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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Jan 14. 2022

그냥 장난이었는데

스물다섯 번째 책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장난으로 저지른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잊지 못할 상처가 된다는 걸 나는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말과 행동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 책임감은 쉽게 잊히곤 하죠. 나의 간편하고 사소하거나 혹은 나는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말과 행동에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제가 했던 책임감 없는 말과 행동들이 떠오르네요. 우리 아이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아직은 하나의 말, 하나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투거나 서로에게 험담을 해서 잡아온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장난' 혹은 '그냥'이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의 주인공 주경이는 명인이의 구두를 창밖으로 던져버립니다. 주경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책임감이 필요했는지 그때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주경이에게도 사연은 있습니다. 체육 시간에 얽힌 일로 혜수와 어그러진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혜수를 필두로 왕따를 당하기 시작한 주경은 혜수에게 어쩌면 잘 보이려고, 어쩌면 두려워서, 어쩌면 외로워서 혜수의 부탁을 가장한 지나친 명령을 하나둘 들어주기 시작합니다. 이를 테면, 주경은 잘 먹지도 않는 초콜릿을 매일 혜수에게 사다 주는 그런 '부탁'입니다. 그런 혜수의 이번 부탁은 눈엣가시인 명인이의 구두를 처리해달라는 것입니다. 주경은 망설이지만 "난 이주경이 우릴 싫어하는 줄 몰랐어.", "혜수야 얜 우리랑 친하기 싫은가 봐."라고 말하는 헤수와 미진의 말이 따갑습니다. 결국, 명인의 구두 한 짝은 창문 밖으로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자신이 왕따를 당하기 전의 왕따였던 정아에게 들키고 맙니다.


"어머, 쟤 진짜 던질건가 봐.", "아니, 우리가 꼭 던지라고 한 건 아닌데, 그치?" (33쪽)


주경은 자신이 벌인 행동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낍니다. 또, 정아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두려워하죠. 게다가 이젠 꼬리를 잘라버리는 혜수와 미진이에게서 박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어쩔 수 없으니,  그냥 괜찮다고 간편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 혼자서 저지른 일이 아니니까', '난 이보다 더 심하게 당한 적도 있으니까', '신발이 그것 뿐은 아닐테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도 괜찮아지질 않습니다. 주경은 솔직히 털어놓고 사과를 하려 하지만 이래저래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그때, 명인이와 구두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주경이가 창밖으로 던져버린 구두가 돌아가신 명인이 엄마의 마지막 선물이었다는 걸 말입니다. 주경은 더 큰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직접 사과할 용기는 더욱 없어집니다.


결국, 명인은 자신의 구두를 던져버린 게 주경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주경이의 고백이 아니라 창밖으로 구두를 던지는 주경을 목격했던 정아의 제보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아도 명인도 주경의 잘못을 탓하지 않습니다. 정아가 어떤 말로 명인에게 설명했는지 책에서는 서술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장면을 쉽게 떠올려볼 수 있겠습니다. 왕따를 당했던 정아는 누구보다 주경이 처했던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했을 테니까요. 둘은 주경을 탓하는 대신, 정아와 명인이는 주경이에게 오히려 손을 내밉니다. 함께 학예회 깜짝 팀을 꾸려 보자는 제안입니다.


"그거 버릴 때... 어땠어? 나처럼, 너도 그랬니? 쪼끔이라도... 나처럼 마음이 아팠냐고." (88쪽)


주경은 이전과 같았지만, 이전과 달리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건, 자신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으로 힘들어 하던 주경이에게 기역자 소풍 언니가 따뜻한 말을 건네주었던 것처럼 주경이가 왕따가 되기 전의 왕따였던 정아가 주경이의 마음을 이해했던 것처럼 명인이 엄마의 마지막 선물을 던져버린 주경을 용서한 것처럼 말입니다.


"등불은 어려운 곡이었고, 처음에는 '외로운 나의 벗을 삼으니 축복받게 하소서' 부분에서 내가 자꾸만 울어서 곤란했지만 차츰 괜찮아졌다. 내가 울면 친구들은 연주를 멈추고 기다려 주었고, 멋진 노래라며 같이 불러 주기도 했다." (108쪽)



이 책은 구두에 얽힌 순간의 실수에 대한 '나'의 이야기이자 실수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의 실수나 혹은 장난이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때는 용기내어 사과를 건넬 용기를 가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나아가 나를 포함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때는 곁에 공감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서두에 이야기했던 아이들의 '장난', '그냥'이라는 헛헛한 이유들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부끄러운', '미안한', '후회스러운' 장난과 그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의 마지막 장면은 주경이가 자신을 괴롭히던 혜수에게 '우리 (학예회)무대를 지켜봐 줘.'라는 문자를 전송하는 장면입니다. 주경이가 자신이 명인이와 정아에게 받은 공감과 위로의 마음의 방향을 바꿔 혜수에게도 나누어 주려고 하는 주경의 마음과 생각이 드러난 장면입니다. 주경은 자기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 문자가 무사히 혜수에게 갈까'라고 말이죠. 혜수가 문자를 무사히 받았을지 그렇지 않았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경은 혜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공감과 위로의 마음을 전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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