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상적인튀김요리 Jul 17. 2024

사랑할 수밖에

[교실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 (1)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서태지와 아이들, 1994)   

  

94년의 서태지와 아이들은 강렬한 헤비메탈로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노래를 발매했다. 내가 고작 2살 때의 노래니, 난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도 잘 모르고 ‘교실 이데아’라는 곡이 당시에 사람들에게 선사했던 충격 또한, 잘 모른다. 내가 애초에 ‘교실 이데아’를 처음 듣게 된 것도 역방향으로 들으면 ‘피가 모자라’라는 악마의 메시지가 들린다는 괴소문 때문이었으니. 그거야 어쨌든, 30년 전에 쓰인 노랫말이지만 지금의 교실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오는 일은 없어졌고 날이 갈수록 아이들 숫자도 부쩍 줄고 있지만,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라고 조언하는 서태지처럼 여전히 교실의 일부는 경쟁을 통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 버리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94년에도 ‘시꺼멓던’ 교실은 안타깝게도, 더 ‘새까매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폭력이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다. 반올림(2003), 공부의 신(2010), 드림하이(2011) 등 학생들의 몽글몽글한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들이 한동안 자리 잡았던 때를 지나 소년심판(2022), 돼지의 왕(2022), 약한영웅(2022) 등의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드라마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더 글로리(2022-23)는 학교가 주된 배경은 아니었지만,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었다. 이렇게 교실의 어두운 면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OTT 플랫폼의 등장 때문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겠으나, 오랜 시간 암암리에 드리운 교실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범시대적 공감을 이끈 탓이 제일일 것이다.


이렇게 어둑해지기만 하는 교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매일 '어린이'로 북적인다. 그러니 서태지가 뭐라 하든, 드라마들이 뭐라 하든, 사람들이 교실에 대해 뭐라 하든, 어쩌겠는가. 교실의 어두운 면이야 어쨌든, 우리는 교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가 교실에 는 한, 교실은 사랑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교실을 사랑한다. 교실에 담길 숱한 이야기를 사랑한다. 어쩌면 교실의 어린이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이가 모인 곳은 어디나 교실이 될 수 있고, 어느 교실이나 어린이가 없다면 교실이 될 수 없을 테니까.


3월 1일은 공휴일이지만, 선생에게는 마냥 쉴 수 없는 날이다. 다음 날이 ‘역사적인’ 개학 날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어린이들을 만나기 위해 차려야 할 것이 많다. 교실도 마지막까지 정돈하고 새 교실에 알맞게 마음도, 생각도 정돈한다. 어느 정도 정돈이 되었다 싶으면, 교실 앞에 서 본다. 아직은 빈 교실이라 썰렁함이 감돈다. 아직은 사랑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도 괜찮다. 겨우 하루만 있으면 거대한 에너지로 가득 찬 곳이 될 것이다. 살짝 떨리는 마음을 느낀다. 기분 좋은 떨림이다. 비어있는 깨끗한 칠판에 공들여 첫인사를 쓴다. 


자리는 편한 곳에 앉고,
새로운 친구들과 인사해요.
오늘은 우리가 함께하는,
12월에 돌이켜보면 그때 그랬지,
하고 웃으면서 그리워할
정말 귀한 시간이랍니다.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반가워요.   

  

3월 2일이 되면, 나는 일부러 교실에 느지막이 들어가는 편이다. 대략, 8시 55분. 어린이들이 그때까지 나를 기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를 기대하는 날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어린이들이 서로에게 조심스러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린이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견디고 있을 거다. 어린이들이 교실을 마음껏 상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새 교실에서 꾸는 첫 번째 꿈인 셈이다. 나 역시, 그동안 더디 가는 시간을 기대하고, 상상하며 참아낸다. 우리 각자가 꿈꾸는 첫 번째 꿈에는 옆 친구의 머리를 밟고 올라설 생각도, 대학이라는 멋진 포장지를 기다리는 생각도, 학교폭력으로 교실이 얼룩질 생각도 없다. 단지 교실에 켜켜이 쌓여갈 사랑의 시간을 마음껏 꿈꾼다. 그리고 그것이 내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숱한 좌절 속에서도 교실을 사랑할 수밖에. 교실로 들어서며, 큼지막하게 인사한다. 나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말을 건다.


“안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