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프맨작가 Mar 07. 2024

100-4, 신이 죽었다 니체는 목사 아버지 사랑하였다

니체의 쩌렁쩌렁 어록들, 인문학 브런치 


"청춘은 불쾌하다. 그때는 어떤 의미에서 보아도 생산적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



니체는 청춘이 참으로 불안하고 성취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 적응하기 어려웠던 고등학교 초창기 시절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군대식으로 강도 높고 밀도 있는 교육을 실시하였던 분위기에서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니체의 이때의 경험과 사상들이 훗날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에 투영된 것이 인문학적 유산들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증명이 됩니다. 



24세의 니체가 스위스 바젤대학교 교수로 발탁되고 박사까지 빠르게 이룬 학문적 업적에서 그가 지적 생산적인 활동을 얼마나 중요시 생각하였는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들이 많습니다. 




"내 가까이에 있는 그대, 대담한 자들이여! 탐험가, 모험가들이여! 그리고 그대들 가운데서 능란하게 배를 몰아 미지의 바다를 향해 떠난 적이 있는 자들이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를 스무 살 전후에 처음 만났을 때, 그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미지의 바다를 떠나라고 명령하는 청천벽력과 같은 그의 소리에 나는 스무 살 청년에 정말 국토종단을 실행에 옮겼답니다. 출가를 결심하였던 니체의 목소리를 잊지 못하였습니다. 



니체의 뜻을 헤아릴 수 없어도 그의 포효를 느낌으로 공감하는 것으로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는 중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는 "신이 죽었다고 선포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열심히 제대로 살라고" 설파하였던 겁니다. 


신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우리의 삶을 개척하고 깨닫고 열심히 살라고 '영원회귀'를 외쳤던 겁니다. 







이렇게 니체(독일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944~1900, 독일의 철학자)를 좋아하게 된 것은 스무 살 전후였습니다. 철학이 힘이 되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청년 정신으로 똘똘 뭉쳐서 세상에 두려울 게 없던 그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니체를 다시 찾게 된 것은 중년이 되어서였다. 오랫동안 프리드리히 니체를 찾지 않을 만큼 철학가들에게 다가서지 못하였습니다. 과연 중년의 내가 스무 살의 그 출가를 니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니체여! 이제 불교 철학과 노장사상을 만날 만큼 그대를 품고 싶네요."



최근에 읽은 니체의 전기에서 중요한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니체는 목사 아버지를 사랑하였고 신학을 전공하던 것을 포기하게 된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이 죽었다고 선언하기까지 역설적인 성장환경을 갖고 있었지요. 


   

이점은 자신의 성장환경이 주는 엄청난 영향과 이를 역설적으로 바꾸고 세상을 바꾼 니체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답니다. 우리들은 성장환경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중장년이 되어서야 왜 옛날 어르신들이 가문, 집안을 보게 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답니다. 그런데 가문의 환경을 역설적으로 뒤집고 더 큰 삶의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위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니체는 그의 성장환경, 학문적 환경을 뒤집고 혁신적으로 더 큰 세계관의 현대 철학을 이룩한 위인이었습니다. 그의 철학이 실존주의 현대 철학으로 이어진 것이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신을 사랑하였다는 것을 아세요?  목사 아버지를 사랑한 것은 당연히 그에게 기독교적인 신앙심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을 더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사람들에게 불을 가져가 주고 본인은 제우스에게 벌을 받게 된 것과도 비교됩니다. 종교와 인간의 선택에서 니체는 인간을 선택하는 인간을 위한 철학 세계관을 만들어낸 것이랍니다. 


니체를 관념론적인 철학을 거부하고 '대지에서의 삶을 사랑할 것'을 주창하였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나 기독교적인 하늘나라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루터교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니체는 무신론의 철학가가 된 것입니다. 이는 그가 망치를 든 철학가로 불리면서, 약 2000년간의 서구 문명의 뿌리를 이어온 기독교 문명의 뿌리와 전통을 다시 세우고자 했던 혁명적인 철학가였습니다.  



