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적인 보상 추구가 극대화된 게 게임이다. 흡입력 강한 게임은 인풋-아웃풋을 빠르게 이어지게 하고, 예상치 못한 변화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게이머는 적을 무찌르고 파밍(게임에서 아이템을 얻는 작업)을 한다. 내용물을 모르는 랜덤박스를 열어 보상을 얻고, 아이템이 사라지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강화 작업을 한다. 게임은 이 선택과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빠르고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청년 남성 문화에서 게임이 미치는 영향은 지배적이다. 트위치나 유튜브, 커뮤니티 등 청년층이 즐기는 온라인 문화 자체가 게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쉼 없이 올라가는 트위치 스트리밍의 채팅창의 '드립'과 통용되는 '짤'은 대체로 게임 문화에서 파생된 밈의 변주다. 이는 단지 청년 남성이 게임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즐기는 온라인 문화는 게임의 영향권 안에 있다는 의미다.
(중략)
지배적인 문화는 강한 되먹임 효과가 있다.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은 행동 양식을 서로 용인한다. 테스토스테론을 뿜어내는 콘텐츠에 함께 열광하고, 어깨 걸고 '가즈아'를 외치는 문화는 즉각적인 보상 추구를 강화한다. 애초에 단기 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이들이 이런 문화에 빠질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게 형성된 문화의 영향으로 다시 행동이 강화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중략)
논의한 바와 같이 청년 남성 집단은 강한 단기적 성향을 보인다. 부의 재분배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더 가진 사람은 당장 자신의 재산을 내놓는 걸 거부한다. 덜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더 가져오려 한다. 한 번으로 끝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이러한 특징은 리버럴(Liberal) 성향의 정치 집단과 청년 남성 사이에 흐르는 긴장에 대한 힌트를 준다. '단기적 성향'은 거대한 구조보다 직관적인 상황에 집중하는 경향을 뜻하기도 한다. 사회 문제를 거대한 구조에서 사고하기보다 개인이나 특정 사건 단위로 보려는 태도다. 사회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치환하는 리버럴 정치관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사고방식이다.
이보다 시험·면접 같은 평가는 '직관적 보상'이라는 게임의 원리에 맞다. 참가자에게 규칙이 공지되고 모두가 여기에 따라 경쟁하고, 곧바로 결과가 나온다.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를 잡아 파밍하고, 레벨 올려서 상위 티어(Tier)로 가는 익숙한 모델이다. 사회를 게임의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청년 남성에게 복잡한 고려가 개입되지 않은 경쟁과 보상은 매력적이다.
규칙을 따라 따낸 '트로피'에 대해 누군가 간섭하는 건 반칙으로 여긴다. 자신의 '명문대 입학-대기업 입사-자가 마련'으로 이어지는 중산층 코스 진행을 늦추는듯한 각종 사회 정책에 불만이 큰 이유다. 투자에서 드러난 것처럼 자신감과 위험 감수 성향이 큰 이 집단 입장에서는 단순한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시도는 못마땅하다. 부의 재분배나 각종 우대 정책은 현실 세계에서는 필요성을 인정받지만, 이를 게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반칙으로 느끼는 것이다.
- 중앙일보 남궁민 기자의 <게임화된 세대> 에서 일부 발췌
위 글은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보았던 중앙일보 남궁민 기자의 글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보상 추구가 극대화된게 게임이다. 청년 세대(특히 남성)는 게임을 즐겨 하다보니 단기적/즉각적 보상 추구라는 게임의 메커니즘을 내면화했다. 청년 세대에게 사회란 미니 게임의 연속일 뿐이며 게임에 익숙한 청년 세대는 장기적/거시적/구조적인 사고를 못하게 됐다는 말이다. 게임이 대중화되면서 정말 별의별 의견이 다 나온다. 게임이 너무나도 증오스럽다보니 어떻게든 게임을 악마화하지 않으면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밀고 있던 게임중독 프레임이 반박을 당하자 이제 새로운 프레임을 짜려고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전 편에서 다뤘던 게임의 능력주의 논란에 이어 게임화된 세대라는 말 역시도 새로운 게임중독 프레임 만들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선 단기적이라는 특징, 그러니까 인풋-아웃풋을 빠르게 이어지게 하고 예상치 못한 변화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게 게임만의 특징일까? 축구나 농구를 생각해보자. 공을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면서 상대방의 골대에 공을 넣으면 즉시 점수가 올라간다. 즉, 상대 경기자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인풋-아웃풋이 빠르게 이어지는 구조다. 예상치 못한 변화도 끊임없이 제공한다. 상대방이 공을 어디로 운반할지, 누구에게 패스할 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상대방의 모든 패스루트를 예측할 수 있다면 미리 상대방의 패스루트에 다가가서 공을 빼앗으면 될테고 그 정도 수준의 경기자라면 모든 경기에서 필승할 수 있을 것이다. 축구의 신이라 불리우는 메시나 호날두, 농구의 신이라 불리우는 조던도 할 수 없는 경지다. 앞서 대중화된 문화는 스포츠지 게임이 아니다. 단기적 상호작용을 극대화한 종목 역시도 게임보다 스포츠가 먼저다. 엄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게임화된 세대라는 말은 쓰면서 스포츠화된 세대란 말은 하지 않는다. 너무나 의도가 보이지 않는가?
