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로 달려간 내가 확인한 진실은 잔인했다. 법적절차를 밟아 해지시킨 것이었다. 당연히 내 부모가 그러하였다. 온갖 서류를 가지고 강제 해지 신청을 했다고 한다. 내가 쓰던 은행이 모바일 은행이어서 더 취약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힘도 없이 빈털터리로 집에 돌아왔다. 수중에 한 푼도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했다. 그나마 돌파구를 찾자면 내가 사는 고시원은 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시간에 맞춰 가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식사였다.
아무리 20살이라도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야 내가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에 대표적인 게 휴대폰 개통이었다. 나는 번호도 없는 상태로 일을 구했다. 메일로 답을 받아가며 닥치는 대로 지원했다. 번호가 필요한 일일 알바는 친구의 휴대폰을 빌려 신청하기도 했다. 의식주 중 옷은 내가 소비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식사는 제공되었다. 주거는 돈을 벌어야 했다. 버거웠다. 버스비를 아끼려 차가 쌩쌩 다니는 곳을 40분간 걸어서 다니기도 했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 모를 일도 생겼다. 일하던 곳에서 금방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대신 그동안 일한 돈을 바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당장의 돈을 메꿀 수 있으리라. 그 후로도 하루 12시간씩 일하고는 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만 했으니까. 나의 희망 한 조각마저 빼앗아간 가족들에게 악에 받쳤다. 내 몸이 상해가면서 까지 일을 하고 돈을 벌었다.
내가 처음 집을 나온 건 6월. 8월 초가 생일인 나는 그때까지도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한 푼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 지인들은 참으로 착했다. 이불과 베개도 없이 자는 나를 위해 생필품과 라면 같은 간편식을 잔뜩 사 온 친구가 있었다. 처음으로 베개가 이불을 덮고 자는 날이었다. 처음으로 내 방이 음식으로 쌓인 날이었다. 또 다른 친구는 나를 생일 날 불렀다. 한 푼도 없는 걸 알면서도 불러냈다. 점심도 카페도 저녁도 모든 값을 친구가 치렀다. 나는 내 생일이지만 받기만 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사주었다. 꼭 갚겠다며 약속도 했지만 거절당했다. 분명 7만 원가량을 쓴 걸로 알고 있는데 선물이라며 잊으라 했다. 아리따운 풍경 아래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 생일이 이토록 행복할 수 있는 날이었구나. 이런 대접을 받고 감사히 여기는 게 가능한 날이었구나. 눈을 감은채 조용히 기도했다. 내 앞으로 펼쳐질 생일들은 늘 행복하기를. 1년에 하루쯤은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즐길 수 있기를. 나의 앞 길은 꿈의 한 조각을 품고 갈 수 있기를 바랐다.
8월 10일. 내 첫 월급이 들어왔다. 정직히 일하고 받은 월급은 80만 원 언저리였다. 밥 먹기도 벅찼지만 은혜를 갚고 싶었다. 먼저 생일날 밥을 사준 친구에게 돈을 갚았다. 나의 자립에 도움을 준 큰 이모 댁과 생필품을 지원해 준 친구에게도 선물을 각각 보냈다.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내게 고마움을 선사한 사람들이었다. 돈을 받게 되었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모든 은혜를 갚고 나니 다시 상실감에 빠졌다. 어쩌면 돈이 사라졌을 때부터 일수도 있다. 나는 내 앞길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막상 나오고 나니 내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글을 배우러 다닐 수도 없었다. 나의 실력으로 공모전 따위에 눈을 돌리기는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걸음 뗀 이래로 더 갈 수 없는 길이었다. 이제 걸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길이 벽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아니 망각했다.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진 나는 악에 받친 게 아득한 과거인 것처럼 무기력해졌다. 그 과정에서 칼도 여러 번 들었으리라. 그때마다 나는 주사도 못 맞는다는 사실이 다행일정도였다. 손을 파들 거리며 내리는 일이 번번했다. 갑자기 펑펑 울거나 하루종일 잠에 빠져있는 날도 있었다. 나의 정신 건강이 망가져 가는 것을 느꼈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버티는 것뿐이었다.
무력감에 빠져있던 날. 나는 한 연락을 받았다. 단 세 글자뿐인 연락이었다. 미안해. 나의 돈을 앗아가고 꿈을 부순 사람이 메신저로 말한 저 한마디가 날 무너지게 했다. 내 인생에도 손에 꼽힐 만큼 많이 운 것 같다. 저 말을 듣는 게 이리 힘들지 몰랐다. 듣고 나서 이만큼 서글플지도 예상치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 하나가 참 어려웠나 보다.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워놓고도 안 해주던 말이었다. 이 불안한 끝에 매달릴 바엔 뛰어내리겠다 결심하고 실행한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잔뜩 악에 받쳤던 내가 원상태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늦은 밤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아댔다.
그리고 받은 하나의 연락. 나의 대학 등록금은 지원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무슨 의도인지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전에 있던 일도 순간 잊었다. 그저 나를 지금 생각해 주는구나 라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저 어둡고 아득했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끝없는 추락만을 겪는 듯한 내게 다른 기회가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