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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Jan 02. 2021

학교폭력, 그 이후의 이야기

세 번째 책 <스타벅스에 간 소녀>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학교와 폭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학교폭력은 점점 어려지고 있고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으며, 복잡해지고 있죠. 학교폭력은 당사자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학교폭력이 해결되어가는 수많은 절차와 과정들은 지루하고 길고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절차와 과정을 모두 마치더라도 학교폭력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 <스타벅스에 간 소녀>의 주인공 오드리는 날씨와 시간에 상관없이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다닙니다. 오드리는 '꽤 사적인 일' 때문이라고 말하죠. 네, '꽤 사적인 일'이란 학교폭력을 말합니다. 오드리는 그 일로 학교까지 그만두게 되었죠. 오드리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스타벅스에 간 소녀>는 오드리가 당한 학교폭력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학교의 아이들에게 학교폭력은 가까우면서도 익숙한 일입니다. 예방 교육도 많이 하고 주변에서 보거나 듣기도 하죠. 자신의 친구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나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에게도 학교폭력 그 이후의 삶은 대단히 낯선 영역입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우리 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삶이기 때문이죠. 학교폭력 실태조사, 예방교육, 신고절차 등 전반적인 학교폭력 사안 처리에는 열심히지만 당사자들에 대한 공감적 차원에서의 교육에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참 고맙게도 <스타벅스에 간 소녀>는 오드리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후의 힘든 삶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드리는 선글라스를 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합니다. '눈'은 소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오드리는 자신을 향한 눈에서 수많은 걱정과 안쓰러움, 분노, 두려움 등을 발견합니다. 오드리는 그런 눈을 보며,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때의 기억을 다시 한번 떠올립니다. 학교폭력은 절차적으로 모두 끝났겠지만 오드리는 학교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드리가 선글라스를 벗고 눈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눈은 자신의 일을 알지 못하는 어린 동생, 필릭스의 순수한 눈뿐입니다.


트라우마는 학교폭력 당사자들이 겪는 일상적인 증상입니다. 악몽과 정신과 치료, 자살기도까지 트라우마는 깊은 상처입니다. 최근 몇몇 연예인들을 상대로 이른바 학폭 미투가 제기되는 것 역시 학교폭력이 남기고 간 트라우마의 영향일 것입니다. 이 긴 트라우마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학교폭력 당사자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중요한 교육적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이 만들 수 있는 참담한 결과들을 통해 분명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주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해해주고 지지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필요하죠. 하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만 있지는 않습니다. 오드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드리의 눈치만 보고 있는 엄마, 들리는 소문에 휘둘리는 단짝 친구 나탈리, 사과는 않고 가해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떠들어대는 이지 가족까지 주변의 인물들은 오드리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오드리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드리의 기분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라이너스 오빠, 이지 가족에게 '사이다' 같은 말을 대신 쏟아내주는 프랭크 오빠, 천천히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의사 선생님까지. 오드리는 그런 사람들 곁에서 의지하고 일어서며 조금씩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어가는 중입니다.



"많이 생각해 봤어요. 엄마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들쭉날쭉한 그래프 얘기요. 우린 저마다 들쭉날쭉한 그래프를 그리며 살아요. 오빠도, 엄마도, 심지어 필릭스도요. 내가 한 가지 깨달은 건 인생은 그렇게 올라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거란 사실이에요. 그리고 지금 미끄러졌다고 해도 괜찮아요. 계속 나아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 그거면 돼요. 계속 올라가는 거." (296쪽)


<스타벅스에 간 소녀>를 읽는 아이들은 대부분 오드리가 당한 학교폭력이 무엇인지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어떤 학교폭력을 당했는지 언급되지 않습니다. 어떤 학교폭력인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오드리가 당한 학교폭력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교폭력을 당한 이후, 오드리가 치유받고 공감받으며 나아간 이야기 오드리가 앞으로 나아갈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니까요.


결국 오드리는 책의 마지막까지 학교폭력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치유 과정에서 아픔을 겪기도 하죠.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오드리가 완전히 나아서 다시 학교에 돌아가는 장면이 결말이었다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일은 이렇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기다려야 합니다. <스타벅스에 간 소녀>는 학교폭력 그 이후의 이야기로 아이들의 학교폭력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다루는 책입니다. 학교폭력이 날로 심각해지는 지금 교실에 학교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주변 인물들이 해야 하는 역할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고 다짐할 수 있는 적절하면서도 새로운 처방이 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입니다.


더 많은 책 - https://www.instagram.com/childwith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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