두 번째로는 즉각적인 보상 추구라는 특징이다. 두 가지 내러티브의 초창기에 예시로 들었던 <울티마 4>를 보자. 이 게임은 즉각적인 보상만을 목표로 게임하면 엔딩을 볼 수가 없도록 설계돼있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8개의 미덕이 있고, 8개 미덕에 해당하는 아바타후드가 있다. 아바타후드를 끝까지 올리고 8개의 아바타후드를 완성해야 게임의 마지막 장소인 어비스의 던전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8개의 미덕 중 연민(compassion)에 해당하는 아바타후드를 올리려면 게임 속 마을에 있는 거지에게 플레이어가 갖고 있는 돈을 적선해야 올릴 수 있다. 최소한 수십시간 이상 걸리는 장기적 목표인 엔딩을 위해 단기적으로 금전적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로 게임이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다. 더해서 80~90년대 RPG나 어드벤처 게임들 중에서는 게임 내 플레이타임이 수십 시간에서 수백 시간에 달하는 게임들도 많다. 게임 내 아이템은 엔딩을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즉각적 보상 추구 같은건 생각할 여지조차 없다. 굳이 <울티마 4>나 80~90년대 게임들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반박할 수 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2017)만 해도 즉각적인 보상이 별 의미가 없다. 물론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괴물을 사냥한 후에 보상으로 아이템이 주어지는 등 단기적 보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디까지나 명목상으로만 주어질 뿐 게임 내적으로 큰 의미를 갖진 않는다. 좋은 아이템을 먹은 뒤에도 레벨이 1만 올라가면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의 스펙이 확연히 올라가서 기존에 얻은 좋은 아이템이 쓸모없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서 아이템은 어디까지나 엔딩을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남궁민 기자의 글은 논리가 빈약하며 허술하기 그지 없다. 게임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반박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남궁민 기자가 이러한 오류를 저지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게임에서 상호작용의 측면만을 언급하고 상호작용에 의미를 부여하는 규칙의 측면을 간과한 것이다. 서론에서 언급했다시피 게임은 상호작용의 매체다. 플레이어가 키보드나 패드를 잡고 입력을 할 때마다, 행동을 할 때마다 즉각적인 어떤 피드백이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피드백이 의미를 갖는 건 어디까지나 게임 속에 내재돼있는 규칙에 의해서다. 현찰로 한때 수천만원을 호가했다는 리니지의 ‘진명황의 집행검’이 그러한 가치를 가졌던 건 게임의 규칙상 그 아이템에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템이 그저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든지, 아이템을 갖자마자 플레이어에게 귀속되는 규칙을 채택했다면 진명황의 집행검이 그만한 가치를 지녔을 리 없다.