그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만들었다>의 책을 출간하고자 할 때, 이 위대한 책은 출간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책을 주목하는 출판사도 후원자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가난이 그의 철학을 포기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병약한 삶의 발작 - 정신병도 그의 철학 세계를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젊은 니체에게 큰 영향을 준 위인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쇼펜하우어, 그의 책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리하르트 바그너, 위대한 음악가였습니다. 



젊은 시절 며칠 동안 밤을 새워 읽고 영향을 받았던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니체는 모두 긍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부족한 대안을 웅장한 서사시로 제시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의 고통의 철학을 니체는 오히려 긍정적인 니힐리즘으로 영원회귀의 깨달음으로 


현재 우리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말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부유한 사상가의 비평이었다고 하면 너무 금수저에 대한 편견이겠습니까? 


하지만, 니체는 가난하였습니다. 그의 바젤대학교 교수 퇴임 후 그의 인생 후반기는 비참하였습니다. 


그는 가난, 병마와 싸우면서 그의 철학 세계관을 책으로 집필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이 그의 철학 '신은 죽었다'라는 '인간다운 너무도 인간다운 철학'입니다. 



리하르트 바그너와의 운명적인 만남도 오히려 니체의 철학을 더 승격하게 만듭니다. 


훗날 존경하던 바그너가 기독교적이고 반유대적인 음악작품과 사상을 유포하자, 

니체는 그와 결별하였습니다. 이러한 결별은 니체에게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독창적인 철학관을 완성하게 합니다. 니체는 죽을 때까지 어느 국적도 소유하지 않고 범세계적인 철학으로 세계인에게 호소하게 됩니다. 어느 종파, 어느 민족, 어느 국적에도 속하지 않는 범세계 시민의 철학, 인간을 위한 철학을 집대성하게 됩니다. 





"1869년에 바그너는 처음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만났고, 곧 굳은 친구가 되었다. 바그너의 사상은 니체에게 주요한 영향을 주었고, 그때 니체의 나이는 서른한 살이었다. 니체의 첫 책인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 1872)는 바그너에게 헌정되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니체가 점점 바그너의 다양한 측면의 생각, 가령 그의 평화주의와 반유대주의와 같은 것에 환상이 깨지면서 결국 멀어졌다. "바그너의 경우" (Der Fall Wagner, 1888)와 "니체 대 바그너" (Nietzsche Contra Wagner, 1889)에서, 그는 바그너를 퇴폐하고 타락한 것으로 비난했고, 심지어 그 자신의 이른 시절의 미숙한 시야에 대해서도 자기비판했다. 영향력 있는 저작물인 비극의 탄생의 저자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처음에 바그너를 숭배했는데, 그의 음악에서 유럽 정신이 다시 젊어지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니체는 《파르지팔》 이후에 바그너와 결별했다. 그는 《파르지팔》를 기독교 신앙심에 영합하는 표현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

<백과사전 인용> 




신이 죽었다고 선포하여 그가 불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생존, 그의 시대에 파격적이라서 불온하게 여겨졌지만, 


그의 철학은 오늘날 깊은 감명이 됩니다. 


악의 무리들이 들끓는 전쟁광들, 독재자들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왜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불행과 비극의 참상은 어쩌면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얘기지요.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런 비극들이 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지? 왜 이 세상은 평화롭지 않은지? 니체는 물었던 것이고 그의 철학으로 대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기독교 목사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무신론자가 되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명저를 남겼습니다. 



니체가 죽기 전에 쓴 편지들을 읽어보면 그가 신에 대한 사랑, 신으로 향하는 그 자신의 연민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채찍질당하는 말에게 울었듯이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신 앞에서 울었던 것입니다. 그의 자라투스트라는 그에게 시퍼런 칼날임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사랑,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허무주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허무주의로 휴머니즘이었습니다. 



그러한 니체는 양면성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지 못하였지만, 여러 여성들에게 청혼을 하였다가 거절당하였지요. 남성적인 생각들로 글을 썼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그의 글은 운문시와 같습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사랑에 대하여 수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또 그는 신이 죽었다고 하였지만, 신에 대한 연민이 넘친 채로 죽음으로 향하였습니다. 



