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름없는 자 Oct 15. 2021

게임 속 평등과 내러티브 사이의 충돌, 그리고 대안

https://brunch.co.kr/@netee12/43


https://brunch.co.kr/@netee12/44


/////////////


평등과 게임 내러티브의 충돌


이전 편에서 PVP 게임 속 평등주의적 가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이 끝났다. 하지만 PVP 게임의 평등주의적 가치 추구는 게임 외적으로는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게임 내적으로는 그다지 좋게 평가해주기 어렵다. 지금까지 PVP 게임의 평등주의적 가치에 대해 설명한 것은 게임 속 평등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게임 내적인 변화를 플레이어들 역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게임이 능력주의를 강화한다거나, 플레이어들이 순수한 능력주의 집단이라는 주장에 반론의 근거를 제시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번에는 오히려 평등주의적 가치가 게임 내러티브에 끼치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평등주의적 가치는 게임 내러티브와 일부 충돌을 빚는 부분이 있다. 평등주의적 규칙의 차용이 게임 내러티브에 악영향이 미치는 이유를 알기 전에 우선 규칙과 내러티브와의 연관성을 설명해야 한다. 본 책의 제목은 '두 가지 내러티브'이기 때문이다. 규칙이 공평하든 말든, 가치가 있든 없든 간에 내러티브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의문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굳이 논증하지 않아도 규칙이 내러티브의 영역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언뜻 보기에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서론에서 규칙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행동을 제약함으로써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지적했다. ‘행동 유도성(affordances)’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 행동 유도성이야 말로 규칙과 내러티브가 연관성이 있다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한때 ‘괴물 테란’이라 불렸던 전 프로게이머이자 E-스포츠 프로게임단의 감독이었던 최연성의 FOMOS 인터뷰를 인용해 보겠다.


“스타 1이랑 비교해 보자. 버그 패치만 했을 뿐 10년간 거의 변동이 없는 게임이었다. 예전에 스타리그를 열면 프로토스가 한두 명 밖에 없을 때가 있었다. 테란은 반 이상이었다. 만약 그때 DK(데이비드 킴, 블리자드 본사 소속 밸런스 디자이너)가 있었으면 프로토스를 버프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더라면 단언컨대 김택용 시대의 감동과 재미는 없었겠지. 아니, 그전에 백만 프로토스 팬들의 힘이라든지 뭐 이런 얘기들도 안 나왔을 것이다. 프로토스가 소수 종족이었고 어려웠기 때문에 팬들은 똘똘 뭉쳤고 박정석, 강민 등 영웅이 탄생한 것 아닌가. 심하게 말해서 지금 스타 2 우승자는 DK가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게이머가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말이다. 중요한 건 내가 이런 말을 하든 말든 블리자드에서는 계속 그 작업을 할 거란 얘기다. DK가 바라는 건 테란과 프로토스, 저그의 5:5:5 밸런스인가? 정말 모르겠다.”

“스타 1은 게임 안에서 체제 전환이 힘든 편이었는데 스타 2는 마음만 먹으면 확확 바꿀 수 있어서 길이 많다. 그래서 빌드를 만들기는 더 쉬운데 이걸 막는 것도 역시 밸런스 패치다. 예를 들어 땅거미 지뢰에 힘을 싣는 빌드를 만들었는데 지뢰의 특성 자체가 바뀌어버린다. 벤시를 이용한 빌드와 전략을 짰는데 그 유닛 자체를 너프 시켜 버리면 게임이 바뀌어 버린다.

스타 1을 보면 빌드에도 연혁이 있다. 발전 과정이 있는 거다. 프로토스가 저그랑 할 때의 빌드만 봐도 2 게이트에서 1 게이트, 결국은 포지 더블 넥서스까지 발전했다. 프로토스가 초반에 저글링을 막기 위한 엄청난 노력으로 포지 더블 넥서스를 최적화시켰고, 결국 거기서 김택용의 비수류가 나왔다. 그런 것 없이 게임을 하면서 어렵다고 자꾸 밸런스 패치를 해버리면 이 게임은 끝나지 않는 베타테스트가 되는 거다. 요환이형도 이것 때문에 DK한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굉장히 회의적으로 얘기하는 걸로 봐서 피드백은 없었던 것 같다.”