그럼에도 필자는 남궁민 기자의 글에 어느 정도는 귀담아들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최근에 유행하는 메인스트림의 게임들,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같은 PVP 게임에서부터 모바일 가챠 게임에 이르기까지 해당 게임들이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보상 추구를 극대화하는 방식의 규칙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화에 따르면,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내세우기 위해 그런 특징을 갖고 있지 않은 작품을 인용하거나 외국에서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게임만 가지고 게임이 가치를 지닌 매체이며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보상 추구만을 극대화한 매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대중에게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남궁민 기자의 글을 제대로 반박하려면 스포츠라는 다른 매체를 끌어들이거나 반례에 해당하는 게임의 사례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게임이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보상 추구라는 규칙을 차용한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 필자는 그 이유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2006년, 도브슨은 캐주얼 게임에 대해 하나의 논문을 발표했다. 캐주얼 게임 이용자의 나이와 성별에 대한 연구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캐주얼 게임 플레이어의 여성 비율이 무려 71%에 달했던 것이다. 이 중 다수는 35세 이상이었다. 부록 A에 실린 캐주얼 플레이어의 연구는 더욱 편중된 결과물을 보여줬다. 응답자 중 93%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가 가지고 온 파장은 컸다. 기존 비디오 게임은 16~35세 사이의 젊은 남성층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연구가 나온 이후로 젊은 남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게임이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 이상 게임은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포착한 몇몇 게임사들은 남성만을 위한 게임에서 조금씩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후 게임은 꾸준히 대중화가 되었다. 앞서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통계는 일반 시민들 중 무려 70%가 게임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전체 인원 10명 중 7명이 게임을 한다는 의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게임이 대중적인 문화매체로서 자리 잡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게임의 대중화는 게임계에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측면을 가져다줬다. 과거의 게임들이 가지고 있던 소재는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다. 판타지, 아포칼립스, 좀비 등등 게임에 관심 없는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소재들이 많았다. 성 상품화도 심했다. 하지만 게임이 대중화됨에 따라 다양한 소재의 게임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성 상품화가 심한 게임도 많으나 그렇지 않은 게임이 점점 늘어났다. 적은 시간을 투자하거나 금방 게임을 중단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빠른 이동과 같은 플레이어의 편의성을 도와주는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게임의 편의성은 더욱 좋아졌다.
게임의 규칙과 형식 또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수십, 수백시간을 들여 엔딩을 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단순한 심부름과 같은 퀘스트를 수행하면 게임 내 아이템을 얻는다든지, 영화같은 컷신을 보거나 내용물을 모르는 랜덤 박스를 까서 일반적인 플레이로는 얻기 힘든 매우 좋은 아이템을 보상으로 얻는 등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형식으로 게임 규칙과 형식이 변화한 것이다. 모바일/온라인 게임만 이런 것이 아니다. 소위 AAA 게임이라 불리우는 대자본 게임 역시도 겉모습만 화려해졌을 뿐, 게임의 규칙이나 메커니즘의 측면에서는 과거 80~90년대에 나온 게임에 비해 단순해지고 쉬워진 경향이 있다. 더 이상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제공하는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어렵거나 복잡한 게임들이 더이상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크 소울>(다크 소울조차 3편에 와서는 전작에 비해 필드 전투가 많이 쉬워지고 단순해진 편이다)과 같은 이례적 사례가 아니라면 이제 게임계에서 복잡하거나 실험적인 게임 디자인을 갖춘 게임들은 대다수가 인디의 영역에 있다. <시프>, <바이오쇼크>의 켄 레빈, <웨이스트랜드>, <폴아웃> 프랜차이즈의 창시자 브라이언 파고 등 여러 유명 게임 개발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실이며,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개발자들이 오직 자신들만을 위해서(나는 이런 요소가 좋아. 이걸 넣어야지) 게임을 만들었다면, 캐주얼 게임 개발자는 다른 모두를 위해 게임을 만들게 됐다(나는 이런 요소를 좋아하지만, 아빠나 여동생, 회사 안내양에게도 이게 먹힐지 확실히 알아봐야 겠어).”는 게임학자 제스퍼 주울의 발언은 현대 게임 산업의 변화를 상징한다. 아래는 <플레인 스케이프:토먼트>의 게임 프로듀서 구이도 헨켈의 인터뷰를 일부 인용한 것이다.
"우리는 플레이어가 더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게임을 만들고 있다. 이젠 상상력도 필요없을뿐 아니라, 고전 롤플레잉 게임을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만들어주던 흥미로운 여러 디테일들을 플레이어에게서 빼앗아 가버렸다."
