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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Aug 28. 2024

구글 교실

[교실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 (7)

언젠가 구글의 사무실 모습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동안 전통적인 형태의 정적인 사무실 구조의 형태에서 동적인 형태의 사무실 구조로 디자인된 사무실이었다. 구글이라는 기업이 요구하는 고도의 창의적 사고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무실 디자인이었을 것이다. 공간이 주는 인상은 공간에 속한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영감을 받는다고나 할까. 


나 역시, 글을 쓸 때는 사람들이 오가는 번잡한 공간을 선호하지만, 학교 일을 돌볼 때는 고요한 공간을 선호한다. 숨통이 트이는 장면이 자주 필요한 때(글은 늘 제대로 안 써지기에)와 집중과 효율이 필요한 때(일은 늘 퇴근 시간에 쫓기기에)가 나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을 쓸 때 모든 이가 번잡한 공간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고요한 공간을 바라는 작가도 있을 터다. 학교 일을 돌볼 때도 음악과 커피가 흐르는 공간으로 꾸며놓고 나서야 비로소 일에 착수하는 선생도 더러 있다.


교실로 돌아와, 교실은 어떠한가. 구글의 사무실 모습이 화제가 되던 때와 비슷한 시점에 교실의 모습도 화제가 되었다(물론, 구글과는 전혀 다른 면에서). 변한 것이 몇 없는 획일적 형태의 교실이 화제가 된 것이다. 1960년대와 2020년대의 교실 모습을 비교한 사진은 60년이라는 긴 세월이 무색하게, 흑백과 컬러 사진 차이 정도만 있을 뿐, 선생을 바라보며 나란히 놓인 네모난 책상과 커다란 칠판, 가에 놓인 수납장 등 교실의 공간적 요소에는 변화가 없다. 새로운 시대가 원하는 창의적, 융합적 인재를 기르기에는 무언가 불편한 전통(?)이었을 획일성이다.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네모난 책상들*이 있는, 있었던 창의력도 잠잠해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그런 곳이다.


사실,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교실을 바꾸고자 했던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90년대 ‘열린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실험적 공간 혁신 프로젝트가 있었다. ‘열린교실’은 말 그대로 열린 교실, 개방형 구조의 교실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시도였다. 그렇게 전국 초등학교의 교실 벽은 철거되었다. 나 역시, 열린 교실의 수혜자(?)로서 교실 벽이 허물어졌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개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바로, 가장 끝에 위치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내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숱한 교실을 지나던 기억이다. 벽이 허물어진 탓에 화장실에 가는 나의 발걸음은 고스란히 내가 지나는 교실마다 전해졌고, 수많은 눈동자를 마주해야 했다. 마치 느린 탁구공이 지나가듯 나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던 수많은 머리통들. 마치 발가벗겨진 듯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의 민망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 열린교실은 어쨌든 실패했다. 허물어졌던 곳에는 가벽이 다시 세워졌고 도로 폐쇄형 구조의 교실로 공간이 구성되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네모난 책상들이 있는 교실로 돌아왔던 것이다.


202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 공간을 동적인 구조로 고치려는 ‘학교공간혁신 프로젝트’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교실을 사용하는 어린이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반영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내는 것이 프로젝트의 골자였다.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교실들의 사례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지금까지는 듣도 보도 못한 교실임에 분명했다. 한 번쯤은 저기에 가서 수업을 하거나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적 구조의 교실 디자인은 선생이나 어린이 혹은 수업의 성격에 따라 교실의 구조를 탈바꿈할 수 있도록 돕고 어린이의 생각의 공간과 휴식의 공간을 확대시켰다. 정말, 없던 창의력도 솟아날 것만 같은 기대감이 터지는 그런 곳이다.


다시 돌아와, 90년대 내가 앉아 있었던 ‘열린교실’에서도 당혹스러웠던 경험과 같이 좋지 않은 기억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새롭게 선생님과 시작했던 ‘러그미팅’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소중하고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공간 혁신처럼 책상에 바퀴를 달거나 네모난 책상의 모양을 새롭게 바꾸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시도를 하지 못했던 때에, 소극적 형태로 공간을 부수고 새로운 교육의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러그’였다. 


