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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Jan 12. 2022

언더독의 반란?

스물네 번째 책 <기호 3번 안석뽕>

<깔끔하게 꽂는 책꽂이>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작품을 선생님의 관점에서 읽고 소개합니다. 주변에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은 길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그다음의 책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겁니다.



이미 학교에서는 함께 읽는 책으로 많이 택되는 작품인 <기호 3번 안석뽕>입니다. 3월, 전교어린이회 선거나 학급 반장 선거를 앞두고 읽는 경우들을 많이 봤습니다. 또는, 재래시장과 대형 마트의 상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 작품으로 채택되는 경우들도 많이 봤죠. 물론, 선거에 대해서 혹은 시장과 마트의 이해관계에 대해 재밌게 풀어낼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에 공감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기호 3번 안석뽕>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약자', '소외' 그리고 '저항'이라는 주제입니다.


'언더독(Underdog)'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보통 '언더독의 반란'이라고 묶여 쓰이는 단어입니다. 투견장에서 위에서 내리누르는 개를 탑독(Topdog), 아래 깔려 있는 개를 언더독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의 '언더독'은 아래 깔려 있는 개의 성공 즉, 약자가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응원하는 현상을 통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 <기호 3번 안석뽕>을 '언더독을 응원한다.'는 생각으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책의 주인공 안석진(안석뽕)은 얼결에 전교회장선거에 출마하게 됩니다. 친구 김을하(기무라)가 등을 떠밀어서 생긴 정말 의도치 않은 일이었죠. 석뽕은 회장은커녕 반장 한 번 해보지 못했습니다. 석뽕 조차 자신을 후보로 쉽게 인정하지 못합니다. 회장은 원래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번듯한 친구가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석뽕의 라이벌은 '고경태'입니다. 반장에 공부도 잘하는 번듯한 후보입니다. 둘의 선거 슬로건만 들여다봐도 후보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일등만 사람이냐, 꼴찌도 사람이다. 꼴찌까지 생각하는 기호 3번 안석진' 대 '기호 1번 명품 후보 고경태'입니다.


석뽕이 내세운 공약을 보면 발칙합니다. '시험을 한 번만 보기', '나머지 공부 없애기', '수학 시간 줄이기' 등입니다. 제가 석뽕이 학교 선생님이었다면 석뽕이가 당선되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속 담임선생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석뽕이 회장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딴지를 걸어 댑니다. 경태의 공약을 보고 있으면 익숙하죠. 한편으로는 지루하기도 합니다. '공부 잘하는 1등 학교 만들기', '깨끗한 학교 만들기', '사이좋은 학교 만들기' 등입니다. 기발한 공약과 공격적인 선거 운동 행보로 석뽕은 조금씩 지지를 얻기 시작합니다.


한편, 석뽕이 살고 있는 시장통에서 문제가 벌어집니다. 재래시장 앞에 대형마트 P마트가 법을 피해 기습적으로 입점을 하게 된 겁니다. 순식간에 시장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죠. 시장 어른들은 P마트의 행태에 혀를 차면서도 시끄럽게 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며 낙담하기만 합니다. 석뽕은 와중에 자신의 입후보를 도와준 대가로 백보리(백발마녀)와 함께 P마트에 바퀴벌레를 풀어버리는 사건에 가담하게 됩니다. 이유야 어쨌든 잘못된 행동이지만, 이를 계기로 어른들은 시끄럽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며 빨간 조끼를 입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석진은 언더독입니다. 경태는 탑독이죠. 결국 언더독과 탑독은 약자와 강자를 말합니다. 시장과 대형 마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자와 강자의 관계에 놓여있죠.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지평의 이야기이지만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바른 이미지의 회장 후보에게 익숙합니다. 그리고 시장과 마트의 경쟁을 자본주의 논리에서 익숙하게 접근합니다. 약자들은 익숙한 상황 속에서 쉽게 포기합니다. 석진조차 자신이 후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시장 어른들이 달라질 것이 없다며 목소리 내기를 포기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약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주변의 지지를 받고 고개를 들기 시작한 기호 3번 안석진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하고 빨간 옷을 맞춰 입은 시장 어른들처럼 말입니다.


"단상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주 달랐다. 작은 퍼즐 조각들이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 어느 순간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걸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조각조각인 우리들이 다 모이면 이런 그림이 되는구나, 하는 걸 나는 난생 처음 깨달았다." (129쪽)



진형민 작가는 <기호 3번 안석뽕>을 채우고 있는 두 가지 이야기가 각기 다른 단편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말하죠. 저는 그 자연스러움이 언더독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각기 다른 이야기이지만 시작부터 '약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석진과 재래시장이 닮아 있는 지점이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결코 약자가 이겨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의 약자들도 '함께' 힘을 모은다면, 얼마든지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언더독의 반란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기성 권력에 도전하고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자본과 힘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기호 3번 안석뽕>에서 결국, 전교 회장에는 경태가 당선이 되고 P마트와 시장의 갈등 역시 완전히 해소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약자는 약자의 위치에, 강자는 강자의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은 퍼즐 조각들이 어느 순간 큰 그림이 되었듯이 조각조각인 우리들이 다 모이면 우리도 이런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걸 조용히 깨닫게 해줍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안석뽕과 재래시장, 언더독을 조용히 응원해보면 어떨까요? 나아가 이 시대의 기호 3번, 약자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보셔서 알겠지만 저희가 뭐 말 잘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키가 큰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몸매가 좋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좋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부족한 멤버들 뿐입니다.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 절대다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 평범한 사람들이 한 사람의 카리스마, 한 사람의 현란한 말솜씨가 아닌 절대다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무한도전 선택 2014 최종 토론회, 정형돈의 연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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