"실질적으로 AAA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은 매우 간단한 공식으로 쪼그라들게 되었다. 달리고, 싸우고, NPC와 대화한 후, 선형적인 퀘스트 라인을 따라간다. 대부분의 경우 플레이어는 이 모든 경험에서 한 발 떨어져있다. 게임 내 삽입된 오토파일럿이 당신이 머리를 써 기량과 상상력을 펼치는 것을 필요없게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대화 지문을 그냥 생각없이 클릭해도 된다. 그 문제에 대해 한 줄의 대화조차 읽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 당신은 또한 절대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오토맵핑이 퀘스트의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알려줄테니까. 운이 좋다면 가끔 당신에게 다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이 허용된다. 퍼즐은 극도로 희귀하지만 혹시나 퍼즐이 있다해도 그것은 그 해답이 이미 제시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어떤 것들의 순서를 맞추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 어떤 것도 플레이어를 몇 초 이상 막히게 해서는 안 된다."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 게임 프로듀서 구이도 헨켈의 인터뷰 중 일부 발췌
오해를 피하기 위해 강조한다. 어렵거나 복잡한 게임이 주류가 아니라는 말이 대중들이 무식하거나 아둔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기를 바란다. 대중 역시도 충분히 어렵거나 복잡한 게임에 도전할 수 있다. 머리가 나쁘거나 손이 안 돼서 그런 하드코어 게임들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건 ‘시간과 에너지’라는 현실적인 장벽에 대해서다. 누구나 게임을 즐기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라면 학업의 장벽이 있고, 취준생이라면 취업 준비를 위해 여러 스펙을 쌓고 대외활동을 해야 할 것이며, 직장인이라면 일을 해야 한다. 가족이라도 딸려 있는 경우라면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가 유독 심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공개한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여가 시간은 4.2시간으로 평일 여기시간은 3.7시간이었으며 휴일 여가 시간은 5.6시간이었다. 이는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며, 노르웨이·핀란드·독일·이탈리아 등의 국가에 비하면 크게 낮았다. 이들 국가의 여가 시간비율은 22%를 넘었다(한국 17.9%). 3040의 여가 시간은 평균보다 더 적었다. 30대의 평일 여가 시간은 3.1시간이었으며, 40대의 평일 여가 시간은 3.2시간이었다. 게임을 플레이할 시간이 없는 대중들을 위해 게임은 최대한 시간과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게임을 기획하게 됐다. 전세계적으로 모바일 가챠 게임들이 주류가 되어가는 추세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이 유독 그러한 경향이 크다. 필자는 여가 시간의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바일 가챠 게임은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대표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어렵거나 복잡한 게임의 경우 정말 게임을 잘하는 극소수가 아니라면 무수한 실패(Game over)화면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복잡한 게임의 규칙을 숙지해야 하고 자신의 게임 플레이를 복기해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예시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기는 플레이어가 불타는 성전의 검은 사원 '끝판왕' 일리단에 도전한다고 생각해보자. 우선 일리단을 잡기 전의 검은 사원 공략과 선행 퀘스트는 생략한다. 일리단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총 4단계의 서로 다른 규칙과 패턴을 숙지하여야 한다. 공략조차 논문 수준이기 때문에 공략을 참고하더라도 매우 어렵고 복잡한 괴물이다. 공략을 보지 않고 일리단을 공략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최상위 공격대원 말고는 없다. 이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레이드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게임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을 갖춘 사람뿐이다. 즉, 하드코어 게임들은 해당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직장 다니다가 잠깐 짬을 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무려 공부까지 해가며 게임을 클리어할만한 여유는 없다. 이런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게임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려면 최대한 시간과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게임을 기획해야 한다.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보상 추구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다. 한 판당 호흡이 짧은 PVP 게임,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는 온라인/모바일 게임이 현대 게임의 트렌드가 된 원인이기도 하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RPG의 문제해결 요소 약화, 온라인/모바일 게임에서 게임 아이템의 목적화 현상 등은, 게임이 최대한 시간과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단기적이며 즉각적인 보상 추구를 극대화하는 형식으로 변화한 게임의 규칙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게임 중에서도 즉각적인 보상 추구를 가장 극대화한 게임 분야가 현대 모바일/온라인 게임이다. 모바일/온라인 게임의 플레이 과정 역시도 전통적인 고전 게임들과 다른 방향으로 변화했다. 우선 전통적인 게임의 난이도 곡선은 기본적으로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몰입) 이론을 따른다. 몰입은 자아에게 주어지는 도전과 이를 극복하려는 자아의 능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경우 발생하는 신체적 현상을 개념화한 것이다. 도전의 난이도가 너무 낮을 경우 자아는 몰입 상태에서 벗어나 지루해지며, 반대로 과하게 어려운 난이도에서는 불안감에 빠진다. 도전과 능력의 균형점이 곧 ‘몰입의 통로’가 되며,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칙센트미하이는 주장한다. 위 그림을 보자. A1에서 시작한 플레이는 플레이어의 기술 및 숙련도가 상승하면서 A2로 이동하며 지루해지고 쉬워진다.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전의 난이도가 올라가면 A3으로 이동하며 어렵고 불안한 단계로 변한다. 플레이어가 A4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각각 플레이어의 숙련도 재상승 혹은 난이도 조정이 필요하다. 플레이어가 A4로 이동하면 처음부터 이 과정을 반복한다. A1에서 A4로 이어지는 몰입의 통로를 타는 과정이다.
