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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운

by 이찬

누군가에겐 따사로울 햇살이 내겐 따갑게 느껴질 때였다. 다시 상처를 감수하고 갈대밭에 들어갈 것인가. 이 황량한 곳에 버려질 것인가. 나는 더 이상의 상처라도 내지 않기 위해 버려짐을 택했다. 나는 어떻게든 이곳을 채워보고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게 어디냐고 물으면 매일 다른 곳에 있을 정도로 방황했다. 다들 정해진 길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홀로 버려진 상황이 처량하기도 했지만 동정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럴 시간을 주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매일같이 아픈 머리를 붙잡고 노력했다.

나는 내 방황의 목적지를 해외로 정했다. 해외에 살겠다는 아니었다. 그 나라의 언어는 단 한 줄도 하지 못한다. 그저 경험이라는 명목하에 떠나기로 했다. 내게 주는 첫 생일 선물이기도 했다. 여행 전 계속 아파오는 머리를 고치려 병원을 갔다. 수많은 검사 끝에 나온 결론은 허무했다. 없었다. 사유가 없었다. 아무 이유가 없이 아프다는 말이었다. 고민이었다. 나는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 당장 내 앞길을 정하기에도 벅찬데 몸까지 다스리며 살아야 하는 걸까?

나보다 나이가 꽤 많은 지인에게 물었다. 매일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고. 정말 조심스럽게 내놓은 답변은 놀랍지 않았다.

" 이상하게 듣지 말고 생각해 봐. 너 정신과 한 번 가봐. 나도 전에 이유 없이 아파서 병원 갔는데 정신과 가보라고 하더라고. "

어쩌면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결말이다. 정해진 결말을 애써 부정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고 다른 사람과 같다는 부정을 해왔다. 그 모든 나날들이 무너지는 답변이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외면했다. 모른 채 넘어가는 일이 나에게 더 해가 될지도 모르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증세가 더 심해졌다. 다 같이 연락을 하는 와중에 눈앞의 둘이 싸우기 시작했다. 숨이 막혔고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어지러웠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야 깨달았다. 아프구나. 정상이 아니구나. 턱턱 막혀오는 숨과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병원을 찾았다. 근처에 갈 수 있는 병원을 검색하고 예약을 잡았다. 내 병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예약을 마치고 나서야 침대에 누웠다. 빙글 돌아가는 시야를 무시한 채 눈을 감았다. 마주하기로 마음먹은 것과는 반대로 겁이 났다.

내가 아프지 않은 걸 수 있지 않을까? 그저 내가 몸이 허약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차라리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내 정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칼을 한 번쯤 들고 대보고 누구나 나 같은 깊고 어두운 생각 속에 빠져 있다고 믿고 싶었다. 나만 횡단보도에서 한 발짝 나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인정받고 싶지 않다.


예약한 날이 다가왔다. 그동안에도 계속 두통을 겪어왔고 어느 날은 먹은 걸 모두 게워내기 바빴다. 설렘보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들어섰다. 처음 한 것은 나의 상태를 진단하는 검사였다. 검사를 하면서부터 느꼈다. 내가 아프긴 하구나. 진료실에서 본 결과는 더욱 처참했다.

'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고도 상태의 불안. 전문기관의 치료적 개입이 필요한 심각한 수준의 우울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신체 증상. 부정적 평가에 대한 높은 두려움. '

이 모든 수식어가 나를 향했다.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높이 치솟은 그래프가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 절대 가볍다고 볼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내 마음을 무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약을 받아 나오며 생각했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구나. 내가 아팠구나. 아픈 나를 방치했구나. 스스로 물리적인 해를 가한 게 아니어도 이미 스스로를 해하며 살고 있었구나. 나는 결국 나를 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쌓여온 상처들은 치유가 가능할까. 내가 하고 있는 건 추락인지 비행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미 떨어져 산산조각 났을지도 모른다. 하나씩 붙여 이곳에서 살아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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