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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by 이찬

이틀 뒤, 나는 집을 나왔다. 집이 비어있는 시간에 조용히 준비를 시작했다. 숨겨뒀던 짐들을 꺼내왔다. 옷가지와 수건 같은 자잘한 물건도 캐리어에 넣었다. 고시원에 전화를 해 방이 있는지도 미리 물었다.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18살 때 이사를 와서 여태까지 지내온 이곳을 나갈 차례였다.

잡설이지만 누군가는 이 집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리 좋은 집에 살며 본인의 방이 따로 있음에 부러움을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행복의 조건은 그게 아니었기에 새로운 여정을 떠나보려 한다. 서둘러 택시를 불렀다. 다시금 집을 둘러보며 눈에 익혔다. 다시는 오지 못할 곳이니 눈에라도 담았다. 이곳에서의 힘듦은 이제 뒤로하고 추락이 아닌 비행을 바라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택시 트렁크에 짐을 싣고 고시원으로 향했다. 내 방을 소개받았다. 작은 옷장과 침대 위로 놓인 책상, 밖을 향한 창이 전부인 작은 방. 답답함은커녕 설레는 기분이었다. 비행을 바라는 내 생각만큼 마음도 붕 떠있었다. 현금으로 가졌던 모든 돈을 계좌에 넣었다. 보증금과 월세를 내고 남은 58만 원. 당장 물을 마실 컵도 없는 환경이지만 노력으로 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잘한 물건을 사기 위해 길 건너 잡화점에 들렀다. 그 아래에 있는 음식점도 들렀다.

사실 나는 내 휴대폰이 추적되는 걸 알고 있다. 정확히는 분실 신고를 하는 순간 추적이 가능하다. 벌써 실종 신고가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안일한 생각이었다. 분실 신고가 되었고 휴대폰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전화가 빗발쳤다. 경찰서였다.

'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성인이시라 안전확인만 되면 바로 돌아가게 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어디에 계시는 걸까요? '

' 제 위치가 저희 집으로 새어 들어가지는 않나요? '

다행히 그에 대한 안전은 보장이 된다는 답이었다. 내가 있는 음식점에 경찰 분들이 오셨다. 안전하다는 걸 확실히 확인하셨고 귀가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때 한 경찰관 분이 전화를 받으셨다. 그게 이 판도를 바꾸었다. 내 정신이 불안정하니 같이 파출서에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상세한 사유는 내가 생을 마칠 시도를 했었으며 정신과를 예약했다는 이유였다.

헛웃음이 나오는 얘기였다. 내가 생을 마감하려 했단 얘기는 너만 힘든 게 아니라고 무시했다. 정신과는 내가 바라지 않았음에도 억지로 예약한 것이었다. 그런 변명을 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상황이었다. 그대로 나는 파출소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화해를 시키려 노력하시는 경찰관 분들이 어이가 없었다. 나는 목소리조차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생일은 지나지 않았지만 법적으로 성인이었다. 그럼에도 서로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귀가할 수 없었다. 지겨울 정도로 같은 얘기가 전해졌다.

결국 나는 이 파출소로 가족이 오기를 허락했다. 그게 내 과오였을까. 나의 의사는 이제 뒷전인 듯했다. 경찰관 분과 가족이 알아서 얘기를 나누고는 나를 차에 태워버렸다. 구역감이 올라올 만큼 증오스러웠다. 이 공간의 공기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내가 탑승한 차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내가 다시 내려서 도망갈 것 같다는 이유였다. 나를 창고 속에 처박아둘 때는 언제고 지금은 이리 안절부절못하는 걸까. 내 마음을 돌리려 애쓰는 모습이 우스웠다. 그것도 잠시였다.

나를 질이 불량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불량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낀 것 같다. 누군가 협박을 하냐며 물어왔다. 아니면 어느 이상한 일자리를 얻은 것이냐며 물었다. 지루했다. 이미 답을 정해두고 물어보는 꼴이 지겨웠다. 아마도 우리 집은 내가 앞으로도 창고에 얌전히 박혀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이 칙칙한 창고 속에서도 하늘은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러 감정도 쌓이고 바라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언제까지나 먼지만 쌓이게 할 테면 내가 꺼내면 그만이었다. 내가 꺼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야 내가 그 집에서 존재감이 없었으니까. 창고 속 평생 불어 지지 않을 줄 알았나 보다. 그걸 꺼내어 부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저 안 했을 뿐이다.