하지만 현대의 모바일/온라인 게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변화한다. 현대 모바일/온라인 게임의 트렌드를 살펴보면 키보드/마우스/패드 등 콘트롤러의 다양한 버튼을 활용하여 이루어지는 복잡한 콘트롤이나 전략적 사고, 퍼즐을 풀어내는 논리/추론력, 복잡한 미로를 지각하는 공간 지각 능력 같은 머리쓰는 요소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닥치고 사냥'이라고 불리우는 게임 속 괴물 사냥에 집중할 뿐이며, 그 괴물들은 허수아비 이상의 의미가 없다.각1) 자동사냥이 나온 이유도 게임 플레이 속 전투가 더이상 '난관'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레벨이 높고 아이템이 좋으면 괴물들이 픽픽 쓰러져나가는 데 전투에 시간과 에너지를 쓸 이유가 하등 없다는 것이다. 모바일/온라인 게임 플레이어에게 괴물을 잡는 건 레벨업과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지 사냥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게임 역시도 플레이어의 수요를 반영하여 모바일/온라인 게임 플레이어들은 오랜 시간 플레이를 하고 게임의 패턴을 학습하면서 쌓여야할 숙련도 대신 플레이 시간과 비례하는 레벨과 아이템, 고등급의 스킬 등을 얻는다. 게임평론가 이경혁은 이러한 게임계의 변화(특히 현대의 모바일/온라인 게임)를 두고 전통적인 게임 플레이 방식의 붕괴로 인한 숙련도의 이관으로 보았다. 이제 플레이어의 몸과 머리가 아닌, 서버에 '스킬 레벨 1->2'라는 식으로 데이터가 쌓이는 방식으로 숙련도의 개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적어도 온라인/모바일 게임에서 만큼은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던 플레이의 주도권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플레이어는 게임의 주인공으로서 활약할 수 없게 되었다.각2) 이런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줄 수 있는 재미는 사냥을 마치거나 랜덤박스를 까서 아이템을 얻는 재미, 즉 단기적/즉각적인 보상 추구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어졌다.
필자는 5살때 처음 가본 오락실의 풍경을 기억한다. 음습하고 어두운 환경 속에 담배연기가 자욱했던, 전형적인 그 시대의 오락실이었다. 실제로 당시 오락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대단히 좋지 않았다. 본인만 해도 어머니 몰래 오락실에서 용돈을 쓰고 온 걸 들켜서 두들겨 맞은 기억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만큼 게임에 돈과 시간을 쏟는 건 무의미한 일로 여겨졌다. 언론에서는 전자오락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영향력에 집중하여 기사를 냈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혐오는 참 거짓을 떠나 분명 부풀려진 점이 없지 않았다.
98년에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했고, 프로게이머와 E-스포츠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오락실이 점점 PC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조금씩 게임 산업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을 포함하여 프로게이머들이 각종 세계 대회를 휩쓸더라도 그건 그들의 일이었다. 일반 게이머들에 대한 인식은 그저 PC방에서 컵라면 먹으면서 시간을 죽이는 게임 폐인에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기성세대에게 게임은 사회악이었을 뿐, 무언가 생산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적었다.
00년~1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게임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5년 1월 29일,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MMORPG로 꼽히는 World Of Warcraft(이하 WOW)에서 오닉시아라고 불리우는 레이드 몬스터를 The Chosen이라는 공격대가 전 세계 최초로 잡아낸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인터넷 단신 기사로라도 조명해준 기성 언론은 적어도 필자가 알기로는 없었다(게임 관련 언론은 제외한다). 무려 40인의 사람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노력해온 도전의 과정을 기록해준 기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천만명이 넘는 사람이 동시에 게임에 접속하고, 전 세계에 플레이한 사람의 숫자가 1억 명을 넘어가는 메가톤급 게임에서 이루어낸 성과라지만 게임을 하는 사람을 빼놓고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임 인식이 딱 그 정도였다.
