수상한 걸작들만 엄선해서 편집한 세트로, 삽화 하나하나가 다 예술작품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마니아들이 찾는 전설적인 아이템이다.
당시 우리 집은 짜장면 한 그릇 먹기 위해 아끼고 아껴야 할 정도로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다.
그런 시절에 받게 된 선물이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시간만 나면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읽지 않을 때는 카세트테이프를 거실 전축에 넣고 계속 틀어놨다.
그중에 '늪의 괴물 보드니크'라는 작품이 있었다.
동네의 아름다운 아가씨 '망야'를 신부로 납치하려는 괴물 보드니크에게 맞서는 망야와 남자친구 '폰차'의 이야기다.
그 보드니크가 3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조각 밑으로 흐르는 블타바 강은 동화에서 보고 들은 그 음울한 물소리와 시커먼 물 색을 단번에 소환했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등골에 소름이 돋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문득 여덟 살 때 먹었던 군고구마 맛과 향이 기억났다.
'늪의 괴물 보드니크'를 읽었던 내 방구석 벽의 서늘한 감촉과 싸구려 니스를 칠한 책장 냄새가 기억났다.
동생과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배역을 나눠 따라 하며 깔깔거리던 날이 생각났다.
그걸 보며 껄껄 웃는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추억은 그런 것이다.
갑자기 나를 과거 한가운데 떨궈 놓는다.
나는 그 안에서 한없이 행복해진다.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작은 도시는, 보드니크를 만나는 순간 나에게 가장 짜릿한 여행지로 변했다.
칙칙한 블타바강은 검은색 비단으로 보였다.
쇠락한 옛 건물은 고풍스러운 유적으로 탈바꿈했다.
딱히 맛있는 음식도 없었지만 길거리의 핫도그마저 진미로 느껴졌다.
체스키는 언덕을 끼고 선 마을이라 그런지 골목이 상하좌우로 배배 꼬여 있다.
쭉 뻗은 길은 보이지 않는다.
시선 닿는 곳 모두가 골목 모서리다.
그래서 한 자리에 잠시만 머물러 있으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 모서리를 끼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들 발걸음이 느리고 조용한 마을에 일정한 리듬감을 불어넣는다.
당일치기로 체스키에 온 단체 관광객들이 떠나가자 마을이 고요해졌다.
오후 5시가 넘어가니 해가 기울며 마을을 따뜻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였다.
햇살 아래 제법 머리가 굵은 아이들이 깔깔대며 교회로 뻗은 오르막을 뛰어올랐다.
단정하게 유니폼을 차려입은 식당 웨이터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골목을 누비며 음식을 날랐다.
상점 판매원인 듯한 아가씨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잠시 골목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숨을 돌렸다.
골목으로 떨어지는 그림자가 고단했던 하루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림자가 길어졌고, 어느새 시곗바늘은 저녁 7시를 지났다.
해가 긴 유럽은 8시가 넘어야 어둠이 내린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밥때를 놓치기 십상이다.
호텔 직원이 추천해 준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왔더니 바로 옆 레스토랑이 시끌벅적했다.
격자무늬 창문 너머를 들여다보니 전통의상을 입은 뚱뚱한 장년 남자들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주황색 백열등이 실내를 어슴푸레 밝히고 있었다.
맥주잔을 든 손님들은 껄껄거리며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악사들은 모자를 벗어 인사하며 연신 땀을 훔쳤다.
조명과 음악, 사람들이 뿜어내는 즐거운 기운이 레스토랑을 가득 채웠다.
실내를 채우고도 남아 넘친 따스함이 가게 밖으로 흘러나와 길 가던 사람들 발길을 잡아 세웠다.
어느새 우리 뒤로도 구경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쉽지만 실내는 이미 만석이었다.
언젠가 체스키에 다시 갈 이유가 생겼다.
식당 이름은 'Na Rouji'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