지루하게 오는 질문에 답 하나를 안 하며 내 생각만을 했다. 주로 이 차에서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였다. 태생부터 얌전한 성격이던 내가 행동력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가족 때문이었다. 약해빠진 내게 늘 말했다.

' 사람은 악이 있고 깡이 있어야 해. 넌 그게 없어. 어느 정도 악해질 줄도 알아야 해. '

이 가르침을 본인한테 써먹을 줄은 몰랐으리라. 나는 저 말을 평생 들어오며 살았다. 그래서 정의에 맞서 싸워본 적도 있고 시비에 휘말려 싸워본 적도 있었다. 생각보다 말랑한 사람은 아니게 커왔다. 옆에서 나불대는 헛소리를 무시하고 멍하니 있을 정신력 정도는 있다. 점점 시간이 길어져 내 인내력에 한계치가 왔을 뿐이다. 언제까지나 저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 큰 이모네로 갈게. 거기 내려줘. 거기는 되잖아. "

드디어 내가 풀려날 기미가 보인다. 물론 수원에서 구리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만 빼면 이제 앞이 좀 보인다.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왔던 나는 새벽이 넘어가서야 차에서 하차할 수 있었다. 큰 이모는 예상외로 나를 따스하게 받아주셨다. 빈 방을 내어주시며 잠부터 청하라고 하셨다. 연락이 뚝하고 끊어져 걱정했을 주변인들에게 연락만 남기고 자기 위해 누웠다.

내가 잠에 들 때쯤 주차를 마치고 가족이 들어왔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를 재우면 안 된다며 소리치고 어떻게든 집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대목에서 큰 이모네로 오는 선택이 꽤 괜찮았다. 이모는 일단 내가 고생했으니 재우고 다음 날 잘 얘기해 보자고 말하셨다. 그때쯤 마음을 내려놓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나는 대화를 했다. 밥도 주셨다. 우리 집의 만행을 얘기했다. 내 각오도 같이 얘기했다. 사실 말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렸던 것 같다. 여기서도 내가 귀가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내가 맞서는 방법이 유일했다. 다행히도 통했다. 오후쯤 귀가할 작은 오빠와 얘기만 하고 가라고 하셨다.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셨다.

그때까지는 휴식을 취했다. 비어있는 방에서 앞으로 헤쳐나갈 방안을 모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도착한 사촌 오빠는 내게 밖에서 대화를 나누자고 말했다. 근처 산책을 하려는 듯했다. 가는 길목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내게 흡연 유무를 묻고는 본인의 담배를 사서 나갔다. 흡연이 가능한 장소에 가서 대화를 나눴다. 아침에 얘기한 듯한 문장들을 말로 다시 나열했다. 들려온 다른 문장들도 있었다. 내가 차에서 들은 소리는 나의 외할머니도 함께 동조하고 계셨다. 당연히 사촌 오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분노해 주었다. 내가 겪은 일에 대해 함께 화를 내주었다. 그리고는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틀 만에 다시 내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촌 오빠는 언제든 내 편에 서 줄 테니 일이 생기면 말하라며 연락처를 가져갔다. 어쩌면 내 절벽에 다른 곳으로 갈 줄이 하나쯤 걸쳐져 있었나 보다. 지하철에서 길고 긴 시간을 보냈다. 힘들어야 할 길인데 오히려 안도감에 빠져들게 하였다. 안도감에 취해 내가 추락하지 않을 거란 자신감이 붙었다. 어쩌면 책임감일지도 모른다. 내가 절대 추락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며 도착한 방은 편안했다. 이불도 베개도 하나 없는 이곳이 너무나 편했다.

어디를 나가든 압박받지 않을 수 있고 무엇을 하든 간섭받지 않을 수 있다는 자유가 생소했다. 그 자유를 난 열심히 즐겼다. 그동안 눈치를 보며 나가지 못한 술자리도 나갔다. 나만의 시간에 내가 바라는 일들을 했다. 이 자유를 즐기던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술을 마시고 결제를 하는 순간이었다. 카드가 긁히지 않았다. 오류라고 생각하며 집을 왔다. 집에 도착해서 확인한 내 통장은 해지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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