6년 후에는 더욱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유명한 MBC 전원 내리기 사건이다. 2011년 2월 13일, MBC 뉴스데스크의 유충환 기자가 '게임중독자들의 폭력성 실험'을 위해 PC방에서 전원을 내린 후에 PC방 이용자들의 반응을 보고 그대로 보도한 사건이다. 게임에 과몰입한 청소년들의 폭력성을 실험하겠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애초에 당사자들과 합의를 본 사안도 아니었다. 게임 뿐만 아니라 어떤 사안에 집중하고 있을 때 외부 요인으로 인해 강제로 집중력이 끊겨버리면 반응이 좋을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가령 기자가 신문 1면 전체를 뒤덮을만큼 기나긴 기획 기사를 쓰고 있는 와중에 전원이 나가버려서 지금까지 자신이 썼던 모든 자료가 날아가버린다면 과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든 음악이든 고도로 몰입하고 있을 때 방해를 받으면 누구나 화를 낸다.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황당한 기사가 데스크를 통과하고 방송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유충환 기자 본인 뿐만 아니라 MBC라는 조직 내부에서조차 게임에 대한 폄하와 편견이 깊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의 WHO 사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WHO는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새로운 질병코드로 등재하는 내용을 포함한 제11차 국제질병분류 기준안(ICD011)을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전 세계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서 공식적으로 천명한 셈이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또한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화에 관한 단계적 추진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게임 이용 장애를 중독 장애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하기에는 그만한 과학적 근거와 심도 있는 연구가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뿐만 아니라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연구나 TV토론, 기사 등은 셀 수 없을만큼 많다. 본격적으로 게임이 대중문화로서 재평가를 받기 시작한 시점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사태 이후부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라는 펜데믹 사태가 터지고 나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했고, 언론에서 게임의 긍정적인 측면을 조명한 기사가 쏟아져 나온 것도 코로나 사태 이후부터이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한 법률과 판례 역시 게임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우선 게임법은 일반적으로 적극적으로 키워줄만한 진흥법보다는 해로움을 규제하는 규제법의 역사를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에는 오락실 등의 유기장 속 아케이드형 기기에 대한 법률이 생겼는데, 장소에 대해서는 ‘유기장법’, 행위에 대해서는 ‘사행행위특례법’ 및 ‘형법’상 도박죄 등으로 규제하는 방식이 이어져 왔다. 이러한 규제는 오락실의 시대를 넘어 PC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게임물 자체에 대한 규제로 확대되었다. 헌법재판소의 강제적 셧다운제 합헌이 대표적 예시다. 2011년 강제적 셧다운제에 대해 문화연대와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위헌 소송을 내기도 했으나 위헌이 아니라고 선고한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있다. 반면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은 2007년 1월부터 시행되었으나 그 중요도가 크지는 않았다. 그나마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나, 여전히 규제법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위의 사례들을 종합해본다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온다. 주류 언론을 비롯한 기성 세대는 게임에서 이루어낸 성과는(개발자가 이루어낸 성과와 플레이어가 이루어낸 성과의 측면 모두에서) 거의 조명하지 않았다. 반면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사례들은 허위나 왜곡이 들어갈 정도로 과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게임에 부정적인 면이 있는 건 사실이나 영화나 음악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에 비해 과장이 심했던 것이다. 기성 매체나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이러한 특징을 지닌다. 가령 청주 CGV에서 영화를 보다가 정전이 걸려서 전원이 내려간 사례가 있었는데 이때 관객들이 보인 반응은 MBC의 PC방 사건과 거의 동일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게임의 폭력성이 입증되었다던 MBC의 PC방 사건 보도와 달리 영화의 폭력성이 입증되었다든지, 관객들의 폭력성을 비판한 언론은 단 하나도 없었다.