생명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니체에게서 발견하게 된답니다. 


그리스도와 디오니소스 사이에서 그는 자라투스트라의 갈등과 극복을 탐구하였던 것입니다. 니체는 저희 영웅이지만, 니체처럼 불행한 말년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니체의 쩌렁쩌렁한 어록들을 공유합니다.>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 속에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군중 속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려라.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옛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행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행한다.            


              실제의 세상은 상상의 세상보다 훨씬 작다.            


              애초에 얻고 싶은 바가 명확하지 않았던 자들에게는 잃을 것도 명확하지 않다.            


              내게 있어서 무신론이란 증명이 불필요한 즉각적인 사실이다.            


              고통을 통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을 얻게 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            


              한낱 빛이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라            




니체의 책에서 감동적인 부분을 인용합니다. 

"48장 해가 뜨기 전에


내가 가르침을 주었을 때 그 의지를 대신해 이 허영심과 어리석음을 말입니다


"모든 일에는 불가능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합리성입니다!"



별에서 별까지 흩어지는 지혜의 싹이 틔워지는 작은 이유입니다


별—이 잎은 모든 것에 섞여 있습니다. 어리석음을 위하여, 지혜를 위하여


모든 것이 섞여 있습니다!



작은 지혜도 가능하지만, 이 축복받은 안전은 나를


그들은 우연의 발로 춤을 추는 것을 선호합니다.


나보다 높은 하늘이여, 그대의 순수한 하늘이여, 그대의 높은 하늘이여, 이것이 이제 그대의 순수함입니다


나에게 영원한 이성적인 거미나 이성적인 거미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의 기회를 위해 나에게 춤을 추는 바닥, 당신이


신의 한 상, 신의 한 상, 신의 주사위와 주사위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지만 당신이 가장 자랑스러워요? 제가 말할 수 없는 말을 한 적이 있나요? 제가 언제 학대를 한 적이 있나요


내가 당신을 축복하려고 했습니까?


아니면 우리 둘이라는 것이 얼굴을 붉히는 수치심일까요


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해요. 왜냐하면 이제 날이 왔으니까요?


세상은 깊고, 하루가 읽을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날 앞에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헤어짐!


나보다 높은 하늘이여, 겸손한 자여, 빛을 발하는 자여, 나의 하늘이여


해가 뜨기 전의 행복! 날이 밝았습니다. 그러니 우리 헤어지자고요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를 말합니다."


    


"신은 어디에 있지?" 그는 부르짖었다. 나 너희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 - 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는 신을 죽인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해내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가 바닷물을 다 마셔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닦아버릴 수 있는 스펀지를 주었단 말인가?


지구가 해의 궤도에서 풀려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지구는 어디로 움직이고 있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나?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후진하고 있나? 측면으로 가고 있나? 직진하고 있나? 아니면 모든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가?


아직도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나?


우리는 끝없는 허공을 방황하는 건가? 허공의 흐름을 느끼지는 못하면서?


더 추워지는 거 아닐까? 계속해서 저녁만 반복되는 거 아닌가?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2]


— 니체의 《즐거운 학문》



https://blog.naver.com/seolhon/223128703253




훗날 죽는 순간이 온다면 니체에게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조차 품고 살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서 행복하였다" 


호프맨작가의 인문학적 블로그글은 철학, 문학, 역사, 예술을 포함하는 공부과 성찰을 담아갈 겁니다. 


인문학은 신조차 품고서 사람들을 일깨우게 됩니다. 



호프맨작가가 공동 운영하는 카페입니다. 여러분들의 좋은 글, 사진들을 올려주세요. 


https://cafe.naver.com/humanitiesfutureself




호프맨작가 공동운영 <인문학 자기계발 네이버 카페>              

인문학으로 자기계발 성취를 올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블로그 글이 스피치가 되는 기회, 꿈을 나눕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