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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Aug 14. 2024

1년짜리 일회용 교실

[교실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 (5)

어린이와의 1년 살이를 마치고 작별을 하고 나면, 선생 역시 교실을 떠날 채비를 한다. 돌아올 3월에는 교실의 주인이 바뀌기 때문이다. 운이 아주 좋다면, 교실을 그대로 이어 쓰는 경우도 있겠으나 열에 아홉은 교실의 주인이 바뀐다. 하물며, 선생은 바뀌지 않더라도 어린이들은 바뀌기 마련이다. 그러니 1년 살이를 마치면, 선생은 교실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교실을 떠날 채비란 다름이 아니라, 교실을 말끔히 비우는 일이다. 그동안 조금씩 정리하지 않았던 나를 나무라며, 매번 미루기만 했던 지난날의 나를 저주하며 비우는 일이다.


좁은 공간에 스무 명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각종 쓰레기와 먼지는 정해진 교실 약속에 따라 며칠에 한 번씩 정리가 되었겠으나, 그동안 늘어나기만 한 교실 세간은 그렇지 않다. 며칠 동안이나 교실 곳곳에 묵혀두었던 것들을 끄집어내 정리하고 묶고 분리해 버려야 한다. 오리다 남은 색종이, 빛이 바랜 색지, 몇 개의 색이 빠진 색연필이나 크레파스, 쓰다 남은 공책, 당시에는 정성껏 만들었던 코팅 종이들. 더러는 버리기 아까운 것이지만, 교실을 새로이 채울 어린이들을 위해 거침없이 정리해 주는 편이 좋다. 필요한 건 새 교실에서 새 선생이 새 물건을 살 테니까.


사실, 난 버리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선생이다. 몇 번은 어느 교실에 가서, 컨설팅을 한 적도 있었다. 이른바, ‘버리기’ 컨설팅. 컨설팅의 기준은 3개월인데, 3개월간 찾지 않은 것이나 묵혀둔 것들은 과감히 버리라는 강력한 기준이다. 포장을 채 뜯지 않은 새 물건도, 1년에 한 번쯤은 꼭 쓰는 물건도 다 버린다. 버릴 때는 쓰레기장으로 보낼 수도 있고, 주변에 나눠줄 수도 있고 더러는 협의실 따위의 공용 공간에 두어 함께 쓰도록 할 수도 있다. 다만, 당장 교실에서만 내쫓는 것이다. 이렇게 강력한 기준으로 컨설팅을 하다 보면,      


“이것까지 버리라고?”라며, 혼란스러워하고

“버리는 김에 저것도 버려.”라고 다독인다.     


“이건 애들이 진짜 공들인 건데?”라며, 자책하고

“어쩔 수 없어. 사진 찍고 버려.”라고 위로한다.   

  

“이건 진짜 안돼.”라며, 선언하고

“빨리 내놔.”라고 존중한다.     


이렇게 가차 없이 버리다 보면, 교실은 점점 비어 가고 큰 박스 하나면, 충분히 교실 이삿짐이 꾸려진다. 이렇게 인정머리 없는 나지만, 버리는 와중에는 거침없던 마음에 제동을 거는 것들이 있다. 다름 아니라, 애써 만든 환경보호 포스터라든지, 한 번도 열어보지도 못한 환경 교육 책자 같은 것들이다. 그것들이 내게 뭐라 말을 거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덜커덩거린다. 가책으로 스스로 찔리는 것이다. 교실에서는 늘 어린이들에게 환경을 위해 힘쓰자고 독려하면서도 결국 어린이들과 작별하고 나서야, 어린이들 몰래 이러고 있는 비겁한 모습. 교실은 항상 환경을 열심히 가르치지만, 역설적이게도 교실은 항상 환경과 멀리 떨어져 있다.


아껴 쓰자는 말은, 색이 하나 없어졌다며 버려지는 크레파스에 무색해지고, 나눠 쓰자는 말은, 같은 학년을 맡지 않을 거라며, 버려지는 수많은 수업 교재들에 무색해지고, 바꿔 쓰자는 말은, 필요한 이를 일일이 찾는 게 귀찮다며, 버려지는 각종 집기에 무색해지고, 다시 쓰자는 말은, 새 어린이들에게는 새 걸 사주는 게 보기가 좋다며, 버려지는 중고 학용품에 무색해진다. 교실을 말끔히 비우면서, 그렇게 선생이 어린이들에게 전한 메시지도 빈 메시지가 된다. 교실이야말로 환경 이슈에서 가장 사각지대에 놓인 곳이 아닐까. 교실이라는 공간이 교육을 방패 삼아 얼마나 많은 일회용품을 지속적으로 소비하고 재활용이 어렵거나 혹은 아예 불가능한 물품을 사고, 또 만드는지 무겁게 발견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교실이라는 공간은 1년짜리, 일회용이다.


도화지 대신, 버려진 종이 상자를 잘라 만든다. 낱낱의 종이 대신, 태블릿에 기록한다. 종이 타월과 물비누 대신, 수건과 고체 비누를 사용한다. 양치 컵과 텀블러를 늘 가지고 다니며 직접 씻고 말려 사용한다. 수업에선 되도록 이면지를 쓰고 다용도 교실 장바구니를 마련한다. 3개월을 기준으로 버리는 데에만 에너지를 쏟을 게 아니라, 쓰임새가 많지 않은 물건은 처음부터 사지 말고 주변에서 빌려 쓸 수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환경을 고려하는 일이 대개 그렇듯 귀찮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가 앉아 공부하는 교실이라는 공간은 필연적으로 미래를 향해야만 한다. 1년을 보내고 작별한 교실은 쓰레기통처럼 깔끔하게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여야만 한다. 교실의 곳곳은 어린이들에게 언제나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라고.     




더하기     


“그거 알아요? 왜 작년에 쌤네 반이었던 민수.”

“민수. 왜요?”

“아니, 환경 관련해서 배우고 있는데 자꾸 딴지를 걸길래. 너 작년 담임 선생님은 버려진 종이 상자 가져다가 잘라서 시간표도 만들고 얼마나 환경 교육에 열심이었는데 그러냐고 나무랐죠.”

“그랬더니요?”

“그건 선생님이 돈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었냐고 되묻는 거 있죠?”

“아…?”     


“선생님, 할 말 있어요.”

“응?”

“협의실에 새 종이 있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자꾸 헌 종이에 인쇄해 주시잖아요. 협의실에 새 종이 있어요.”

“아…?”     


어린이들에게도 환경을 고려하는 일이란 도통 와닿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꿋꿋이 닿을 때까지 우린 일회용이 아니라고 말해줘야만 한다.



고금숙 작가께서 펴낸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슬로비, 2019) 책 제목을 빌려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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