책상과 의자에 앉는 대신 러그에 모여 앉아 선생과 어린이들이 함께 부대끼는 장소를 새로이 마련한 것이다(우리 반 어린이들도 일단, “책상과 의자는 뒤로 밀어주세요.”라고 말하면 한껏 들뜨더라.). 그렇게 책상과 의자에서 내려와 러그에 둘러앉고 우리는 ‘미팅’을 했다. 미팅이란 건 대수롭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오늘의 기분을 묻고 답하거나, 그림책을 읽거나, 간단한 손 유희 놀이 같은 간단한 활동을 하던지 좀 더 가까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듣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괜히 선생님께서 “러그미팅 시간입니다.”라고 말하면 뭐라도 된 양 으쓱했던 기분도 여전히 남아 있다. 영어였어서 그랬나. 어쨌든 그 시간만큼은 당시엔 소극적이었던 나도 뭐든 이야기하기 편했고 정답이 아니어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다. 책상과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들을 때와는 다르게 뭐랄까, 오프 더 레코드 같은 느낌이랄까.


다시, 2020년대. 학교공간혁신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다시. 과연 교실을 바꾼다는 목표의 ‘성공’이란 무엇일까. 다시 돌아가, 열린교실은 정말, ‘실패’ 한 것일까? 교실을 여닫는 것에 물리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실에 어떤 것이 담기는 것인가에 달려 있다. 


열린교실이든, 학교공간혁신 프로젝트든 교실이 어떤 식으로 바뀌든 간에 교실이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롭게 교실을 설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호기롭게 벽은 허물었지만, 벽을 허문 이유를 선생도 어린이도 납득할 수 없었던 당시의 열린교실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벽이 허물어진 복도를 지나며 괴로워했던 것처럼. 내가 겪은 열린교실의 핵심은 결국, 러그미팅이다. 열린교실을 통해 부수고 싶었던 것은 교실을 폐쇄적으로 만드는 벽도 있겠으나, 어린이들의 사고와 표현을 막고 있는 무언가였을 것이다.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열린교실 속, 러그미팅이라는 새로운 시도는 분명, 어린이들의 사고와 표현의 벽을 무너뜨릴 중요한 공간의 탄생이었다(그러니 사실, 교실 벽까지 무너뜨릴 필요는 없었…). 학교공간혁신 프로젝트의 성패도 결국엔, 교실에 무엇을 담아낼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교실을 새롭게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네모의 교실 수업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교실 공간을 새롭게 바꾸기 전에, 선생과 어린이들은 새롭게 바꾸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교실의 물리적 변화가 아닌 교실의 화학적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거다. 그래야만, 바뀐 교실의 모습에 와! 탄성만 지를 게 아닌 그에 맞춰 탄성을 가진 존재로서 변화할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실은 의사소통이 주된 화두다. 내겐 교실을 뜯어고칠 만한 거창한 예산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의사소통의 경험을 마련해 주기 위해 교실을 새롭게 바꾼다. 고작 스무 평 남짓한 공간을 더 비좁게 만드는 교실 벽의 수납장을 최소로 줄인다. 사물함도 가능하다면 복도로 내쫓는다. 교실 속에서 나눌 이야기의 성격에 따라 어린이들을 무리 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함이다. 어린이들의 책상은 서너 개씩 모아 모둠을 짓는다. 그리고 웬만한 활동은 모두 모둠이라는 소모임을 거치도록 한다. 짧은 이야기든 긴 이야기든, 가벼운 주제든, 무거운 주제든. 답이 정해진 물음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서너 명의 의사소통 과정을 거치고 각자의 생각을 정돈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그래서 우리 교실이 유독 시끄러운 것일지도). 우리 교실은 열린교실, 학교공간혁신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어 있지는 않지만 분명 우리 교실은 새로운 방향을 담고 있다.

 

돌고 돌아와, 구글의 사무실. 모든 기업의 사무실이 구글의 사무실처럼 개방형 구조로 사무실이 바뀌게 된다면 어떨까? 고객 영업이 중요한 기업이라면, 개인 과업이 중요시되는 기업이라면, 실험이나 실습이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인 기업이라면? 모든 경우에 구글의 사무실이 올바른 선택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교실을 새로이 디자인하는 방식에도 정답은 없다. 좋은 변화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름의 학교 철학을 먼저 세우고 학교 철학에 맞춰 선생과 어린이가 공감하는 폭에서 교실 공간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형태면 어떨까. 지금처럼 애꿎은 도서관, 휴게실, 복도만 뜯어고치는 것으로는 보여주기식의 애꿎은 구글 사무실 따라잡기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교실을 꿈꾸는가? 그것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 우리만의 구글 교실이 될 것이다. 


“오늘 보니 우리 반은 신기한 것 같다. 앉는 것도 그렇고 하는 것도 그렇고 어쨌든 신기하다.**”



* 그룹 W.H.I.T.E가 부른 「네모의 꿈」 (1996) 가사를 빌려 적은 것입니다.

** 『신규교사 생존기』 (한그루, 2019)에 실었던 어린이의 글을 옮겨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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