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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Jan 30. 2022

진실에는 용기가 필요해

서른두 번째 책 <옥수수 뺑소니>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옥수수 뺑소니>는 이틀에 걸쳐 두 번의 교통사고를 연달아 당한 현성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사고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벌어졌습니다. 친구와 경쟁적으로 자전거를 타다가 그만 달려오는 트럭을 보지 못했고 트럭을 피하려던 현성이는 그대로 난간 아래로 구르고 맙니다. 옥수수 트럭 아저씨는 넘어진 현성이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현성이에게 연락처를 전해줍니다. 트럭에 부딪치지도 않은 현성이는 크게 다치지도 않았을뿐더러 당장은 그냥 창피하기만 합니다. 옥수수 트럭 아저씨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며, 다음날 현성이 집으로 전화까지 걸어온 아저씨가의 행동이 과하다고만 생각하죠.


두 번째 사고는 스마트폰을 하며 길을 걷다가 벌어졌습니다. 하필 손에 잡은 게임이 한창 잘되고 있던 터라 현성이에게 익숙한 골목길을 둘러볼 시간은 없었습니다. 현성이는 검은 자동차에 쿵 부딪쳐 넘어지고 말았죠. 이번엔 좀 다릅니다. 머리도 빙빙 돌고 다리도 후들거립니다.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는 팔짱을 낀 채 현성이를 내려다봅니다.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는 몇 번 대충 괜찮냐고 묻더니 외려 현성이를 몰아세웁니다. 잘 살펴 걷지 못한 현성이 탓을 하죠. 못내 괜찮다는 현성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주위를 몇 번 살피더니 다시 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두 교통사고는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사고의 모양도 정말 다르게 생겼지만, 그 사고를 대하는 두 아저씨가 무엇보다도 다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두 교통사고가 연결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까 골목길에서 사고가 났을 때, 현성이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 액정이 깨지고 만 것이죠. 그런데 이 스마트폰은 현성이 것이 아닙니다. 친구의 것을 빌린 것이죠. 꼼짝없이 수리비를 물어주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식탁 위에 쫙 깨진 스마트폰이 보였다. 다시금 정신이 아찔해졌다. 날 보고 "책임져!"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40쪽)


현성은 불현듯 교복 바지 뒷주머니에 있던 옥수수 트럭 아저씨의 연락처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현성은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가 났을 때 핸드폰이 깨져버렸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거짓말은 두 사건을 복잡하고 풀기 힘든 방식으로 엉켜버리고 맙니다. 선글라스 아저씨가 만든 현성의 상처와 깨진 핸드폰은 모두 옥수수 트럭 아저씨의 몫이 되고 거짓은 오해를 낳아 옥수수 트럭 아저씨는 다친 현성이를 두고도 홀연히 떠나버린 '뺑소니범'이 되어 버리죠. 현성은 뺑소니범이 되어 꼼짝없이 거액의 치료비와 어쩌면, 고소까지 당할 위기에 처한 아저씨를 위해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책의 결말은 흔히 말하는 열린 결말의 형식입니다. 옥수수 트럭 아저씨의 사정을 들은 현성이 병실을 뛰쳐나가는 장면으로 책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죠. 아이들과 <옥수수 뺑소니>를 읽으면, 꼭 <옥수수 뺑소니 2>가 있냐고 묻습니다. 그럼 저는 속편은 없으니 우리가 직접 <옥수수 뺑소니 2>의 이야기를 상상해보자고 하죠. 아이들 각자가 그리는 속편의 이야기 전개 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현성이 용기를 내어 진실을 털어놓고 옥수수 트럭 아저씨의 억울함이 풀리는 식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마, 병실에서 옥수수 트럭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현성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현성이가 용기를 낼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결말을 묻기 전, 두 번째 교통사고가 난 뒤에도 저는 책을 잠깐 멈춥니다. 두 교통사고의 가해자인 옥수수 트럭 아저씨와 선글라스 아저씨의 말과 행동을 비교해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어질 이야기를 간단하게 고민해보죠. 현성의 선택처럼 옥수수 트럭 아저씨를 이용할 것 같다는 아이도 있고, 알바를 할 것 같다는 아이, 솔직하게 부모님께 털어놓고 해결책을 찾을 것 같다 등의 의견들이 나옵니다. 짧은 글밥의 책인 만큼 이어질 내용을 곧바로 읽기 전에 잠깐 멈춰 서서 상상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내 손엔 만 원짜리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꼬깃꼬깃 볼품없는 지폐였다. 아저씨가 옥수수 몇 개를 팔아야 이걸 버는 걸까? 오늘도 여기저기 수습하느라 하나도 못 판 건 아닐까? 점점 입 안의 옥수수 감촉이 불편해졌다. 어쩌면 지금 나는 옥수수가 아닌, 가진 것 없는 아저씨의 살점을 뜯었는지도 모른다.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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