- 최연성의 FOMOS 인터뷰에서 발췌


당시에 자주 이루어지던 <스타크래프트 2>의 밸런스 패치에 대한 최연성의 의견이다. 최연성이 게임 디자인 이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수십 년간의 게임 플레이 경험에 의해 체득한 통찰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발언은 규칙이 어떻게 내러티브와 연관이 되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스타크래프트>는 3 종족 간에 밸런스가 상당히 좋다고 여겨지는 게임이지만, 실제로는 미세하게 종족 간 밸런스가 어긋나 있고 프로토스가 상대적 약체로 취급받는 게임이다. 하지만 프로토스가 약체였기 때문에 프로토스 플레이어들은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 연구의 결정판이 바로 한때 저그로 최고의 승률을 달리던 프로게이머이자 ‘본좌’ 취급을 받던 마재윤을 3:0으로 이기고 대회에서 우승한 김택용의 3.3 혁명이다.각1)


종족 간 밸런스는 정해진 규칙의 영역이다. 가령 해처리를 짓는데 걸리는 시간은 120 초고, 저글링의 공격력은 5에 체력이 35라는 건 게임 내에 정해진 규칙이며 종족 간 밸런스를 조정한다는 건 이 규칙을 미세하게 조정함으로써 특정 종족을 더 강력하게 만들거나 내지는 약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규칙을 변경하여 저글링의 체력과 공격력을 100으로 설정한다면 테란과 프로토스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며 게임의 밸런스는 그대로 붕괴할 것이다. 이처럼 개발사가 게임 내에 정해진 규칙을 변경하여 게임의 밸런스를 조정하면, 플레이어는 규칙을 활용하여 게임에서 승리할 전략을 짜낸다. 다시 말해서 게임 내에서 정해진 규칙은 특정한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 속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 할지 연구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연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플레이를 통해 게임 속에서 드러나는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가 만들어 나가는 내러티브가 완성된다. 즉, 규칙이 내러티브의 영역에 직접적으로 속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러티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내러티브의 영역에 관여하게 된다. 내러티브를 다루는 책에서조차 규칙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실패를 극복하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감동을 준다.


규칙과 내러티브와의 연관성에 대해 이해했다면 이제 규칙에 평등주의적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가 게임 내러티브와 충돌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할 차례다. 잠깐 게임에서 떠나 현실 사례를 들어보자. 현실에서 자기계발서가 매번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실패를 극복한 개인의 사례가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만큼 실패를 극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수없는 도전 끝에 끝내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의 스토리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귀감이 된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는 대다수가 철저한 능력주의에 입각한 글이며 해당 글 자체는 비판받을 여지가 존재하지만, 그 성공 스토리가 주는 감동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면서도 행복한 사회가 좋은 사회일지는 몰라도, 개천에서 용이 나타나는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능력주의자나 평등주의자 모두를 통틀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과정의 서사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드라마적인 요소 같은건 없다. 그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을 뿐이고 플레이어는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신의 게임 플레이 실력에 따라 승패가 갈릴 뿐이다. 이런 단순한 서사에도 플레이어에게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는 플레이어 본인만의 '능력'으로 직접 불리함을 극복하고 대처법을 찾아내어 패배를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난관 내지는 자신보다 더욱 강한 상대방을 수많은 도전과 실패 끝에 극복해냈을 때 만들어지는 내러티브, 플레이어 스스로가 개천의 용이 되어가는 과정이야 말로 게임에서 나타나는 최상의 내러티브다.


밸런스 패치와 시즌제, 운의 요소 같은 평등주의적 요소가 더해질수록, 게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내러티브를 구현해내기는 어렵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불리함'을 플레이어 스스로가 극복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각2) 밸런스 패치와 시즌제에 대해서 최연성의 발언을 일부만 다시 인용해보자면, 프로토스가 소수 종족이었고 어려웠기 때문에 프로토스 플레이어들은 똘똘 뭉쳐 숙련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포지 더블 넥서스라는 빌드가 생겨났고 거기서 김택용의 비수류가 나타나면서 3.3혁명이라는 게임 역사상 최상의 내러티브가 출현한 것이다. 하지만 밸런스 패치와 시즌제를 자주 단행하게 되면 플레이어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략을 짜낼 이유가 없어진다. 어차피 밸런스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개발사가 상향 패치를 해주면 굳이 플레이어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과 빌드를 고민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실패를 극복하는 내러티브의 영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PVP 게임에서 선보일 수 있는 최상의 내러티브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숙련도를 극한으로 닦아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빌드 등 돌파구를 플레이어가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숙련도를 극한으로 갈고 닦을만한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숙련도를 쌓는 도중에 밸런스 패치 내지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밸패와 시즌제 이후 변화한 규칙에 누가 더 빠르게 적응하냐의 싸움이 될 뿐이다. 최연성이 언급한 ‘스타 2 우승자는 DK가 만들어 나간다’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밸런스 패치와 시즌제는 게임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다지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PVP 게임 내의 평등주의적 요소가 게임 내러티브와 충돌하는 것이다.


