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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Jan 22. 2022

일과 돈, 그만큼의 가치

서른 번째 책 <우리는 돈 벌러 갑니다>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은 정말 중요한 물질입니다. 돈 때문에 일어나는 기쁘고 슬픈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돈은 우리 삶에 있어서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루하루 버티며 다니기 싫은 직장에 다니기도 하고 나중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투자하기도 하죠. 혹은 돈 때문에 잘못된 삶의 선택지를 고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들을 우러러보거나 혹은 부러워하기도 하고 나보다 낮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에게 연민이나 안타까움 어쩌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돈만 생각하면 꿉꿉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돈 벌러 갑니다>는 이러한 '돈'에 얽힌 꿉꿉한 이야기들을 아이들의 시각에서 녹여낸 작품입니다.


5학년인 초원과 상미, 용수는 각자 돈이 필요합니다. 초원은 맛있는 치킨, 정확히 말하자면 '양념 치킨'을 먹고 싶어서, 상미는 예쁜 치마를 사고 싶어서, 용수는 축구부에 들어가기 위해 발에 꼭 맞는 새 축구화가 필요해서입니다. 하지만 셋은 가정 형편도 좋은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셋은 직접 돈을 벌기로 결심합니다. 우선, 인터넷으로 '초등학생이 돈 버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고작 초등학생 5학년의 신분으로 돈 벌 수 있는 일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흰머리 뽑기, 명절 용돈 모으기, 학용품이나 장난감 팔기, 실내화 빨기 등. 초원, 상미, 용수가 하기에는 형편이 마뜩잖습니다. 같은 반 규도는 영어 단어 하나에 200원씩 받는다는데 말입니다.


결국 셋에게 남은 돈 벌기 작전은 세 가지. 빈 병 모으기, 전단지 돌리기, 삥 뜯기(?)입니다. 우선, 셋은 빈 병을 주우러 거리로 나섭니다. 하지만, 이미 빈 병이 돈이 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한 건 남들도 이미 생각했다는 경제 논리(?)가 하필 여기서 빛을 바랍니다. 아무리 찾아도 주인 없는 빈 병은 찾을 수가 없죠. 하루 종일 빈 병을 찾아 주워 번 돈은 고작 620원. 이 마저도 규도가 공짜로 내어준 빈 병 여덟 개 덕분입니다. 각자 약 200원씩 번 셈이니 규도가 외운 영어 단어 하나 값 정도입니다.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최규도네 집이 부자고 최규도가 우리보다 공부를 잘해도 그렇지, 똑같이 하루 일해서 번 돈이 열 배 백 배 차이가 나면 우리가 너무 억울하고 기분 나쁘지 않나. 진짜 인간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규도가 착하고 똑똑하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최규도가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큼 착한 애라고 해도, 하버드대에 들어갈 만큼 똑똑하기까지 하다 해도, 다른 사람보다 열 배 백 배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이 당연할 수는 없다." (73쪽)


셋은 효율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첫 번째 작전을 접고 두 번째 작전에 돌입합니다. 전단지 돌리기. 사실, 초등학생이 전단지를 돌리는 알바를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셋은 나이를 잠깐 속여 먹기로 작심하고 전단지 알바 회사에 들어섭니다. 의외로 쉽게(?) 500장을 뿌리는 알바를 받은 아이들은 태양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 전단지를 붙이고 다닙니다. 아파트 주민 아줌마에게 된통 혼이 나기도 했지만요. 아이들은 품삯을 받기 위해 다시 회사에 들어갑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돈은 고작 5천 원. 한 장에 30원. 500장이니까 만 오천 원인데, 사장은 초등학생은 한 장에 십 원이라면서, 끝끝내 5천 원만 주고 셋을 돌려보냅니다. 사장은 가만히 회사에 앉은 채 말 한마디로 만 원을 벌었네요.


"이런 고얀 녀석을 봤나. 너희들이 몰라서 그렇지 초등학생은 워낙에 이런 일을 못 하게 돼 있어. 하면 다 잡혀가. 근데도 내가 특별히 일을 줬으면 고맙습니다 하고 넙죽 절을 해야지,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자, 이거라도 받을 거면 가져가고, 싫으면 말고." (93쪽)


두 번째 좌절을 겪은 셋은 마지막 방법 삥 뜯기(?)까지 도전하지만, 애초에 심성이 못 되지 못한 셋은 당연히 마지막 방법까지 실패합니다. 이젠 진짜 실패구나 싶었던 그때, 규도가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음악 밴드의 공연 티켓을 위해 줄을 대신 서주면, 1장에 5천 원 그러니까 만 오천 원을 주겠다는 겁니다. 셋은 고수익 알바(?)에 당연하게도 응합니다. 셋은 3시간이나 일찍 출발해 줄을 섰고, 결국 세 장의 티켓을 얻어냈습니다. 이제, 셋은 만 오천 원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초원의 눈에는 표를 얻지 못해 주저 앉아 울고 있는 사람들의 눈물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최규도는 여기 이 운동장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렵게 공연 표를 얻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끝내 표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공연장 밖에서 어떤 심정으로 날뺀의 노래를 듣고 있을지 죽었다 깨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런 거 다 몰라도 최규도는 당당히 공연장 안에 들어갈 수 있고, 자기 친구들하고 날뺀의 노래들을 마음껏 따라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줄을 서지 않고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대놓고 새치기를 할 수 있도록 우리가 5천 원을 받고 졸병 노릇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132쪽)



셋은 규도에게 티켓을 양보하지 않습니다. 대신, 셋이 얻은 티켓으로 공연장에 들어가 신나는 날뺀의 공연을 보죠. 규도의 아우성은 뒤로한 채 말입니다. 규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날뺀의 공연은 셋에게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공연이었습니다. 오늘만큼은 '돈이 잘난 척할 수 없는 날'입니다. 셋이 규도에게 티켓을 양보하지 않고 공연장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건, 돈보다 더 값진 일들이 있다는 것 돈으로 마냥 해결하고 살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날뺀의 티켓을 얻기 위해 3시간을 일찍 나와 줄을 서고 기다리며, 우리가 흘린 땀과 노력이 고작 만 오천 원으로만 환산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니까요.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벌이는 발칙한 사건들을 통해 돈과 얽힌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살펴보고 아이들이 좌절하고 혹은 깨닫는 과정을 통해 일의 가치에 대해 그리고 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나아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읽는 내내, 온갖 핍박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사회 저편의 노동자들, 부당한 이유로 해고를 당하는 노동자들, 돈으로만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는 못된 사람들, 돈으로 사람을 부리며 잘못된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 위력으로 남의 돈을 탐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던 건 결코 우연이 아녔을 겁니다. 진형민 작가의 말처럼, 이 세상은 '도깨비시장'과 같으니까요.


"초원이 할머니는 하루 종일 손이 부르트도록 마늘을 까야 겨우 만 원을 버는데, 전단지 사장은 아이들을 슬쩍 속여 먹은 대가로 금세 만 원을 벌었어요. 또 '삥뜯는' 언니 오빠들처럼 약한 사람에게 주먹을 휘둘러 남의 돈을 거저 차지하는 사람도 있고, 반장 최규도처럼 돈 많은 엄마 아빠 덕분에 가만히 앉아 큰돈을 버는 사람도 있지요." (152쪽,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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