부모가 육아를 할 때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으로 비판을 든다. 부모의 비판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심각한 잘못이었다는 인지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고 부정적인 사고를 갖게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감정이나 행동에 되도록 공감해주는 방식으로 교육을 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이는 대부분의 육아 관련 책이나 방송 등에 소개되어있는 보편적인 내용이다. 이 육아의 논리는 비단 육아 과정에서만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야기다. 어떤 행동을 인정받을수록 자존감은 올라가고, 인정받지 못할수록 자존감은 내려가기 쉽다. 자신의 해왔던 행동이 부정당하면 당할수록 잘못된 것이라는 인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임이라는 매체 역시 이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게임이라는 취미는 존중받을만한 취미가 아니었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게임에 대한 탄압의 역사는 7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쭉 이어졌다. 게이머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게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욕을 먹었고 폭행을 당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취미를 숨겼다. 기업 자기소개서에 게임이 들어갈 일은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게임을 하는 그 자체를 부끄러워해야만 했다. 본인들은 정말로 게임을 좋아했을지언정 사회는 그걸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1년 현재는 많이 나아진 편이라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게임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얼마나 하느냐 마느냐를 떠나 수십 년 동안 누구나 이러한 탄압의 역사를 겪었다. 덕분에 플레이어들의 뇌리에는 게임에 대한 트라우마가 쌓였다. 게임을 폄하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게임에 대한 폄하가 깔려있는 게 플레이어들이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사회에 의해 억압당하고 학습되어 왔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의 내면에는 자기도 모르게 게임이란 진지하게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는 매체이며, 게임을 하는 우리들은 가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패배의식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나이 먹었으면 게임 좀 그만하고 현생을 사세요” 이런 글이 ‘게임 커뮤니티’에서 종종 보이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쭉 게임을 해온 플레이어 본인들이 적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평생 게임을 좋아하고 플레이했음에도 스스로의 취미를 부정한다. 게임은 사회악이라는 사회의 시선에 의해 학습되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임 탄압의 역사 속에서 학습된 플레이어들에게 게임이란 진지해져서는 안 되는 매체다. 플레이어 본인들이 이러한 패배의식에 각인되어 있다 보니 게임 역시도 진지한 무언가를 추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게임을 하는 본인들조차 게임을 하는 행위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회의 실패자, 내지는 패배자들의 취미일 뿐이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나이 먹고 게임을 하는 사람, 게임에 돈을 쓰는 사람은 어딘가 문제 있는 사람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플레이어들의 패배주의를 증명하는 사례다. 때문에 과거의 복잡하고 어려웠던, 생각을 요구하는 게임들은 나오기 힘든 구조다. 그런 게임들은 게임이라는 ‘가벼운’ 매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고전 게임 특유의 퍼즐이나 추리 요소라든지, 수 없는 플레이어의 실패를 유도하는 강력한 적들이라든지, <스탠리 패러블> 같은 메타게임이라든지 등 나름대로 진지한 시도들을 할 때마다 그냥 재밌게 노는 게임 따위에 그런 시도를 왜 하냐는 핀잔이 잇따르는 데엔 이유가 있다.
게임의 대중화로 인해 현대 게임들은 게임에 과도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도록 게임의 디자인을 쉽고 단순하게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보상 추구 역시도 그러한 디자인 경향의 일환이다. 위에 인용한 웹툰의 대사처럼 30분 안에 재미를 주지 않으면 그 게임은 '망겜'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게임뿐만이 아니다. 경쟁을 내면화한 사회의 구조 속에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항상 ‘사이다’를 찾고 숏텀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식의 대중문화를 선호하게 되었다. 이는 웹툰, 소설, 영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현상이며 게임 역시 이러한 경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마지막으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게임 탄압의 역사는 플레이어 내부에 패배주의를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오히려 플레이어 스스로가 진지한 게임들을 탄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위의 두 가지로 이유로 인해 게임은 점점 더 스트레스와 시간적 소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다수의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현대의 게임들, 특히 모바일/온라인 게임들을 '진정한 게임이 아니다'라고 비판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해당 게임들 역시도 상호작용/규칙/목표/경쟁 등의 요소를 게임 내에 일부나마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모바일/온라인 게임 역시도 게임의 정의에는 부합한다. 단순화된 게임의 극한일 뿐이다.
멀리 돌아와서 결국, 매체다.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게임이라는 매체를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론에서 어느 정도 게임의 매체성에 대해서 설명은 했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볼 필요가 있다. 다음 편에서는 게임의 매체성에 대해 묻는 게임에서 시작하여, 게임이라는 매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물론 필자의 글은 게임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자 해석에 불과할 뿐, 필자의 의견이 정답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독자들이 게임이라는 매체를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이자 참고자료에 불과할 뿐이다.
2부에서 계속
(참고문헌은 하나의 챕터가 끝난 후 한꺼번에 첨부합니다)
각1) 여전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로스트 아크의 레이드와 같이 예외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트렌드는 분명 이렇다.
각2) 자유와 통제를 위해 고안된 게임 디자인의 변천사(1)을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