운빨 카드의 최고봉(?) 희망의 끝 요그사론


운의 요소는 더욱 심하다. 운의 요소가 커질수록 실력으로 불리함을 극복한다는 게임 내러티브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스스톤>의 전설카드인 <희망의 끝 요그사론>이다. 이 카드의 능력은 카드를 낼 시에 이번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주문을 시전한 만큼 무작위 주문을 시전하는 능력을 갖는다. 대상은 무작위로 선택되며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이 카드를 내면서 플레이어 본인이 자멸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역전이 불가능한 상황도 종종 역전이 가능한 상황이 나오곤 한다. 물론 운으로 승리한다는 것 자체도 희극과 비극이 갈리기도 하고, 갈등의 요소가 존재하기에 해석에 따라 새로운 게임 내러티브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적어도 게임 내에 존재하는 불리함을 플레이어 스스로 극복해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각3)


충돌을 극복할 대안은 없는가


밸런스 패치와 시즌제, 운의 요소 도입 등 게임의 평등주의적 요소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패를 극복해나간다는 게임 내러티브 측면에서는 한계가 명확한 방식이다. 사실 둘은 어느 정도 상극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한 쪽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다.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게임을 두 가지 버전으로 나누는 방법 중 하나. 물론 세부 내용은 어떤 게임이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조심스럽지만 필자는 E-스포츠 경기용 버전각4)과 일반 플레이어 버전, 두 가지로 게임의 버전을 나누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제시해보고 싶다. 가령 E-스포츠 경기용 버전에서는 되도록 밸런스 패치를 하지 않는다. 챔피언도 되도록 추가하지 않되 추가하려면 내외부적으로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거치고 나서 조심스럽게 추가한다. 게임 내부의 경기적 양상에 ‘인위적으로’ 변화를 주지 않고 플레이어 스스로 대처법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다. 반대로 일반 플레이어 버전에서는 상대적으로 밸런스 패치나 시즌제 등 기존 형식대로 게임을 운영하는 식이다. 경기용 버전이라 해서 일반 플레이어가 플레이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두는게 아니라, 플레이어 스스로가 원하는 버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되겠다. 게임의 변화가 너무 없어서 전체적인 게임의 흐름 자체가 고정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면, 게임 속 전장의 밸런스나 기믹을 조정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식으로 게임의 양상을 변화시키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도구를 건들지 않는 선에서 게임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렇게 나누는 방식은 하나의 참고 사항일뿐이다. 어떤 방법이 더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플레이어 간의 토론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각1) 마재윤과 김택용 모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라 실명을 언급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가장 적합한 사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례로 썼다. 두 인물을 두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각2) 물론 예외도 있다. 전 편에서 사례로 든 요괴 쿠사레게도 vs 마지키나 미나 매치업 같은 극단적인 상성인 경우 사실상 쿠사레게도에게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게임의 유불리를 떠나 기회의 평등 자체가 어긋났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 내러티브를 유지하기 위해 게임 내에서 용인할 수 있는 불리함, 밸런스의 어긋남을 어디까지 허용해줘야 하는지는 플레이어끼리도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으며, 딱히 정답이 있는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각3) 물론 요그사론을 사용할 수 있는 10코까지 버티는 능력이나, 요그사론이 최대한 많이 주문을 사용할 수 있도록 덱을 구성하는 능력같은 건 실력의 영역일 수 있다. 하스스톤이 운의 요소가 지대한 게임이긴 하지만, 실력이 필요 없는 게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각4) E-스포츠 경기용 버전에서 규칙의 변동을 줄이고 나면 게임 외적인 운영 상의 규칙 외에 게임 내의 규칙 역시도 '제도화'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체육철학회의 스포츠 개념 정의에서 필수로 들어가는 요소 중 하나가 제도화된 규칙의 영역이 존재하느냐인만큼, E-스포츠를 스포츠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추가적인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송호근, 2006,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삼성경제연구소.

이호선, 2018,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의』, 도서출판 리원.

이상호, 황옥철, 2019, 『e스포츠의 학문적 이해』, 주식회사 부크크.

딜루트, 2020, 『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그냥 게임이나 하고 싶었던 한 여자의 분투기』, 동녁.

박권일 외 9명, 2020, 『능력주의와 불평등 -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 교육공동체 벗.

스티븐 J. 맥나미,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김현정 역, 2015, 『능력주의는 허구다』, 사이.

송무석, 2018, 'MMORPG 게이머 문화의 차별과 능력주의 연구 - World of Warcraft의 레이드 콘텐츠와 게임 분석 플랫폼을 중심으로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https://brunch.co.kr/@sulsulbooks/14

https://brunch.co.kr/@myfriendjesus/109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64058

https://ninja-critics.blogspot.com/2021/06/id-chronicles-7-doom-eternal-game-of-era.html

http://deadly-dungeon.blogspot.com/2011/05/4-ultima-iv-quest-of-avatar.html

https://www.playxp.com/sc2/lotv/view.php?article_id=4708524&page=73&sub=sc2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335

https://www.notion.so/bf82fb5f8268416788939f812ba1878f

https://www.youtube.com/watch?v=R-BEmHwF8LM&t=80s

https://www.youtube.com/watch?v=Y1SrBGSEYaY








이전 12화 세대별 PVP 게임의 세 가지 평등주의적 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